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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그 유럽 바둑축제를 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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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국제 바둑학술대회
 제47회 유럽바둑대회와 병행해 치른 제2회 국제 바둑학술대회는 26일, 27일 이틀간 레닌그라드대학 캠퍼스회관 2층에서 열렸다. 총 10개국에서 참가한 발표자 12인 중 주최측 참여자 3인(명지대 최일호, 남치형 교수, 인천대 조전혁 교수)과 미국의 오레곤대 스테판 더프 교수를 제외하면 모두 유럽지역의 학자들이다.
2001년 명지대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 바둑학술대회에 이어 격년으로 2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제1차 학술대회 의장으로서 사회를 맡은 명지대 한상대 교수가 무대에 오른 발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됐는데 ‘발표자 중 가장 어리고 프로기사이기도 하다’고 소개된 남치형 교수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전반적으로 제1회 때보다 내용이 충실하다’고 평가된 발표논문을 테마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알렉세이 라자레프(Alexey Lagarev) 페트로자보스크대 수학교수
러시아 바둑의 역사
2. 잔 라몬(Jan Ramon) 네덜란드 카톨릭대 컴퓨터학 교수
바둑의 컴퓨터 처리과정에 있어서의 주요 이슈
3. 에른스트 스트롤(Ernst Storouhal) 오스트리아 비엔나 예술대학 교수
바둑과 체스: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
4. 최일호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김진환 명지대 강사 공동연구)
좌표방식에 대한 연구
5. 드미트리 보가츠키(Dmitriy Bogatskiy) 우크라이나 대학 교수
바둑 데이터베이스의 이론과 실제
6. 클라우스 하이네(Klaus Heine) 독일 통계학 박사
유럽에서의 급수체계 시스템 분석
 7. 율리히 새들(Ulrich Shadle)
스위스 게임박물관 관장
게임의 성쇠: 유럽에서의 바둑보급 한계
8. 조전혁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정수현 명지대 교수 공동 연구)
착수결정의 경제학적 설명: 이론과 분석
9. 트리스탄 카자네프(Tristan Cazenave) 프랑스 컴퓨터 공학 박사
바둑 교육을 위한 세 가지 프로그램
10.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순장바둑과 바둑의 기원
11. 스테판 더프(Stephen Duff) 미국 오레곤 대학 건축학과 교수
바둑의 공간적 접근: 건축과 지각의 문제
12. 플루쉬츠 유리이(Pluyshch Yuriy) 우크라이나 대학 심리학 박사과정
바둑에 있어 개인적 스타일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너무 간단한가? 사실, 나는 이런 이야기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다. 딱딱하게 굳은 빵조각을 씹는 것 같다. 뭐, 전문적인 공부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상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발간한 ‘ICBO(International Conference on Baduk) 2003’을 구입해 보시기 바란다.
바둑을 통한 세계인의 교류를 간절히 바라는 바둑인으로서, 바둑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기꺼이 자비를 들여 먼 페테르부르그까지 날아와 학술대회를 총지휘한 한상대 교수와 참여교수들 그리고 자원봉사로써 대회진행에 구슬땀을 흘린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이들의 바둑대회는 콘테스트가 아니고 페스티발
 이제, 화제를 돌리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정도(定都) 300주년을 맞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지켜본 유럽의 바둑 축제니까. 제47회 유럽바둑대회(European Go Congress)가 개최된 장소는 페테르부르그 교외에 있는 레닌그라드대학 캠퍼스 회관. 낡아 보이기는 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가진 원통형의 2층 건축물(원통형이라기보다는 콘크리트 톱니바퀴를 옆으로 눕혀놓은 것 같은 형태다)인데 1층에는 매점과 카페가 있다.
1층 매점에서는 바둑책, 기념티셔츠 등 각종 바둑용품을 팔고 있었고 카페는 바둑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로부터 ‘고(碁·GO- 오랜 세월 일본인들이 유럽바둑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면 거부반응만 일으킬 일은 아니다)카페’로 불렸다. ‘바둑을 즐기는 카페’란 얘기다.
