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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의 여성, 성장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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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의 여성, 성장과 희망
2013-02-08 조회 12582    프린트스크랩
▲ 1975년 대한기원이 주최한 1회 여류입단대회를 통해 한국바둑 최초의 여성기 사가 된 윤희율-조영숙. (자료사진/[棋道] 1975.11월호)

 

 

1. 여류바둑의 역사, 스케치

 

한국에서의 여성과 바둑. 쓰려고 하니 다음 글이 먼저 기억난다. 1979바둑2월호 여성살롱에 실린 윤희율(당시 프로 초단)저변확대의 밑거름제하의 글이다.

 

상위그룹의 선수들은 일본의 아마추어 정상급 선수들보다 오히려 강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막강한 실력이나, 뒤를 이어줄 저변확대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저변확대에 있어서 남자 열 사람 가르치는 것보다 여성 한 사람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다. (중략) 모든 것이 가정위주로 되어가고 있는 요즈음에 여성의 이해 없이 바둑을 즐기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

 

35년 전의 글인데 오늘과 무엇이 다를까. 몇 가지가 다르다. 당시는 프로가 2명이지만 이제 여류 프로는 50명 선이다. 저변확대는 어떨까. 그때에 비해서 여성바둑 인구는 많겠지만, 그러나 큰 차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다. 그런 기분은 이 글의 보수적 시각 때문인데 여성바둑 인구는 적으면서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009 대한민국 바둑백서를 보면 (1)과 같은 자료가 있다(정용진, “바둑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이를 보면 여성인구가 매우 적은 듯한데, 그러나 (2)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1) 성별 바둑인구(국민 전체에 대한 %)

 

92

97

2000

2004

2008

전체

36.3(%)

28.9

32.0

20.3

20.5

남성

63.4

50.6

44.6

38.0

36.4

여성

9.7

7.8

3.5

3.3

5.1


같은 책의 바둑과 방송”(신병식)을 보면 바둑TV의 여성 시청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2).

 

(2) 시청자의 특징

----------------------------------------------------------------------

비고

시청비율 남성(80%) / 여성(20%) 여성의 비율이 전체 바둑인구에 비해 높다

구매자 90%30대이상 남성 구매력을 지니고 의사표현이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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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활동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1)(2)는 알려주는데, 이를 헤아릴 때 여성의 바둑인구는 특히 활동성을 기준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75년 9월25~26일 열린 1회 여류입단대회 모습.
(자료사진/ [棋道] 1975.11월호)

 

잠시 여성바둑의 역사를 가볍게 스케치 하자.

 

(3) 여류 바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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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3 1회 여류왕위전 (30명 참가)

1967 1회 여성바둑선수권전 (10명 참가)

1971 YMCA 여성 바둑특강 (수강생 약 50여명)

1975 1회 여류 입단대회 (조영숙 27, 윤희율 27)

1975 대한여성기우회 창설 (1979 현재 회원 100여명, 1995 여성바둑연맹으로 개칭)

 

2

1990 2회 여류입단대회 (남치형 15, 이영신 13)

1999 16회 여류입단대회 (김혜민 13) 여류기사 23.

 

3

1999 루이 9, 한국기원 객원기사 활동

2000 루이 9단 국수전 우승(대 조훈현 2:1 승리)

2003 조혜연 5단 제9기 여류국수전 우승(대 루이 2:0 승리)

2008 박지은 제1회 원양부동산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우승, 9단 승단(대 루이 2:1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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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케치에 의하면 여성바둑의 발전에는 1990년 이후 여류입단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한 것이 요긴했으며 루이 9단이 한국에서 활동한 것이 또 하나의 전환점이라는 인상을 준다.

 

여자들끼리의 활동이라는 인상도 강하다. 2000년 루이의 국수전 우승을 제외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입단대회도 여류들만의 대회인데 연령이 낮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 효과 때문인지 2008년 박지은의 세계대회 우승과 9단 승단이 보여주는 것처럼 1990년 이후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들의 실력은 급상승했다.

