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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는 거, 공동체의 성장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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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는 거, 공동체의 성장이라는 거
2013-02-05 조회 11701    프린트스크랩
▲ 한국바둑의 아이콘, 두 천재의 만남. 1976년 징병검사 차 일시귀국한 조치 훈을 공항에서 반갑게 맞이하는 조훈현.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1972년 앞서 귀국한 조훈현은 이때 공군에 입대한 상태였다.

 

 

1. 천재와 우연, 문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경우 건국 이후에 남북전쟁을 제외하곤 큰 내전이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에 대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답 하나가 서부의 존재다. 땅이 크니 동부에서 패배한 패배자는 서부로 떠나면 된다는 것이다. 적에겐 한마디 한다. 잘 놀아라. 우연이지만 행운이라는 것으로, 행운이 우연인가 싶기도 하다.

 

오늘 다룰 것은 천재의 역할이다.

한국바둑사 성장을 이끈 과정에서의 천재의 역할.

 

왜 다루나? 천재가 필요할 뿐더러, 그 천재를 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어느 공동체에서나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행운이 우연히 왔다는, 그런 우연적인 사실을 무시하려는 그런 태도는 갖지 않겠다. 우연도 있는 법이다.

 

한국의 바둑, 아니 한국을 넘어서서 바둑 그 자체만을 볼 때에도 놓쳐서는 아니 되는 것이 천재의 존재요 역할이다. 그러나 천재를 다루는 것은 다소 조심스럽다. 요즘 우리의 현실에서 천재는 의외로 조심스런 단어가 되었다. 획일적이고 평등주의식 교육관념의 팽배로 천재는 자칫 엘리트의 수준으로 격하되는 경향마저 있다. 엘리트주의라는 그 좋지 못한 어감. 그 어감이란 것이 사회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일 뿐인데도 그렇다.

 

바둑만 보자. 여러분이 바둑을 둔다. 잘 두고 싶을 것이다. 1급이 되고 싶고 숙적과 만나면 묘수를 터뜨리고 싶을 것이다. 가능한가? 공부를 하지 않고서 가능한가?

 

여러분이 두는 바둑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 외부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라도 여러분의 것이 있는가? 어디서 온 걸까? 고만고만한 친구로부터 온 걸까? 그렇지 않다. 접바둑인 <1>를 예로 들어보자.

 

1(4점 접바둑의 시원시원한 포석)

단순하지만 흑의 안목은 아마추어임에도 불구하고 50년대 국수들을 넘어선다. 2 이하 흑61930년대 신포석법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신포석법은 우칭위안이라는 천재가 기타니라는 천재와 함께 만든 것. 혁신은 창조성이 강한 개성 있는 인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두는 바둑에는 천재의 영향이 깊이 침전되어 있는 것이다. (1968기계애독자응접실. 3단 백흥수 : 4점 초단격 고훈범)

▼ 접바둑응접실

 

 

바둑은 승부. 승부는 개인이 하는 것.

개인은 문화 속에서의 개인이기도 하지만, 천재라고 불릴 인물은 그 문화를 뛰어넘기도 한다. 문화의 한계에 불만을 갖는 것이 천재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일반적인 발전의 단계를 따르지 않는다. 불균형하고 불균등한 발전 궤적을 따른다.

 

 

2. 천재의 역할, 공동체는 1인자의 수준을 좇는다

 

한국바둑사에서 더없이 중요한 대국으로 다음 3개를 들고 싶다.

1) 1978년 후지사와와의 대국.

2) 1984년 한일전문기사 교류전에서의 린하이펑과의 대국.

3) 1989년 응씨배 우승을 결정한 제5.

 

한국이 일본을 넘어서는 데 있어 전환점이 되었던 이 세 판의 바둑은 모두 조훈현 1인의 바둑이었다.

 

후지사와의 대국에서 이긴 다음, 조훈현은 귀국하여 한국기원에서 환영연에 참석했다.

조훈현 7단 장거 환영회라고 쓰인 플래카드 아래 한국기원 5층의 축하리셉션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비록 스승과의 대국이었지만 개인적인 인연을 떠나서 최선을 다했다는, 자긍심을 가진 웃음이었다. 당연히 한국의 기사는 물론이고 바둑 관계자 모두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당시 바둑(1979. 2)조훈현, 일본기성을 꺾다제하의 화보가 나온다.

