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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통신- 이창호, 이런 말 저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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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배 결승2국 하루 전날인 15일 오후, 체단주보(體壇週報)의 시에루이 기자가 방으로 찾아왔다. 한국기원 기전사업팀 전재현 과장과 기자는 호수 쪽으로 면한 테라스 문을 열어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물론, 그와 나의 대화는 전재현 과장의 동시통역에 의한 것이다).
시에루이 “내일 대국(결승2국)을 어떻게 보냐?”
기자 “무서워서 말 못하겠는데? 당신들은 기사를 사실과 다르게, 쓰고 싶은 대로 쓰잖아. 나중에 무슨 욕을 먹으라고?”
 우리에게 쓴웃음을 짓게 한 ‘이창호, 지하실 거주 사건’에 대한 ‘뼈 있는’ 농담이다. 이창호 9단의 열렬한 추종자(?) 시에루이 기자와는 오래 전에 소개를 받아 얼굴이 익숙한 데다 여러 차례 취재현장에서 마주쳐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 이 정도 조크는 자연스럽게 오간다. 전 과장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시에루이 기자는 유쾌하게 웃었다. 다소 과장된 제스처로 말하는 기자의 표정에서, 조크가 무겁지 않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 사진 : 결승1국이 끝난 다음날, CCTV와 씨에루이 기자가 이창호 9단과 짤막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서 있는 사람이 중국 체단주보의 씨에루이(謝銳) 기자.)
기자 “나는 이창호 9단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승1국도, 한때 저우허양 9단이 좋았던 적은 있지만 종반까지 이 9단이 승리할 기회가 더 많았다. 내용으로 봐서 이 9단의 대국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결승1국을 진 건 아쉽지만 그 정도로 흔들릴 이 9단이 아니다. 현재상태를 유지한다면 무난히 이길 것으로 생각한다.”
시에루이 “이창호 9단의 우승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기자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음, 느낌을 묻는 거라면, 결승1국을 졌지만 세계대회에서 거둔 성적, 두 기사의 성격이나 큰 승부에 임했을 때 발휘되는 집중력 등을 비교할 때 6 : 4 정도로 이창호 9단이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느낌을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65 : 35랄까. 당신 생각은 어떤가?”
시에루이 “나는 5 : 5로 본다.”
기자 “그건, 이상한데? 엊그제 점심 때 식당에서 당신이 한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잖아? 무조건 이창호 9단이 우승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말을 바꾸는 거지?”
시에루이 “음, 첫판을 이겼으니까...^^;”
우리는 결승1국 하루 전(13일) 1층 중식당 ‘화원(花園)’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시에루이 기자는 ‘이창호 9단은 독보적이다. 다른 기사들과 실력의 차가 있다 무조건 이길 것’이라는 얘기를 했었고 기자는 ‘글쎄, 나도 이창호 9단이 이기기를 바라고 또 이길 것으로 믿는다. 그렇지만 설혹 진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저우허양 9단 역시 틀림없는 정상급의 기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말했었다.
16일 결승2국이 끝난 뒤 선수단은 호텔 2층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10분 거리에 있는 스포츠센터로 이동해서 볼링을 3게임 했다. 이 9단은 결승2국 완승의 여세(?)를 몰아 생애 최고점수를 갱신했다. 이전의 최고점수는 177점(175점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이었는데 3점을 높여 180점을 기록한 것이다(생애 두 번째로 볼링장에 출격한 단장님이나 그보다 두 번 많은 출격횟수를 자랑하는 기자의 점수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좋겠다).
호텔로 돌아와 방으로 가는 도중에 비즈니스 사무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시에루이 기자와 마주쳤다. 시에루이 기자가 손짓을 하며 불렀다. 보고 있던 신문을 보여준다. 도착 첫날 기념식수를 하고 돌아서는 이창호 9단을 클로즈업한 사진인데 표정이 밝고 생생했다. 순간적으로 이런 표정을 포착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 표정변화가 미미한 이창호 9단의 사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야, 사진 잘 정말 찍었다’며 엄지손가락을 꼽아주었다. 그때 시에루이가 다시 물었다.
시에루이 “대단하다. 당신 감각(우연하게도 결승1국, 2국의 결과를 예측해 맞춘 꼴이 된 기자의 느낌을 말하는 듯)에 감탄했다. 그럼, 결승3국은 누가 이기겠냐?”
기자 “아, 이 사람 참 노련하네. 그거 유도심문 맞지? 뭘 또 물어? 이젠 나도 말 못해. 더 이상 묻지 말라고.”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다시 한번 크게 웃었다. 사실, 결승3국은 언급조차 부담스럽다. 그 무게야 대국 당사자인 이창호 9단 쪽이 가장 무겁겠지만 선수단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식사중에 오가는 가벼운 대화라도 결승3국에 관련된 말은 서로 알아서 피해주지만 기자를 포함한 선수단의 마음은 한결 같다. 이 9단이 우승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이 9단은 결승2국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다 대기하고 있던 CC-TV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는데 ‘편안하게 두고 싶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농심 신라면배 우승 직후 한국기원에서 가진 합동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지금까지는 승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제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정말 승부를 즐기고 싶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이 9단이 논어(論語)를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미 그는 책에 담긴 옛 성현의 말씀이 우리 삶 속의 깨달음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데. 승부사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하루하루 깊이를 더해가는 그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기자의 대단한 행운이다.
그의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기자의 마음도 함께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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