설명 그대로 ‘고카페’는 신명나는 곳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가까운 분들과 주점(酒店)에서 바둑을 둬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기꺼이 바둑광이라 자처하는 그분들이 단골주점 주인에게 부탁해서 바둑판을 비치해두었다가 주흥이 도도할 때 꺼내는, 아주 드문 경우이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맥주 한잔을 곁들이면서 경쾌하게 ‘말 아닌 말’을 나누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2층 대회장은 둥글게 돌아가는 복도 양쪽 벽에 길게 줄지어 붙인 좌석에서 3백 여명의 참가자들이 별 소란스러움 없이 함께 어울리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푸른 눈의 노인부터 예닐곱 살 어린아이, 모델 뺨치게 생긴 금발의 청춘남녀, 젖먹이를 안은 주부까지 한결같이 진지한 얼굴로 바둑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포근한 느낌이라니. 나는 어디에서도 이렇게 평화로운 전장(戰場)을 본 적이 없다.
그랬다. 이곳에서의 바둑은 승부가 아니고 만국공용어로써의 수담(手談)이었다. 유럽바둑대회는, 결승전이 치러질 때쯤이면 대국자를 응원하는 지지자들 이외에는 모두 떠나버리고 없는 우리의 바둑대회와는 크게 달랐다. 대회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단 한 사람의 이탈자 없이 참가자 모두가 바둑을 만끽하는 이곳의 바둑대회는 대회라기보다 축제에 가까웠다.
문득, 부끄러움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일천한 역사를 가진이 이들이 바둑을 하나의 생활문화로 즐기고 있는데 반해 입만 열면 반만년의 역사요, 1천만 바둑팬에, 세계최강국 운운하는 우리는 아직 바둑을 생활 속의 문화로 정착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프로, 아마를 막론하고 우리 바둑계에는 이기고 지는 승부가 있을 뿐이다. 물론, 진지한 승부의 세계도 하나의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보다 많은 대중이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생활문화로서의 바둑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순수팬들을 위한 바둑축제가 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수도권이나 지방에서 개최되는 크고 작은 아마추어대회도, 유수한 방송사가 주최했던 바둑큰잔치라는 것도 프로대회가 아닐 뿐이지 그 안을 들여다보면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가진(속칭 세미프로) 강자들이 우열을 가리는 승부무대였다.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일반부, 여성부, 어린이부 등의 대회가 있기도 하지만 이쪽도 승자는 남고 패자는 떠나는 승부일색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역사가 짧고 애호가의 숫자도 훨씬 적은 유럽은, 바둑을 생활문화로 즐기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왜 우리에게는 반쪽짜리 승부문화밖에 없는 것일까.
이번 유럽바둑대회에서 그 해답을 발견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바둑대회는 천편일률적으로 강자와 약자의 우열을 가려내기만 하는 방식인데 유럽대회는 전혀 다르다. 강하든 약하든 기력에 상관 없이 흔쾌히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유럽대회뿐 아니다. 참가한 적은 없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US오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고단자들만 참가해 최강자를 가리는 총호선 챔피언십토너먼트가 있는가 하면 여성들끼리만 겨루는 레이디스 토너먼트, 즉석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페어게임과 주말 토너먼트, 초속기 토너먼트, 어린이들이나 초보자들을 위한 9줄, 13줄 토너먼트는 모두가 기력의 차이에 따라 핸디를 받는 핸디캡 바둑이라 약자들도 얼마든지 강자들과 대등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뿐인가. 챔피언십토너먼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게임에 출전자격 제한이 없고 스위스리그(맥마흔시스템)로 진행되기 때문에 바둑 한판 졌다고 해서 무료하게 구경이나 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생각할 수도 없다.
바둑을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추어리즘
 관점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우리들의 대회는 누가 최강자인가를 가리는 경연(contest)이지만 이들의 대회는 최강자도 가리지만 그보다는 더욱 많은 사람에게 바둑의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는 축제(festival)다. 경연에는 제한된 소수의 선수만이 필요하지만 축제에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둑문화는 어느 쪽일까(답은 이미 여러분 마음 속에 있을 것 같다).
