조선의 군사력이 급격히 약화된 시기는 철종 때부터다. 정조 때까지 근근하게 유지되던 조선의 군사력이 순조11년 홍경래난을 기화로 잠깐 불꽃을 태우다가 철종시대에 와서부터는 군대가 아닌 권문세가의 사병으로 급전직하, 도무지 군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

조선의 군사력은 도성을 방비하는 약간의 체계적인 부대를 빼고는 그야말로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빈껍데기나 한가지였다. 오군영마저도 안동김문의 대농장을 갈아주는 노농력 공급과 그들 일문의 재정을 채워주는 금고 역할에 불과할 정도였다.

임오군란 후 재편된 오영(五營)도 기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오군영의 군사력은 오경장이 청나라로 귀국하고 남아있는 청군 천오백 명도 감당 못하는 형편없는 군사력이었다.

이규완이 보부상과 충의계를 파고들며 김옥균의 동조자들을 모으는 사이 김옥균은 박영효의 도움으로 군왕의 지근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이규완의 일에 또 한사람 큰일을 한 이가 있다. 박제형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정변에는  이규완 박제형이 실무자격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김옥균은 군왕의 지근으로 들어가면서 거칠 것이 없었다. 평소 김옥균이 똑똑한 인물임을 알고 있던 군왕도 이동인 이상으로 서양 사정에 정통한 김옥균을 죽은 할아버지가 돌아온 듯 반기고 총애를 준다. 그것이 귀가 얕은 군왕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때 김옥균의 과격하고 직선적인 성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옥균은 간이라도 빼줄 듯 립서비스를 하는 군왕에게 고무되어 아직은 해서는 안될 소리를 하고 만다.

민씨 일족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청나라의 주구입니다. 그들로 인해 나라가 독립을 못하고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들을 끊어내지 않고는 나라의 앞날은 없습니다.  -갑신일록-

이 말은 김옥균이 민씨일족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공표나 한가지였다. 김옥균은 이 말을 한 1883년 10월을 시점으로 갑자기 믿는 구석이 생긴 듯 말이 거침이 없다. 1883년 '선정각'에서 군왕에게 이 말을 한 김옥균은 민씨세력의 감시와 견제 등을 과감하게 물리치며 정면으로 반격을 하기 시작한다.

민영익을 선봉으로 내세운 민비파가 즉각 김옥균과 개화파의 숨통을 조이고 나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야할 길을 멀기만하고 발목을 잡는 사람은 많은 형국이 김옥균 앞에 놓였다 할 것이다. 안으로는 분열된 동지들과 밖으로는 노회한 민씨척족들의 견제 등 김옥균의 갈길은 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