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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책, 한국바둑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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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책, 한국바둑의 터전
2013-02-12 조회 13977    프린트스크랩
▲ 부산의 바둑도시였다. 특히 중심지인 서면엔 한국기원을 비롯해 많은 기원 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사진은 20회 아마최고위전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건 모습. (자료사진/한국기원)



1.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인다

 

70년대 중반에는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았다. 책이 있었고 기원이 있었다. 기원은 지나치게 많다고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책은 60년대 일본책 해적판을 벗어나 70년대엔 현현각에서 격조 높은 책을 펴내기 시작하였다. 꾸준히 발간된 법문사의 일본명인전전집에서는 일본의 수준 높은 대국은 물론이고 대국장의 분위기까지 접할 수 있었다. 반상과 그 주변의 격조가 60년대에 비해서 훨씬 높아졌다.

 

책과 기원은 개인의 취미와 인식을 결정하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배우는 데 시간이 들어가고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이뤄지는 인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때-1970년 전후해서-바둑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바둑은 평생 취미가 되었다.

 

책과 달리 비디오나 TV, 인터넷 등으로 바둑을 배우면 몸을 사용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한계가 곧 온다. 배운 것을 아끼지 않게 되는데 아낄 정도로 시간과 몸을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5060대에게 2010년에도 바둑이 여전히 취미로 남아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에 바둑을 배운 이에게 바둑은 보다 끈이 약해진다. 90년대에 배운 이에게 끈은 더욱 약해진다.

 

문화를 습득하는 방식의 세대간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1)은 질문 문항이 중복 여지가 있으나 충분히 바둑을 접하는 경로를 알려준다. 비록 2008년의 조사지만 이는 60년대 70년대엔 더욱 더 잘 적용될 수 있다.

 

(1) 처음 바둑을 배우는 경로(갤럽 2008년 바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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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 친구, 동료 등의 지인을 통해 : 61.3(%)

독학 : 15.9

바둑교실, TV와 인터넷 매체, 학교 : 14.2 (6.0, 5.8, 2.4)

군 복무 중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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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바둑을 배운 이에게는 바둑의 끈이 약하다. PC가 널리 주어졌으며 TV가 일상이 되었다. 책이 아니라 비디오와 인터넷이 주된 도구가 된다. 그 결과 바둑을 배우는 사람들은 프로들로부터 더욱 더 멀리 자리잡게 된다. 아니 그래도 약한 프로와 아마추어의 직접적인 연계는 더욱 더 허약해진다.

 

알 수 있다. 80년대 초반, 아니 70년대 중반까지 한국바둑의 기반은 다 닦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시간이 지나 닦여진 기반이 활성화되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 기반을 기초로 해서 80년대 말 조훈현의 활약으로 이창호의 등장으로 크게 붐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70년대 이후 약 20년간의 고도 경제성장이 그 경제적 물적 자원을 뒷받침해 주었던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급격한 붐에 힘입어 바둑의 사회적 인식도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도 좋아졌다. 긍정적 인식에 힘입어 1985년부터의 연구생제도 활성화나 연구생 입단제도 등으로 기사의 충원시스템은 제도화되어 10대 기사들이 충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기원과 책이 부족한 시대가 되었다. 90년대 중반에 와서(이는 2000년대 초에 제대로 인식되었지만 사실은 1990년을 전후해서 일어난 사건이다) 기원과 책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원과 책은 왜 사라져가고 있었을까? 그 첫 원인으로는, 도시화의 진행과 인터넷의 보급이다.

 

90년대까지 기원은 도시화에 힘입은 것이었으나, 비대해진 도시화로 인해 만남의 문화가 다시 변하면서 그리고 인터넷의 확산으로 기원의 존립은 어려워졌다. 애초에 기원이 도시화가 아니라 일본처럼 오랜 관습에 의해 성장했다면 90년대 중반 기원의 쇠퇴는 없었을 것이다.

 

기원의 쇠퇴와 책의 부족은 기사들의 활동영역을 더욱더 제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90년대 이후 기사들은 많이 충원되지만 기전 외에는 활동 영역이 매우 부족했기에 기사들의 경제적 여건은 좋아지지 않았다.