환경과 민족성에 따른 문화적 토양의 차이를 들어 ‘우리의 문화는 저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유럽의 여가문화는 확실히 넉넉하다. 1인당 GNP 2만 달러가 넘는 다른 유럽국가처럼 풍요롭지는 않지만 러시아 역시 유럽에 발을 담근 국가답게(특히, 페테르부르그의 시민들은) 휴가에는 인색하지 않다. 유럽인들의 긴 휴가는,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 이상 걸리는 바둑 축제나 투어에 가족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 해주는, 상당히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바둑을 즐기는 데 장애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기간이야 1주일이면 어떻고 하루면 어떤가. 바둑을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이번 유럽 바둑축제에서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된 사실은 ‘바둑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마추어리즘에 있다’는 것이다. 바둑을 업으로 삼는 프로는 바둑을 즐거워 할 수 없다. 승부의 결과가 생계와 직결되는 그 순간부터 바둑은 즐거움의 수단이 아니라 삶을 억압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생계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승부의 결과에 따르는 희열과 고통의 억압도 커진다).
 유럽의 바둑인들이 즐거운 것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승부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고 앞에서 열거한 그런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기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동안 껍데기만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했을 뿐이지 모두가 프로행세를 해온 꼴이다.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혹은 아예 가져보지도 못한 아마추어리즘을 되찾고, 갖는 일이다.
나는 모른다. 무엇이 푸른 눈 잿빛 머리의 남루한 사내로 하여금 1천km도 넘는 길을 기차를 타고, 때로는 걷고 또 걸어 이곳까지 오게 했는지. 내게는 바둑이 그토록 간절한 이름이었던 적이 없었다.
풀밭에 포도주병을 눕혀두고 ‘손의 대화’를 나누는 금발여인과 푸른 눈의 사나이를 바라보다가, 때로는 서울의 종로거리쯤 된다는 네브스키 대로를 걷다가, 때로는 에스컬러이터에 실려 1백여 미터를 더 내려가는 서늘한 지하철역 플랫홈에 서서, 때로는 네바강 유람선에서 멀리 피터 앤 폴 성당의 금빛 첨탑을 바라보다가, 자정이 다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의 노천카페에 앉아 생맥주잔을 들이키며 바둑을 두는 이국인들을 바라보다가···.
머언 서양 땅에서 동양의 古典을 다시 생각한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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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mhan |
｜ 2003-08-22 오전 6:42: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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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우리도 바둑뿐 아니라, 우리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축제의 문화를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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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文亂賊님, 9월호 월간바둑에 남치형 교수는 물론, 다른 몇분들의 논문까지 소개돼 있더군요. 월간바둑 9월호를 보시면 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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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fha |
｜ 2003-08-20 오후 12:59: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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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구구절절이 마음에 와닫는 말입니다. 바둑에 대한 그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둑축제를 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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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RO6 |
｜ 2003-08-21 오후 5:07: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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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에구! 약간 늦었지만 프로가 돼볼까 했는데 다 포기해야 겠넹. 하지만 아마추어로서의 특권도 이 땅에선 누릴 수 없으니, 러시아로 이민이나 떠나야 할까요? 답답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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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치형 사범/교수의 발표문을 구하고 싶은뎅 ICBO 2003은 어떻게 구할 수 있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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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이님, 정말 감사합니다. 남치형 사범/교수 홈페이지에서도 그 글 요약본을 열 수가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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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대회, 바둑 문화.... 종수씨 요번 글은 참 성공이야.. 이런 글은 계속 나와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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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점점 힘들어지고 싫어지는 이유는 승부에 집착하는 태도 때문이리라 서로 존중하고 즐기는 태도가 아쉬운 우리풍토에 비추어 볼 때 참 부럽다 패하는 자가 있음으로 승하는 자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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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돌들이 모퉁이에 앉았다.......지나가던 바람도 감기처럼 웅크린다....러시아로 떠난 시인은 길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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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그대학이 맞습니다만 현지에선 레닌그라드대학이라고 해야 알아먹는 사람이 더 많더군요. 여전히 혼용해서 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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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의초상 |
｜ 2003-09-25 오후 12:43: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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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개최 장소인 레닌그라드 대학이 바른 대학명인가요? 본 대학명이었던 셍페테스부르크 대학으로 다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착각일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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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이
백운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