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이번 유럽투어는 6개월간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바둑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곁에서 같이 생활하고 대화하고 즐기며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서양 바둑커뮤니티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계획했다. 일단 유럽 모든 나라의 바둑협회에 이메일을 보내 반응을 살폈다. 주고 받은 메일이 500통은 된다. 그 중 툴루즈는이번 유럽투어를 계획할 때 가장 먼저 연락이 온 클럽이다. 토너먼트가 있으니 와달라는 초청을 받아서 툴루즈를 가장 먼저 계획에 넣었다.

프랑스에서 큰 상금이 걸린 대회는 파리에서 열리는 큰 대회들뿐이다. 상금이 크면 센 사람들이 몰린다. 이번 툴루즈 토너먼트는 꽤 많은 참가자들이 왔지만 우승자의 실력은 3단으로 그리 높지 않다. 프랑스의 기력 시스템은 다른 나라보다 높다. 그래서 같은 1단이라도 프랑스 1단이 유럽에 있는 다른 나라들 1단들보다 강하다.

토너먼트는 툴루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열렸다. 프랑스에는 이런 작은 마을이 많다. 이 마을에는 바(bar)도 하나, 레스토랑도 하나, 모두가 하나씩이다. 날씨가 화창해서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도 바둑을 두었다. 맨발에 선글라스를 끼고 웃통을 벗고 바둑두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러피안들은 다들 털보다. 털이 덥수룩히 팔, 다리 얼굴까지 가득하다. 면도를 안하는 사람도 꽤 많고 장발인 남자들도 무지 많다. 사람은 익숙하지 않거나 자신과 아주 다른 것을 볼 때 신기함을 느낀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도 바둑을 두고 바둑에 대한 그들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들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었다.

토너먼트 모습.

한국어 책을 들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한국어를 공부 중이었는데 바둑둘 때 빼고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예전엔 일본어를 공부했었는데 요즘은 한국어 삼매경 이라 한다. 이처럼 바둑두는 사람들은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일본만화의 인기는 최고다. 유러피안들은 일본과 중국이 더 익숙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걸 알지 못했다.

한국에 대해 얘기를 하면 대부분 삼성, 현대, 북한이 나온다. 가끔 농담으로 북한에서 왔다 그러면 모두 놀라면서 걱정반, 두려움반의 표정을 짓는 게 보인다. 한국에서는 바둑을 거의 모든 인구가 알고 있으며 엄청 세다고 알고 있다. 젊은 바둑인들은 컴퓨터 프로게이머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본다. 한국의 바둑프로기사와 프로게이머들의 세계최고 실력으로 봤을 때 한국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

60여 명이 이번 토너먼트에 참가했으며 참가자들의 반 이상은 다른지역에서 왔다. 스페인, 벨기에 사람들도 참가했다. 유럽의 바둑토너먼트 어딜가나 그렇듯 여성 참가자는 2명밖에 보질 못했다.

대회장.

75유로를 내면 숙식이 제공되며 토너먼트에도 참가할 수 있다. 방을 배정하는 시간. 방은 혼자서 쓸 수 있어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토,일,월요일에 2박3일 동안 진행되었다. 대회는 2시에 시작되어야 했으나 프랑스 스타일(?)로 한참 경과한 뒤 3시반에서야 시작되었다. 토요일 두 판, 일요일 세 판, 월요일 한 판, 이렇게 총 6판을 둔다.

주최측에서 최신판 초시계를 준비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최신 초시계보다 계속 사용하였던 낡은 시계를 선호했다. 그건 별다른 기능없이 단순히 시간만 가는 시계였다. 사람들은 초시계가 초를 읽어주는 걸 시끄럽다고 싫어했다. 그 결과로 대회장은 모든 바둑이 끝날 때까지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둑이 끝나고 내게 복기를 받으러 온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내가 어딜가나 내 주변을 계속 서성거려서 의심쩍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바둑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고 남들에게 본인의 바둑을 보여주기가 창피해 나에게 일대일 복기를 요청했다. 


만찬.

식사는 단체로 먹는 음식에 비해 꽤 훌륭하게 나왔다. 항상 와인과 치즈는 준비돼 있었다. 프랑스에는 온갖 종류의 치즈가 많다. 처음으로 염소치즈를 먹어봤는데 얼굴이 오만상이 될 정도로 awful! (최악) 이었다. 내게 치즈는 유럽에 와서 최고로 도전적인 음식이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어도 먹으면 점점 나아지는 음식들이 있다. 그래서용감하게 한번 더 도전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싶어서 결국 친구가 음식을 바꿔줬다. ㅠㅠ

그 이후로 어딜가나 음식을 시킬 때 염소치즈가 들어가 있는지 꼭 묻는다. 아직 이해할 수 없지만 유럽사람들은 치즈에 환장을 한다. 냄새가 심할수록 맛있다고 하는데 내게는 더운 날  17일 동안 안씻어서 나는 발냄새 같고 그걸 먹는 순간 즉사 할 것 같다. 필자는 치즈먹기로는 아직 30급에 지나지 않는데 유럽에서 좀 오래 지내다 보면 10급까지는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날에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툴루즈의 별미인 다양한 소시지도 먹을 수 있었다. 유럽에 반년을 있으면 살이 찔까 빠질까 예상해 봤는데,  확실한 건 프랑스에 있으면 살이 많이 붙을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바게트와 와인살.

토요일 저녁에는 필자가 강의를 했다. 모양과 기본기가 약한 유러피안들을 위해 가장 일반적으로나올 수 있는 모양을 강의했고, 유럽에 대한 내 생각, 개인적으로 프로가 된 스토리 등도 얘기해주니 다들 아주 흥미로워했다.  다음날 저녁에는 다면기를 했다. 반상 이곳저곳을 붙여갈 때마다 사람들이 ‘코리안 스타일’ 이라고 외친다. 한국바둑이 기세를 중시하고 전투적이다 보니 박력있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기억에 남는것은 시상식. 테이블 위에 이것저것 잔뜩 가져다 놓고 우승한 사람부터 하나씩 골라간다. 테이블 위에는 바둑책, 보드게임, 와인, 잼세트, 공짜대회 참가티켓 등 다양했다. 제일 인기가 좋은 상품은 역시 바둑책이었다. 몇 십여 개의 상품이 올라와 있어서 많은 참가자들이 고루고루 상품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시상식의 여운이 더 길게 남는 느낌이었다. 특별 게스트인 필자에게도 상품을 고를 기회를 주어서 작은 보드게임을 골랐는데 모든 게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서 결국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왔다.

공식대국을 둘 때는 모두가 진지했지만 그 전후로는 릴렉스한 파티 분위기였다. 토너먼트에 오면 좋은 것이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바둑이 성행하면서 지역클럽에 가면 같은 기력의 상대랑 바둑을 둘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쉽지 않아졌는데 토너먼트대회에서는 다양한 기력의 상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진지한 대국을 두며 짜릿함도 맛볼수 있고 연습대국도 맥주 한잔과 함께 밤새도록 즐길 수 있다. 이렇게 툴루즈 토너먼트는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기억에 남은 시상식. 필자도 상품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