이제는 아련한 옛 추억의 공간.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 3층의 일반회원실은 바둑애호가들뿐 아니라
문인, 예술가 들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는 사랑방이었다. (자료사진/한국기원)

 

 

2. 기원은 우리가 힘들 때 찾는 곳이었다

 

바둑은 언제나 말했다. 노소를 구별 않는 것이 바둑의 세계라고. 바둑판 앞에 앉으면 노소는 사소한 문제라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 세상을 잘 보여준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기원이다. 요즘엔 기원 찾기가 도심에서 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는데, 그럴수록 50대를 넘어선 애기가들에게 기원은 고향과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물론 기원하면 많이 사람들이 담배 연기와 우중충한 공간을 연상한다. 마작이나 카드, 삶에 지친 인생들이 모여 시간을 죽이는 곳을 연상한다. 70년대 중반 기원을 열기도 했던 김정림 시인의 회상을 들어보자. (바둑1976.10)

 

나는 바둑알에 내 청춘을 꽉 매달아 두었다. 하루 종일 굶고, 연거푸 엽차나 홀짝 거리면서 바둑에 미쳤던 시절, 그 시절을 회상하면 나는 약간 히스테릭해지고, 우울해질 때가 많지만 한편으론 그 때 내 손에 바둑알이 쥐어지지 않았다면 (중략) 어쩌다가 상대가 없어서 아무 바둑집에나 들어가면 바둑집에는 항상 너절한 옷차림의 초췌한 사람이 몇 명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 점심도 분명히 굶고 있는 게 분명한 그 사람들과 자청해서 바둑을 두자고 한다. ... 웬지 그들과 내기바둑을 두어야 내 속이 편하다. 서로 바둑판을 덮고 일어설 땐 내 쪽에서 반드시 얼마를 잃고 있게 마련이며, 그 잃어버린 것이 조금도 잃어버렸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속은 몹시 편하니...”

 

그래서인가. 19706월 내한한 사카다 9단이 서울 시내에 기원이 273개소가 된다는 말을 듣더니 놀라면서 말했다. “대체로 시간이 많으며, 그만큼 먹고살기가 힘들 거 같다.” 일본 바둑인구 천만을 말할 때에도 동경(인구 천만)엔 기원이 150개 이하라는 것이다. (바둑1970.8)

 

그러면서 다시 덧붙인 말은, 한국에서 전문기사 50여 명은 다소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400명 정도지만 각급 기업마다 바둑부, 초빙사범, 개인교수 등을 통해서 생활이 안정되어 있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기원이 확산되었다는 것은 일부는 맞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원은 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성장한 것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고향을 떠나 도시에 올라와서 소외에 빠진 서민들에게 삶을 보상해주는 여가의 활용법이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둑의 본질이다. 신호열 선생이 말씀하셨다. (바둑1978.7)

 

"서도 다도 기타 일체의 예도의 근간은 오락입니다. ... 육체나 정신이나 일정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풍류는 그것도 일종의 휴식일 수 있습니다. ... 따라서 바둑을 오락이라 한다 해서 부당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지요. 그러니 사람은 오락의 편의를 솔직히 시인하고 유효적절히 운영을 하면 되는 겁니다.”

 

바둑의 생명력은 여가의 생명과 결부되었던 것이다. 바둑과 기원은 60년대와 70년대 대중을 삶의 고단함으로부터 나오게 만든 힘이었다. 초점은 바둑이 아니라 여가 시간의 활용방식이고 그 활용방식으로서의 바둑이다. 생태학적으로 볼 때 기원은 60년대 70년대의 도시민의 생활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시대적으로 볼 때 술이나 담배 등이 없어서도 아니 되는 측면이 바둑에는 강했다. 지나치게 도덕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들어가서는 아니 되며, 넓은 세상은 다양성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서대문 모 기원에서는 이대생들도 한때 많이 다녔는데 시설이 나빠서 뜸해진 것 같아요. 환경이 깨끗하면 여대생들도 많이 늘 것입니다.”(바둑세계1967.1) 그랬다. 지금의 여건으로 보면 대부분의 기원은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기원의 환경. 그것이 80년대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세련되게 변화되지 못했기에 기원의 쇠퇴는 더욱 빨라졌을 것이다. 그건 부인하기 힘들다. 다만 바둑이 한국에서 성장한 길목에는 이런 일도 현상적으로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이 지나가야 할 길목과 같다.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아니 되는 것으로 60년대의 상황이 그러했다. 1961년 국민 1인당 소득은 불과 95달러였다.

 


1970년 6월말, 일본바둑 최정상급 기사인 사카다 9단이 관광차 방한했다.
이때 한국바둑 정상 김인과 기념 속기를 한 판 두었다.
사진은 한국기원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자료사진/한국기원)


사카다의 한국 이야기가 나왔으니, 방한 당시의 대국 하나 만나자.