 

참고로 (4)를 둔다.

 

(4) 여류프로기사, 전체 프로기사 비율과 숫자, 여류기전 수

 

남성

여성

전체기전 수

여성기전 수

1975

68

2

8

0

1990

103

3

13

0

1999

140

24*

16

2

2011

222

46

17

3

* 외국인 4명 포함

 

 

2. 여류의 실력, 변천사

 

실력은 어떨까. 격세지감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인데 시대 순으로 추이를 보도록 하자.

 

1(1963년 여류정상의 실력)

1로는 좌하귀 흑을 먼저 공격하고 싶다. 4 이후는 <1-1>로 진행되었는데, 모자를 잘 쓰는 것으로 보아 기초가 좋다. 당시의 프로 정상에게 약 4점 정도 차이 있지 않을까 싶다. 흑을 잡은 조영숙이 한국 최초의 여류프로기사다.(1963년 조선일보 주최 제1회 여류왕위전 결승. 5급 박정희 : 4급 조영숙)

▼ 1회 여류왕위전 결승. 조영숙-박정희

▼ <1-1도>

 

참고로 일본의 여류 아마추어 실력을 보도록 하자(아래 <2>). 이에 비추어 당시 한국 여류 정상들의 실력 또한 짐작할 수 있겠다. 오늘날 여류 프로들의 실력은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는데, 루이 9단이 한국에서 활동한 이후 한국의 여성바둑은 2점은 실력이 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80년대까지 한국의 여류는 일본에 비해 다소 약했다.

 

2(윤희율이 한국바둑의 자부심을 높이다)

1213에 뻗는 것이 급소. 두 번의 2단젖힘을 하는 윤희율의 힘이 강하다. 공식적으로 우승자는 프로 정상에게 3점으로 배웠다.(1972년 제14회 전일본여류아마선수권대회 결승전. 荒川和子 : 흑 윤희율)

▼ 일본 여류아마선수권대회를 석권한 윤희율

 

1990년 제2회 여류입단대회를 보자. <3>에서 보듯, 그 수준은 70년대보다 훨씬 뛰어난데, 그러나 남성들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

 

3(15년 만의 여류입단대회)

1A에 둘 곳. 실전엔 흑7 한 수 더 들였다. 두텁긴 하지만 다부진 면이 부족하다. 그 점은 우하 흑3에서도 드러난다. 4에 밀어 싸울 곳. 3도 두텁지만 그래도 약하다. (1990년 제2회 여류입단대회 결정국. 백 윤영선 : 흑 남치형)

▼ 윤영선-남치형. 2회 여류입단대회

 

실력으로 볼 때 남자 프로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느냐? 1990년 프로정상 대 여류아마최강 치수고치기가 있었는데 유창혁 5단에게 노상희 아마 5단이 3점으로 두었다. 노상희는 여류입단자와 실력에서는 차이가 없었지만 3점으로도 졌다.

 

그러나 실력의 차이를 여자와 남자의 재능 차이라고 해서는 아니 된다. 바둑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어려운 입장을 가지고 있다.

첫째, 여성들은 결혼 후 가사에 얽매인다. 이는 여자의 경제력이 향상된 지금에 있어서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둘째, 성적 정체성 확인과정을 거치면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사회적 활동을 하기 힘든 조건에 처한다. 앞서 (1)(2)에서 나타난 여성바둑 인구와 바둑TV 시청비율의 큰 괴리도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셋째, 당장 현실에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서 실전 경험을 가질 기회가 매우 적다

잠시 활달한 재능을 하나 밝혀두자. 다음 <4>가 그것으로 당시 황정경 아마4단은 시원시원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황4단은 얼마 후 더 이상 활동하지 않았다.