 


조훈현, 일본 기성을 꺾다!
1978년 스승 세고에 선생의 7주기에 참석차 일본에 간 조훈현 7단은 실전스승이었던
후지사와 9단과 일전을 벌였다. 당시 조훈현은 한국 7관왕이었고 후지사와는 기성이었다.
1978년 11월26일, 일본기원. (자료사진/월간바둑)


 

 

린하이펑과의 대국은 참으로 긴장된 것이었다.

10대의 조훈현이 일본에 있을 때 맡은 것 중의 하나가 린하이펑의 명인전 도전기 기록. 그 기록자가 드디어 그 명인을 넘어선 것이었다. 한일간의 공식적인 대국이었기에 개인의 강박을 넘어서는 의미가 주어졌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날 한국기원 5층의 긴장된 얼굴.

 

그렇지만 이 바둑은 조훈현 개인적으로는 한일의 승부보다 린하이펑이라는 거인을 넘어서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더욱 중요한 거 아니었을까? 스스로를 이겨내면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말씀은, 시간이 지날수록 맞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

 

응씨배 우승. 이 대국을 조훈현은 기억에 가장 깊게 남는 대국으로 꼽는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렀다는 그 대국. 태산에 올라본 사람만이 다른 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로소 한국의 바둑은 일본에 대한 강박을 넘어설 수 있었다. 비로소 얻어진 자유. 정신적 자유. 그것은 경계가 툭 트이는 것이었다.

 

3개의 대국은 모두 조훈현이라는 천재가 이룩한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한국의 바둑계를 드높이 세웠던 것이다. 일본에 비해 모든 조건이 열악한 한국이지만, 모든 기사가 바로 그 옆에 있었기에 모두들 자연스럽게 실력이 높아졌다.

여러분도 경험하셨을 것이다. 똑똑한 친구 옆에 있으면 배우게 된다.

 

서봉수도 말했다.

모두들 조훈현에게 배웠지만, 자신이 가장 많이 배웠다고.

 

조훈현의 실력은 1972년 귀국 이후 단계적인 변화를 보이는데, 그 만큼 안목이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한국바둑의 실력 또한 그러하다. 일본에 대한 심리적 강박의 극복도 그 과정에서 얻어졌다. 공동체의 수준은 1인자의 수준을 쫓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서봉수의 실력 변천을 보자. 대국 내용이 조훈현으로부터 단련을 받은 효과가 크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훈현이 느는 만큼 서봉수도 늘었던 것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서봉수는 조훈현과 많은 연습바둑을 두었다. 관철동 한국기원 4층 기사실에서 많이 졌다 한다. 그래서 74년 명인전 도전기를 앞두고 서봉수의 패배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바둑1974.7)

 

"도전자 조5단은 일본에서 다년간 수련을 쌓고 온 강자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명인위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러나 2국까지의 결과는 서명인의 2연승. 이로써 분분했던 여론은 잠시 잠잠해졌다.”

 

2(젖힘은 결정적인 악수 - 졌다면 패착)

실전이다. 1에 대해 서봉수의 자책이 있었다. “1은 결정적인 악수며 만약 졌다면 이 수에 기인되었을 것입니다.” (1973년 제5기 명인전 도전1. 백 명인 서봉수 : 6단 정창현)

▼ 서봉수-정창현, 명인전 도전기

 

3(한발 뒤에 젖혔어야)

서봉수가 그린 참고도. 중앙이 훤히 다르다. <2><3>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참고도를 그린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안목의 차이가 분명하다. 1973년의 서봉수는 1978년과는 많이 뒤처져 있다(다음 <5> 참조).