 

1(절찬 받은 초속기 - 坂田9단 내한기념 공개속기)

1은 백2 자리에 두어야 했다. 4가 일석삼조의 자리. 이후는 <1-1> 순서로 진행되었다.(1970년 한국일보 1층 강당. 9坂田榮男 : 9단 김인. 35. 4집 반)

▼ 사카다-김인 속기대국

재밌는 것은
, 당시의 글에 모든 것이 속도화한 지금은 제한시간이라는 것이 새로 등장, 긴 것은 7시간으로부터 짧은 것은 30분의 초속기도 있다. ‘속도가 공식화하기는 최근의 일로 이것은 일종의 적인 의미도 다분히 내포되어 있지만, ...” (바둑1970.8)

▼ <1-1도>

 

 

3. 기원과 다방, 대화의 문화 속에서 힘을 얻었다

 

다방, 이것이 직접적으로 바둑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가 있었다. 서로 마주보면서, 가까운 친구와는 매일 만나서 대화하는 그런 문화가 있었다. 60년대 이후 90년대 초까지 다방의 문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

 

거리와 대화, 이 두 개의 개념은 바둑과도 밀접하다. 기원이 그런 곳 아닌가. 다방 비슷한 분위기의 만남 자리. 기원의 풍경 떠올려 보시라. 두 대국자간의 거리, 옆자리의 거리. 다들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주변과는 적당한 간격 두는 그런 공간. 대화와 면담을 통해서 근접거리에서 비로소 일어서는 문화, 그것이 바둑이었다.

 

그로부터 우린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바둑이란 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바둑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80년대 말까지 바둑은 그런 방식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대화와 만남, 그리고 승부는 하나로 모인다.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사(敍事, narrative). 바둑을 두는 사람도 관전하는 사람도 감상하는 사람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바둑은 생명을 갖는다. 아마도 지난 90년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돌아볼 때 배워야 할 바둑문화의 본질 하나는 함께 한다는 것이고, 그 속성은 이야기일 것이다.

 

한국기원 3층의 일반회원실은 문화의 소광장이다. 각양각색의 연령과 인물들이 이렇게 매일같이 모이는 곳도 없다. 수많은 인생행로가 제각기 뚜렷한 개성을 주장하며 간단없이 교차하고 있다. 교통의 지휘자가 따로 없어 매우 불규칙하고 무질서하지만, 바둑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갖는 깊고 부드러운 힘으로 해서, 일반회원실은 고도로 세련된 무도장이 된다. 정신의 제너럴 하스피탈이다.” (“공배를 메우면서이광구. 바둑1985.7)

 

90년대에 그런 문화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도시화와 인터넷이 가장 큰 원인인데, 그러나 바둑에 쇠퇴의 기미가 온 것은 인터넷이나 도시화에 따른 기원의 상실과 같은 현상에만 원인을 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바둑계가 바둑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었느냐의 여부였다. 기원이 사라지고 있을 때 바둑계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90년대 중반 새로운 현상이었던 바둑TV의 문제다.

 

바둑의 승부와 바둑의 내용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느냐? 그것에, 바둑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전문기사의 정체성과 사회적 인식이 크게 흔들린다는 것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느냐? 오늘 바둑사의 모티프로 기원을 붙잡은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다. 

 


바둑TV 스튜디오 대국 모습.



4. 바둑TV는 바둑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해왔다

 

바둑이 사회적으로 깊은 이해를 받고 있는 일본에도 없는 바둑 전문TV1995년 한국에 개국되었다. 참으로 기쁜 일로 당연히 바둑TV가 바둑의 확산과 발전에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미 주의가 주어지고 있었다. 바둑TV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그러니까 198510월호 바둑제한시간 소고19로 주변을 돌아보는 글이 하나 있었다. 당시 SBS 기자였던 신병식 씨가 쓴 글인데, 아마7단의 실력으로 안목이 예리했다. “바둑이 지니는 예술과 스포츠의 양면성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예가 바둑의 제한시간이다. ... “스포츠의 속성이 강조된 속기와 예술성이 요구되는 본격 신문기전으로 이원화될 전망이다.”

 

그 안목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현실이 되었다. 바둑TV에서 주최하는 기전의 크기가 신문기전의 크기를 압도해버린 것이다. 한국바둑리그가 바로 그것으로 이름은 몇 번 바뀌지만 내용은 같다. 작은 기전도 TV에서 주최하면서 바둑TV는 바둑의 권력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바둑TV는 모든 기전을 속기로 결정했다. 바둑TV 임진영 PD의 말이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시청자가 지루하지 않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입니다. 거기에 맞추다보니 제한시간 10분이 대종을 이루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것이 바둑의 질을 꼭 떨어뜨린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사들의 자세 문제 아닐까요?” (바둑2008.11)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바둑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기사들의 자세는 독립변수가 아니다. 자세는 기사들이 살아가는 생태학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시간과 장소에 의해서 영향 받지 않는 인간이 있다고?