4(패기와 저력)

1, 3의 호흡이 좋다. 더 나은 수가 있더라도 그렇다. 5는 빼어난 감각이다.(1971년 여류특별대국, 4단 윤희율 : () 연구생2급 황정경, 백 덤5

▼ 윤희율-황정경 특별대국
)



왼쪽이 윤희율 초단, 오른쪽이 경기여중생 황정경 소녀.
일본 소화약대에 재학중이던 당시 여류아마최강 윤희율이 다시 도일하기에 앞서
가진 특별기념대국이다. 황정경은 이후 1975년 1회 여류입단대회에서 조영숙에게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 프로 문턱에서 좌절하는데, 이후 이대에 진학한 그는
이슬아보다 훨씬 앞선 '바둑얼짱'으로 유명세를 탔다.(자료사진/월간바둑)
 




여성들의 실력은 1999년을 기점으로 크게 향상되었는데 이는 중국인 루이 9단이 한국에서 프로기사 생활을 하면서부터이다. 실로 루이의 실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조훈현의 평가를 들어보자. (바둑2008.2)

 

당연히 루이 9단이 일등공신이라고 봐야지요. 루이 9단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박지은, 조혜연도 상대가 안 됐지만 지금은 많이 따라 잡았잖아요. 그 사이 얻어터지면서 배운 게 컸다고 봐야지.”

 

정작 조훈현 자신도 루이에게 2:1로 져서 국수 타이틀을 뺏긴 적이 있을 정도다. 물론 그 다음 해에는 조훈현이 국수를 다시 찾긴 했지만. 그 바둑 한번 보자. 루이는 이창호도 이긴 적이 많고 응씨배 8강에도 오른 적 있다.

 

5(국수전에서 조훈현을 이긴 루이)

1이 탁월한 감각. 다음 흑3이 강타로 이후 <5-1>의 실전진행은 갈라진 백이 좋지 않은 흐름이다. 3에 백a는 흑b 끊어 백이 나쁘다. 싸움의 집중력에서 루이만큼 큰 힘을 보이는 기사도 드물다.(1999년 제43기 국수전 도전 2. 백 국수 조훈현 : 9芮乃偉)

▼ 바둑사 최초의 여성국수, 루이

▼ <5-1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을까? 한국의 소녀들이 루이와 비슷한 수준이 되기까지는, <6>가 그 답의 일부다.

 

6(한국 바둑소녀, 루이를 이기다)

2004년 제2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박지은 4단은 준결승에서 루이 9단을 이겼다. 1이 반상 안목이 대단히 넓다는 것을 증거한다. 3 또한 그렇다. 두텁게 두면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니 안목 넉넉하다.(2003년 제2회 정관장배 준결승 1. 9芮乃偉 : 4단 박지은)

▼ 루이 극복한 박지은

 

그 후 박지은은 2008년 제1회 원양부동산배 세계여자대회에서 루이에게 2:1로 승리하여 국내여자기사 최초로 9단에 승단했다. 2회 정관장배, 1회 대리배에 이은 세계대회 3번째 우승이었다.

 

그러니까 여류입단대회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을 때, 그리고 루이가 한국에 정착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한국의 소녀들은 루이의 수준까지 밀고 올라간 것이다. 이 사실은 여성들의 재능과 성장에 대해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루이의 10년 철옹성을 무너뜨리다!
2008년 1월17일은 한국 여성바둑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다.
박지은 8단이 베이징에서 열린 1회 원양부동산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루이나이웨이 9단을 316수 끝에 백불계로 물리치고 우승컵을 품에 안은 것.
박지은은 세계여자바둑 정상에 오르면서 동시에 국내 첫 여자 9단이 됐다.
 

 

3. 한국 여성바둑의 성장 논리

 

루이의 한국 정착 이후 도달한 여성바둑의 성취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소수의 숫자라도 집중해서 공부하면-앞선 사람이 있을 때-애기가들의 층이 두텁지 않더라도 수준은 크게 진보할 수 있다.