 

자세 문제? 그건 맞는 말이다. 한국기원의 자세 말이다. 한국기원은 참으로 안목이 부족했다. 시간이 줄어들면 반상은 물론이고 애기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조그만 의문도 갖지 않았다. 주의 내지 경고가 한국기원 책임자들에게 주어졌지만 무사안일하게 넘어갔다. TV가 아니라 한국기원이 내용에 대해 책임과 주도권을 가져야한다는 주의는 소용이 없었다.

 

바둑TV 10분 바둑은 몇 가지 심각한 영향을 바둑에 미쳤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바둑의 정체성과 바둑인의 정체성 모두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사회적 인식과 지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1) 바둑의 질이 떨어진다. 속기로 두니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두텁고 단조로운 수법만 반상에 떨어진다. 큰 스케일이나 멀리 내다보는 바둑은 나오기 힘들다.

 

2) 기사의 능력을 떨어뜨린다. 10분 바둑에서의 실수를 반복하면, 또 그런 습관을 들이면 정작 3시간 바둑에서의 대처 능력을 현저히 무너뜨린다. 이는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중국에 점차 밀리는 현상에서 곧 확인할 수 있다.

 

3) 10분의 제한시간에 무슨 기사의 기풍이나 품위, 내면의 고뇌가 들어설 기회가 있을까. 승부만이 양산된다. 이는 이야기를 사라지게 한다.

 

4) 리그전이 중점이다 보니 개인의 이야기 또한 사라진다. 기사는 자신의 긍지를 드러낼 기회가 없다. 점차 개성이 무뎌지고 기사로서의 정체감이 모호해진다. 바둑계의 활력은 떨어진다.

 

바둑TV의 기전 운영방식이나 방영 방식이 바둑에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견해는 사실일 것이다. “중장년층의 비율이 높은 바둑채널 시청자들의 강한 충성도와 마니아 성향이 기업주와 홍보 관계자들에게 확인되면서 신설 프로기전의 경우 일간지보다 바둑TV 주최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신병식, “바둑과 방송2009 대한민국 바둑백서).”

 

그러나 다음도 사실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둑의 이미지나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바둑TV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미지나 정체성, 품위 등이 바둑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할까?

 

TV 자체는 바둑에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무릇 모든 인간의 이기(利器)가 그렇지 않은가. 문제는 운영이다. 한국기원은 바둑의 내용과 애기가의 즐거움을 생각하지만, 바둑TV는 그렇지 않다. 바둑TV는 사업체이다. 그뿐이다. 바둑을 활용해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체이지, 바둑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아니다. 한국기원은 그 점을 여전히 잘 모르는 거 같다.

 

한국기원은 과연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있을까?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대가가 오는 것. 그 중의 하나는, “바둑이란 이런 거야.”-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관심과 지원의 변화다. 만약 바둑이란 이런 거야.” 하는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바둑을 알게 되고 평가하나? 바둑과 관련된 모든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 변하는 것, 그것은 실로 두려운 무게를 가진다.

 

바둑을 배우지 못한 국민들이 바둑을 배울 의향은 바둑의 가치가 높을 때야 비로소 가능태에서 현실로 된다. 가치 낮은 재화에 비용을 들이는 사람은 없다. 가치 낮은 재화에는 적은 비용만 들이게 될 뿐이다. (2)를 보자. (2)는 바둑TV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는 명확하게 알려준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바둑의 가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바둑이란 이런 거야.”에서, 이런 거의 가치가 별거 아닌 거가 된다는 것이다.

 

(2) 바둑을 둘 줄 모르는 국민의 바둑 학습 의향

 

전혀 없다

별로 없다

약간 있다

매우 많다

1997. 4

   35.1(%)

27.3

29.8

7.8

2008. 6

56.3

27.3

14.4

1.9

(정용진, “바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2009 대한민국 바둑백서)

 

(2)10년 사이에 급격하게 가치가 떨어진 바둑의 오늘을 잘 보여준다. 바둑을 배울 의향이 전혀 없다는 항목만 보아도 97년엔 10명 중에 3~4명이던 것이 10년 후인 2008년엔 6~7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배우고 싶다? 반 이상 뚝 떨어졌다. 10명 중 3~4명에서 1~2명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바로 이런 거에서 별 거 아닌 거로 바둑의 가치가 변했기에 나온 현상이다.

 

만약 별 거 아닌 거에서 이런 거로 변했다면 비율의 변화는 정반대 방향이 되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나 인간의 행동 원칙에서 볼 때-비율이 변했기에 이런 거별 거 아닌 거로 변한 것이 아니다.

 

 

무거운 이야기에서 벗어나 기분전환으로 바둑 하나 보자.

 

2(초반의 53)

저 상황에서 흑253분을 들인 대응이다. 평범하여 어디에 두어도 좋을 법한 저 장면에서 53분을 소비했다. 그러나 바로 저 시간이 우리의 의식과 의미를 얻는 시간이다. 시간은 우리가 그 속에 잠길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197412, 9기 왕위전 도전5. 백 왕위 하찬석 : 흑 도전자 김인)

▼ 53분의 고뇌


기원에서 우린 잠긴다
. 분위기에 의해 빨리 둘 수도 있으나 시간은 자유롭게 주어져 있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기원의 깊은 맛이었다. 대화는 시간을 조급히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분 바둑과 5시간 바둑에 내용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선택이 남겨진 장면에서 조금도 숙고하지 않고 덥썩 덥썩 두어갈 때 대국자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TV를 통해 시청하는 애기가는 반상의 고뇌를 조금도 공감할 수 없다. 반상 넓은 초반에서 우리의 내면을 무시하고 단지 성급한 묘기만을 부여하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를 건질 수 있을까? 의미가 약해질 때 대체 누가 그 좁아진 의미에 가치를 두게 될까? 내일은 곧 오늘로 다가오는 법이다.

 


1967년 창간호(8월호)인 [기계]. 2년 뒤인 1969년 8월호부터 지금의 월간[바둑]으로
잡지명을 바꾸었다.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바둑잡지이다.


 

5. 바둑책의 변천

 

바둑의 흥망성쇠는 관념의 흥망성쇠이다. 우리가 기원이나 반상, 다방, 책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관념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으킨 관념과 무너지게 하는 관념. 그러므로 책도 기원, TV 등과 같은 맥락에서 다뤄질 수 있다.

 

기원의 흥망은 한국기원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는 조류였다. 큰 사회적 변천을 어찌 그 사회의 하위문화인 바둑이 변화시킬 수 있으랴. 그러나 책의 흐름은 지나쳤다. 실제로 한국기원은 이 문제에서도 손을 놓았던 것이다.

 

물론 한국기원은 바둑생활바둑가이드도 만드는 등 노력도 했다. 당시는 한국기원 밖에서도 주간 바둑신문이 나오는 등 바둑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을 때였다. 그러나 높아진 관심도가 차가워지자 한국기원은 월간 바둑하나를 제외하곤 모든 단행본을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출판은 쉽지 않다. 한때 15만 부나 나가던 일본의 슈칸 고(週刊 碁)도 이제는 옛말이니 단행본 시장의 폐허와 쓸쓸함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줄이는 것과 손을 떼는 것은 다른 것.

 

한국기원이 손을 뗀 이유는 간단하다. 적자니까. 그러나 노력하고서 적자였을까? 1978정석사전을 처음 출간한 이후 과연 제대로 된 책을 만든 적 있던가? 물론 모든 책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둑교실의 수련장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기원이 펴낸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내용의 성실도가 많이 떨어진다.

 

89년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과 연이은 세계대회 제패는 바둑의 급격한 팽창을 가져왔는데, 그 때를 전후하여 내용이 충분치 못한 책이 대거 양산되었다. 책의 부실은 한국기원의 책임만은 아니다. 많은 출판사가 내용이 부실한 책을 유명기사의 이름만 빌려서 찍어냈다. 내용 부실하고 가치 떨어지는 책이 서점에 즐비했다. 문제는, 그런 책들에 대한 애기가의 반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둑의 세계에 대한 애기가의 평가절하를 불러오는 것이다.

 

(2)에서 보듯 바둑책 시장은 1990년을 전후해서 크게 변했다. 여기서 내용을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담긴 내용도 많이 변했다. 당시 바둑이 한참 붐이 일어날 때라 급하게 책을 만들어서 찍어낸 탓이다. 내용의 부실이 가져다 준 것이 어찌 없을까. 애기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서점에 가도 볼 만한 책이 없으니...” 솔직히 말하여 일부 기사가 직접 성의를 갖고 쓴 몇 권을 제외하고는 일본책 해적판 번역이 훨씬 나은 내용을 보여준다.