2) 바둑 공동체는 제일 앞선 실력자의 수준을 곧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3) 정책적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

 

1)2)에 대해서는 다음 사실 덧붙일 때 동감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그건 조훈현이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활동하면서부터 한국 기단의 실력 또한 그에 부가되어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서봉수의 실력이 크게 성장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3)도 중요한 문제인데, 한국기원의 정책 중에서 성공한 것 중의 하나가 여성 프로 기단의 수준 향상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한국기원의 정책은 여성의 경우 상당한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긍정적 결과를 이론적으로 요약한다면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할 수 있겠다.

 

1) 열린 시스템이 중요하다.

2) 공동체는 1인자의 수준을 따른다.

 

두 이론은 매우 긴밀한 관계에 있지만, 그러나 나누어서 분석할 필요는 크다. 사실, 문호를 개방한다는 측면은 대단히 중요해서 둘 기회가 없으면 실력이 늘 수 없다.”는 명제와 그대로 일치한다. 그리고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은 곧 열린 시스템(open system)이라는 것이니, 바둑이란 것은 곧 경쟁하는 만큼 수준이 향상된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거 같다.

 

앞서 조훈현의 평을 보았는데, 실로 여성들의 경우 입단 후에는 남성들과 함께 모든 기전에 참여하느니 만큼 루이에게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었다. 남성들은 여성만의 기전에는 출전할 수 없지만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느니 만큼 여성들의 배움의 기회는 크다.

 

여성들은 연구생시절에서도 남성들과 함께 경쟁한다. 다만 실력이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 연구생에게 미치지 못하기에 정책적으로 여자들만의 입단대회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남자들과 함께 경쟁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관련해서 <7> 1에 대한 평을 보도록 하자.(기계(棋界)1967.1)

 

7(순박 속에 숨은 패기)

그러나 저러나 박양이 날린 흑1의 모착은 이 판의 승패를 가름지을 수 있는 전단의 불씨를 안고 왔는데, 이 모착의 착의는 좌변쪽의 백과 우하방의 백을 크게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로 따지자면 어딘지 미숙해 보인다.”

그랬다. 이후는 백A B C D 진행이었는데, 좌측 흑이 약해서 흑1은 무리였던 것이다. (1967년 여류최강 대 명사친선대국. 3단격 박시헌 : 3단격(여류 준왕위) 박정희)

▼ 67년 여류정상급의 행마

 

바로 그것이다. 미숙해 보인다. 실제로 여성들의 바둑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현상인데, 이는 1999년 루이가 오기 전까지 여류프로의 세계에서도 피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배움의 기회가 여성들의 경우 남성들에 비해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60년대는 물론이고 70년대에도 여성들이 그 많고 많던 기원에 가는 것은 사회적 인식의 수준에서 볼 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회 분위기는 여성의 내면에 경계를 세운다. 소위 장벽이 심리적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생물학적 자아가 아니라 사회적 자아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없다고 하는 것도 어리석다. 인류 선사시대 수십 만년 간의 역할 분담은 몸에 기억되어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남녀평등주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까 여성에게 한국의 바둑은 1990년 이후 열린 시스템으로 주어졌으며, 1999년에는 특히 더 열렸다는 것이다. 그렇다. 열린 시스템을 통해서 승부세계의 속성 중 하나인 공동체는 1인자 수준을 따른다는 집단 수준 향상의 논리가 한국의 여성바둑에는 적절히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여성들에게는 넘어야 할 벽이 많이 남은 듯하다. 일반 기전에서는 성적이 남성의 활약에 미치지 못하고 사회적 활동 영역에서도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 프로의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여류를 배출한 지 1990년 이래 20여 년. 시간이 많이 흘렀고 여류들의 숫자도 크게 늘었지만, 최근 어린이 바둑학원에서도 여자아이들의 수강생 비율이 4%를 넘지 못한다. 한때 10% 가까이 올랐던 비율이 이제 3-4%라고 한다.


2009년 3월, (재)한국기원이 육군 제65사단 밀물부대를 방문하여
국군장병을 위한 바둑교실을 연 이래 여성프로기사들이 주축이 되어
꾸준히 군부대 바둑보급에 힘쓰고 있다.