 

90년대 초부터는 학원용 교재와 비디오가 주류였다. 섬세한 이야기와 대국자의 감성을 알려주는 그런 책, 이야기와 공부가 함께 들어있는 책은 사라지고 있었다. 90년대 중반, 바둑학원이 급증하면서 책은 더욱 필요했는데, 일종의 참고서와 같은 수련장이 많았다.

 

(3) 바둑책의 성장과 쇠퇴(바둑8월호에 광고된 것만을 3년마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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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조남철의 바둑개론 행마의 급소 등, 수법에 관한 책이 주류.

          일본책 해적판이 나옴

1973. 현현각 10번기집, 고전총서, 오청원 기담

1976. 일본명인전 전집, 실전정석(한국기원 발행 첫 단행본)

 

1984. 조치훈 바둑시리즈

1987. 조치훈 바둑시리즈

 

1990. 속성바둑레슨시리즈(15, 일신서적)

1993. K2윈도우용 - “바쁜 세상에 언제 책보고 공부하십니까?”
      (
, 큐닉스데이터시스템)

          조훈현 바둑비디오(8, 바둑신문) 등 비디오 출시 3

1996. 천하수담, 천하바둑(한글과 컴퓨터)

1999. (책 광고 없음)

2002. 바둑TV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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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한 현현각의 바둑책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바둑책의 편집과 내용에서 격조를 높인 것으로, 바둑의 이미지와 세계에 대해 폭넓은 긍정을 던져줄 정도로 의미 깊은 기획이었다. 고전을 접함으로서 역사와 깊이를 현실에 가져온 것이다.

 

잠시 기분전환 어떠신지?

 

3(발양론, 위기고전총서 중에서)

현현각에서 발행한 묘수풀이 책에서 얻은 것이다. 우상귀 백이 사는 수는?

▼ 묘수풀이

▼ <3-1도> 삶의 묘수

 

3-1
1, 3 젖힘이 묘수.
이후 <3-2> 순서로 산다. ab는 맞보기로 한집이 마련된다.

▼ <3-2도>

 

 

 

6. 기원과 책, 바둑TV에서 얻는 교훈은

 

 

비록 책이 바둑인구 격감을 말해주는 요인은 아니겠지만, 거품 같은 성장에 몰두해온 한국바둑계의 안목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바 있다. 바둑책은 바둑인의 인격 즉 사회적 인식을 만드는 것으로, 생태학적 환경에 따라 인간의 인식이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바둑의 기반을 보면 일본과 달리 중간계층이 없었다는 점을 절감한다. 아마도 한국기원이 노력을 했어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속도는 참으로 빨랐다. 기사들도 알고 있었듯이 기전의 성장은 가벼운 것이다. 경제적 여건에 의해 쉽사리 기전은 사라질 수 있다. 그것은 1997IMF 때 경험해본 바이고, 또 그 이전에도 많은 기전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기전의 부침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84년 기사들의 취업과 애기가 100만 명 멤버십 운동은 호응을 얻었는데,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기는 힘들었다. 한국 사회는 일본에 비해 직업의 유동성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모두가 저변확대를 위해 직장바둑과 아마추어 단위(段位)의 보급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책과 기원. 이를 통해서 강조하고픈 것은 국민들의 의식이란 것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그것이 몸으로 체득된 것이라면 그것은 오래 간다. 그러므로 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만약 책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전문지로서의 월간 바둑이 어찌 그리 오래 남을 수 있겠는가. 넓은 바둑 애호가 층을 위해서 한국기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의 하나는 여기에 있다.

 

가치를 높이는 작업은 당장은 눈에 아니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2)를 다시 돌아보라. 10년은 금방 지나간다. “바둑이란 이런 거야.” “바둑이란 별 거 아닌 거야.” 그 차이가 당장 눈에 아니 보인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파악할 수 없다면 문제의 해결 또한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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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2013-02-12 오후 12:00: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 TV의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면 바둑 TV가 나오고 나서 다른 방송이 바둑을 잘 보도하지 않는 다는 것이죠 이번 설에도 장기대국을 방송했는데 바둑대국은 방송 안했읍니다
바둑TV가 생기고 나서 시정차가 바둑텔레비젼으로 모이다보니 방송을 안한거 같읍니다  
高句麗 |  2013-02-12 오후 12:02: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러다 보니 초보자들이 오히려 바둑을 접하기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바둑 텔레비젼은 중급자들이 배우기 좋지만 초보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여러 사람에게 바둑을 널리 알리는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다 봅니다.
인터넷 바둑도 중국자들을 묶는데는 도움이 되나 초보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바둑을 널리 보급하는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다는거 알아야 합니다  
高句麗 |  2013-02-12 오후 12:04:5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터넷이나 바둑텔레비젼이 바둑보급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중급자를 위한 프로그램보다 초보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더 많아야 합니다 즉 단수도 모르는 초보자가 쉽게 접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장사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나 바둑텔레비젼이나 중급자를 위한 프로그램만 만들고 그러다 보니 이것이 여러사람에게 바둑을 보급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봅니다  
高句麗 |  2013-02-12 오후 12:07: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인터넷 바둑이 생기고 나서 사람들이 신문에 나오는 기보를 잘 안보게 됩니다 즉 신문에 나오는 바둑이 인기가 떨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접하지 못하여 바둑보급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죠 인터넷에서 공짜로 바둑소식을 접하니 신문의 바둑기사 인기가 떨어지죠 그러나 인터넷이나 바둑텔레비젼은 바둑보급 관심 없읍니다 장사가 목적이니까요 그래서 초보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고  
高句麗 |  2013-02-12 오후 12:12: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래서 저는 인터넷이나 바둑 텔레비젼이 바둑 보급하는 데는 방해가 되었고 다만 기존 바둑팬들의 실력향상이나 기존 바둑팬들을 묶어 두는데는 도움이 되었다 봅니다.
다만 기존의 바둑팬들을 묶어둔 숫자보다 바둑텔레비젼이나 인터넷 바둑때문에 초보자를 끌어들이지 못한 숫자가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 봅니다.
인터넷 바둑이나 바둑텔레비젼 때문에 바둑을 배우게 되었다는 사람 한명도 없읍니다  
高句麗 |  2013-02-12 오후 12:15: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러나 인터넷 바둑이나 바둑 텔레비젼때문에 신문이나 타방송의 바둑프로그램 인기가 떨어져서 방송을 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둑을 접하지 못해 놓친 초보자는 엄청 많다는 것이죠
또 바둑 텔레비젼아니 바둑 텔레비젼 때문에 바둑책 저술이 줄어들어 많은 사람들이 바둑책을 통해 바둑을 접하는 초보자가 많이 줄어든 사람은 많으나 반대로 인터넷 바둑이나 바둑텔레비젼을 통해 바둑을 접한 초보자는 없다는게  
高句麗 |  2013-02-12 오후 12:17: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과언이 아니죠 따라서 인터넷 바둑이나 바둑 텔레비젼이 바둑 보급을 위한 인터넷이나 바둑텔레비젼으로 바뀌지 않으면 장기으로 보면 바둑 텔레비젼이나 인터넷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18센티 |  2013-02-12 오후 12:18: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사범님의 혜안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20년 애기가인 저조차도 의식의 밑바닥에 흩뿌려져있던 바둑의 실루엣을 아프게 관조하는 혜안 참으로 동감합니다..좋은글 잘읽었습니다  
18센티 |  2013-02-12 오후 12:20: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나저나 고구려 저 물건은 여름에 싸질러놓은 똥에 똥파리가 끓듯이 여기저기 안끼는데가 없네.. .. 유식한척은 하고싶고 아는건없고 스스로가 뭐라 지껄이는지도 모를듯..백수나부랭이 중늙은이인가???뻘소리 그만 지껄이고 찌그러져있었으면~퉤  
일미뷔페 |  2013-02-12 오후 1:4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조오기~~ 위에 고구려 인지 고구마 인지...... 정신병원 상담을 권합니다 ㅡㅡ;;;;  
서해바다~ |  2013-02-12 오후 2:08:1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글 잘보았습니다~공감가는부분이 많은 내용~ 문사범님 감사합니다~  
하이디77 |  2013-02-12 오후 8:26: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금 바둑학원에서 사용하는 사활 수련장은 현현각양지와 바둑토피아, 지혜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바둑을 배우고 6개월이 넘고 2년 남짓 된 아이들이 풀어보는 수련장이지요. 왕초보용 사활책은 아예 없고, 유단자 이상이 되면 단행본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됩니다. 일본책을 짜집기해서 문제만 모아놓은 수련장을 만들어 쓰기는 하지만, 정말 아쉽습니다.  