4. 다시 한번 여성에 대해 정책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여류프로의 발전은 바둑계의 발전과 별개일 수 없다. 그러나 그 발전이 비례의 관계인 것은 아닌 듯하다. 여성의 활동 문제로 시야를 좁혀보자. 그와 관련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질문된다.

1) 보급에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있나?

2) 여성을 끌어들일 수 있나?

3) 바둑의 이해를 다양하게 할 수 있나?

 

요즘 여류들의 활동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한 영역에서 바둑을 보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대에 바둑을 보급한다던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보급 활동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이 바둑의 확산을 어느 정도 가져올 수 있을까? 여성들의 섬세한 측면이, 남성과 달리 성취 지향적이기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들의 특성이 바둑을 이해시키는데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까?

 

아마도 이 과제는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프로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또 개인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한국기원과 바둑협회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요청되는 문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60년대 한국바둑의 고민 하나가, 오늘에도 여성바둑 인구의 확산이나 여류프로들의 활동에서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문기사에게 기전(신문기전과 여타 기업홍보 기전 등) 말고 활동 영역이 있느냐? 이는 오래된 질문으로, 60년대 말부터 제기되어왔으며 많은 젊은 기사들이 좌절감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기사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있었다.

 

애기가들이 일본처럼 기사와 직접 연계되고 배움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은 한국에는 언제나 부족했고 지금도 힘들다. 다시 말하여 여류프로의 수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여류기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성바둑 인구가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닌 바둑계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이고도 꾸준한 노력이 바둑의 저변 확대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언제나 현실이다. 여류들의 수적 증가와 높은 수준은 한국기원이 이뤄낸 정책적 성과 중의 하나이기에, 이제 다시 한번 정책적인 노력이 요청되는 때가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바둑 방과후 학교활동에서는 여성들의 활동이 바둑의 다른 영역보다 높은데, 이 사실은 여성들의 활동을 사회경제적 인구학적 안목에서 장려하고 지원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앞서 (2)에서 보았던 바둑TV 시청자 비율에서 여성의 비율이 20%를 점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역시 넓은 정책 안목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계층적인 차이야말로 사회적 안목에서의 다양한 정책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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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뷔페 |  2013-02-08 오후 5:57: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울대 정치학 박사 문용직 교수님의 글 아주 잘 읽어 봤습니다, 글자 하나 하나 까지 두번이나 정독 했습죠!~~ㅋㅋㅋ, 75년에 황정경 소녀(?) 이야기도 첨 알았고 2008년에 한국 바둑소녀 박지은 9단 소녀(?)가 루이 사범님을 이겨 최초로 챔피언에 오른것등,,, 사진도 좋고 글들이 참 재밌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용직 사범님 !!~,,ㅋㅋㅋㅋ ㅡㅡ;;;; ^*^&  
일미뷔페 |  2013-02-08 오후 6:00: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혹시 83년초 엔가 구정때 설 맞이 신춘 대국 특선으로 당시 여류 국수 였던 김영 아마 5단과 일본에서 대삼관 획득 기념으로 잠시 방한 했던 조치훈 9단과 4점 지도 대국 내용도 좀 소개해 주실수 있으신지요??.. 안되면 말구요~~, 지송~~~,,ㅋㅋㅋㅋㅋㅋㅋ  