하이디77 |  2013-02-12 오후 8:30: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기원에서 기존에 나와 있는 사활문제들의 등급을 매기고, 수준별로 엮어서 출판하는 기획은 계획에 없을까요? '한국기원에서 발행한 사활사전 20권' 이 정도 기획은 되어야 멋진 책이고, 수준있는 책이고, 전설이 될 수 있는 기획물이 되지 않을까요?  
하이디77 바둑은 사활을 전면에 내세우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아이콘이 될 수 있습니다. ^^*
하이디77 바둑의 다른 분야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노숙자50 |  2013-02-13 오전 10:48: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박사님이 동시대인인지 궁금하네요.  
대충대충 |  2013-02-13 오전 10:52: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이디77님의 위 의견에 전적으로 찬동합니다.
덧붙이자면, 한국기원은 제대로 된 정석사전을 편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존의 단행본 정석사전은 일본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나 빈약합니다.
온갖 경우의 수가 망라된, 제대로 된 정석사전을 만들자면 상당한 자금과 인력, 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기원이 TF팀을 만들어 세계 기우들의 역작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이디77 '바둑대백과사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A4크기의 700페이지짜리 10권 정도로 해서 말이지요? ㅎㅎㅎㅎ
하얀솔 |  2013-02-13 오후 6:40: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 (표1) 에서 TV, 인터넷 매체를 통해 바둑학습한 사람의 비율은 11.8%에 불과했습니다. 90년대이후 바둑을 배운 이들에게는 바둑의 끈이 약하다는 본문주장은 바로 이 11.8%를 두고 하신 말씀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11.8% 때문에 그래도 약한 아마추어와 프로와의 직접적인 연계가 더욱 허약해진 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나머지 89.2%는 아마-프로 연계를 이야기할 때 그저 머릿수만 채우는 愚中에 불과한가요...  
하얀솔 |  2013-02-13 오후 6:51:49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2. 90년대이후 기원의 쇠퇴는 인터넷이나 도시화라는 환경변화 그 자체보다는 환경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점이 가장 큽니다. 젊은 세대라 하여 오프라인 모임을 회피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오프라인을 통한 취미활동에 적극적입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에게 스크린골프가 유행이고, 보드게임방도 온라인게임 규제강화 따른 반사이익으로 다시금 서서히 예전 인기회복중입니다.  
하얀솔 |  2013-02-13 오후 7:10: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나저나 기원의 쇠퇴가 어떻게 프로기사 활동영역을 더욱 제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의문입니다. 70년대까지는 프로기사들의 상금/대국료外 수입은 거의 동네기원에서의 지도대국료였나요? 그렇다면 이전글에서 <애기가들이 일본처럼 기사와 직접 연계되고 배움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은 한국에는 언제나 부족했고 지금도 힘들다>라는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하얀솔 |  2013-02-13 오후 7:24: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3. '바둑이 사회적으로 깊은 이해를 받고 있는 일본에도 없는 바둑 전문TV가 1995년 한국에 개국되었다'고 하셨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위성방송인 圍碁/將棋 채널이 1991년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일본바둑/장기 전문채널이 한국바둑TV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7대기전은 독점게재권때문에 생중계를 하지 못하는 점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명인전/국수전 등은 TV로 볼 수 있습니다.  
하이디77 헐... 몰랐네요. 전문가 수준의 깊이 있는 내용이군요.
하얀솔 |  2013-02-13 오후 7:49: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4.'TV가 아니라 한국기원이 내용에 대해 책임과 주도권을 가져야한다는 주의는 소용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당연합니다. 바둑리그는 바둑TV가 만들고 키운 기전입니다. 한국기원이 바둑리그 주도권을 가진다라는 것은, '우리(한국기원)이 이제부터 안방쓸 터이니, 당신(바둑TV)들은 안방 내주고 건넌방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말 몇마디로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무사안일을 탓하기도 힘듭니다  
하얀솔 |  2013-02-13 오후 8:12: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5. (표2)에서 바둑입문 희망자수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는 바둑이 '별거 아닌 거'로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2008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과반수(53.3%)는 他 오락/취미에 비해 바둑이 '상당히 유익하다'고 인식했습니다. 이는 11년전의 51.8%보다 소폭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하얀솔 |  2013-02-13 오후 8:31: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非바둑인 중 바둑배울 의향이 전혀없다는 비율이 1997년 35.1%에서 2008년 56.3%로 크게 상승한 주된 이유는 바둑진입 장벽때문입니다. 하이디77님이 짚어주신대로 왕초보 사활책은 아예 없다시피한 상황이라면 지레 겁먹고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배우기시작했다 한들 다른 초보들과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태부족이라 바둑동네로 한두걸음 들어왔다가 돌아나갈 것입니다. ('동네기원 가라'는 답이 아님)  
티큐 |  2013-02-23 오전 4:18: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베팅으로 현금쓰게 만든 인터넷바둑도 문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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