하이디77 |  2013-02-08 오후 7:48: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마지막 부분은 객관적은 검증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바둑학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바둑학원을 두둔하는 이야기로 비칠까봐 많이 자제하는 편인데, 방과후 바둑 활성화가 바둑학원의 숫자를 많이 줄였고, 연구생의 수준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검증 방법이나 관련된 인물들이 없어서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방과후 바둑이 발전하게 되면 바둑계가 발전하기는 하는 것입니까?  
하이디77 |  2013-02-08 오후 7:54: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알고 지내던 바둑학원 원장님들이 학원 문을 닫고,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어떤 한가지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방과후 바둑과 바둑학원이 경쟁을 해서 바둑학원이 밀린 것인데, 저가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고,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추세를 내버려두면 저는 바둑도장도 몇 개 문을 닫을 거라고 봅니다.
제 예측이 틀리기를 바랍니다. ^^*  
高句麗 방과후 바둑학교가 바둑발전에 도움이 될런지 안될런지 모르나 방과후 바둑학교 다니는 애덜 보니까 가격이 싸서 그런지 그냥 심심풀이 수준으로 다니는거 같아요 시간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그러나 바둑학원 애덜은 정말로 원장님들이 성의껏 가리킵니다
高句麗 바둑학원이 발전한 이유는 학원끼리 대회를 열어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때문에 발전했다고 봅니다 방과후 학교도 대회를 통해 서로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도교사도 자신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학생도 열심히 배우고 학교에서 씨름부나 배구부도 서로 대회를 통해 경쟁하잖아요 방과후 학교도 그런 씨스템이 필요하다 봅니다 그리고 방과후 학교가 활성화 되면 바둑학원 많이 죽을 겁니다 과연 그것이 바둑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도 많이 필요하고요
高句麗 저는 방과후 학교에서 열심히 하는 애덜 추천을 통해 바둑학원으로 까지 이어지는 씨스템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방과후 학교의 발전이 바둑학원의 발전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이죠 그렇게 하자면 바둑학원생들이 방과후 학교끼리의 대회도 참여가 가능하게끔 하면 바둑학원 많이 살아 나리라 봅니다 물론 방과후 학교끼리의 대회가 만들어 지고 난 다음부터의 이야기지만
高句麗 각 학교끼리의 대회 각 지역끼리의 대회를 많이 열어야 합니다 축구나 다른 스포츠는 각 동네별 대회 각 지역별 대회가 많은데 오직 바둑만 그런 대회가 없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스포츠에게 밀리는 것이죠
도올도사 ^^ 답글에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 안가는 부분도 있네요.. 방과후는 방과후바둑의 특징과 활용을 제대로 할려고 하는 강사들이 많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방과후의 저가???(왜 저가라고 표현하시죠???)공략에 의해서 학원들이 망하기 보다는... 학원들의 제 살 뜯어먹기 식의 운영때문에 더 큰 타격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도올도사 시대가 변함에 따라 트렌드가 바뀌고 거기에 발 맞추어 나아감에 있어서 학원들은 어떻게 했었나요??? 공무원 급수제 부터.. 다양한 쟝르에서 바둑의 체계를 따라하는 곳은 많지만.. 바둑학원은 한자리에서 너무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요?? 한바연.. 전바협.. 대바협... 참.. 뭣 들 하는 짓거리인지... 바둑의 광팬으로서 볼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도올도사 그리고 방과후도.. 위에 말씀하신 그런시스템을 구축해서 하는 곳도 많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상처안주며..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대회를 많이 열고요... 문제는 그런 것도.. 현실에 부딪치죠.. 위에 말씀드린.. 대바협.. 전바협.. 한바연... 자기들이 다 옳다고 하면서.. 제 살 뜯어먹기 하는데... 어떻게 바둑계가 발전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 사이에 있는 방과후 선생님만 좋을 뿐이죠...
캐쉬리 |  2013-02-09 오후 2:34: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루이 응씨배 4강입니다.  
高句麗 |  2013-02-11 오전 7:59: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 박사님도 프로에 입단한 분입니다. 지금은 프로직에서 떠나있지만 한때 프로기사에 몸 담은 경험도 있고 지금은 프로바둑계를 떠나서 관망할수 있으니 프로 바둑계 종사자보다 제 3자 입장에서 내다 볼수 있기 때문에 더 자세히 현실을 정확히 내바보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현실 바둑계 위기의 타계는 문용직 박사님의 말씀중에 있다 봅니다 결과는 바둑계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여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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