▼ 서봉수의 감상

 

4(포석에서 속도감이 높아졌다)

앞서 <2>에서 서봉수의 기풍이 두터웠다면-다소 느렸다-1년 후 포석감각이 빨라졌다고 할 수 있다. 안목이 넓어졌다는 인상 온다. 포석감각이 빠르고 뛰어난 조훈현을 상대로 흑백이 뒤바뀐 인상이다.(1974년 제6기 명인전 도전3. 백 명인 서봉수 : 6단 조훈현)

▼ 속도감의 차이

 

5(부분엔 무거워도 전국은 넓고 두터워)

2는 검토실의 비판을 받았다. 무겁다는 것이다. 보통은 흑3으로 막고 백2, A로 진행된다. 그러나 서봉수는 흑4를 크게 봤다. 확실한 선수를 얻자는 것이 흑2라는 속수를 선택한 이유였던 것이다.(1979년 제10기 명인전 도전4. 백 명인 조훈현 : 6단 서봉수)

▼ 서봉수의 안목

 

<2>에서 <5>까지 1973년에서 79년까지, 서봉수의 바둑은 크게 달라졌다. 가볍고도 두터워졌으며, 발도 빨라졌다. 안목도 넓어졌다. <2><5>만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서봉수의 성장이 조훈현이라는 천재에 어느 정도 힘입었던가를 인과적으로 따지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이론을 지지한다. 어떤 이론인가?

 

공동체의 수준은 1인자의 수준을 좇아간다.” 바둑에서는 이 이론이 맞는 거 같다.

 

이쯤에서 중요한 논의가 하나 필요할 것이다.

 

천재라는 것이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것을 드러낸다면,

그것이 단순한 선형(線形)발전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혁신을 몰고 와서 바람직하다면, 우린 평등의 신화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른 것을 넓혀주는 것, 그것이 문화 발전의 핵심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3. 천재가 반상의 지평을 넓히고 의미를 안긴다

 

바둑에서의 천재란 무엇을 말하는가?

너무나 주관적인 의문이 아닐까 생각되는 질문이다.

 

한국바둑의 역사에서 개인적인 차원으로 문제를 좁히면 과연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걸까? 그 답은 다음 두 개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에서 얻을 수 있다. 바둑에서는 다음 두 차원 중 어느 하나만 갖고 있어도 천재라고 불릴 수 있다. 천재의 역할과 책임을 공동체에 다할 수 있다.

 

1) 반상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2) 승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영웅의 성취라는 것은 바둑에서는 천재들이 이룬다. 그렇다면 천재가 신화의 수준을 이끌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하다. 그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 반상의 세계를 넓힌다. 즉 천재가 신화의 수준과 차원을 결정한다.

 

천재는 승부와 승부의 이야기를 압축해주는 역할을 한다. 바둑이 기와 예의 세계라는 것은, 천재의 역할을 요청한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니다. 기와 예는 재능을 타고 나야 하는 것. 우린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세계. 만약 너와 나의 재능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너와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천재는 육성되어야 한다. 어느 세계에서나 천재도 한때는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천재의 토양에 대해서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둑의 경우 천재에게 알맞은 토양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성이 크게 발현될 여지를 높이는 시스템으로, 도전권제는 그 좋은 제도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도전권제는 개인적인 승부-바둑의 승부는 개성이 요긴한 지극히 개인적인 승부다-를 잘 드러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도전권제는 개인에 초점을 둔 승부 방식. 물론 개인에 초점을 둔 승부의 방식만이 반상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판단일 것이다. 인간의 발달에 대해서 우린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 그건 반상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다만 반상은 우리의 의식이 다른 정신영역과는 달리 예술적 감각과 논리적 기술이 잘 섞여져 노니는 세계이기에, 의식의 폭과 넓이가 더해지는 그런 반상 조건은 아무래도 대극을 잘 살리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하다. 개인의 개성이 승부에 요긴한 덕목이라면 바둑은 개인에 의해서 의미를 얻는다.

조훈현이 김인을 누르고 시대를 열었을 때 그는 두터움보다 발빠름이 더욱 더 바둑의 넓이를 넓힌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가 보여준 것은 곧 그 시대의 안목이 된다. 그 시대 바둑의 넓이와 깊이가 된다. 김인의 두터움은 조훈현의 발빠른 효율에 시대적 의미를 넘겨준 것이다.

 

80년대 말부터 이창호가 등장하였다. 조훈현을 이겼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우선 반상에서 조훈현의 발빠른 수법에 대해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이창호의 영향을 받아 끝내기가 중시되었다. 그리곤? “조훈현도 지는구나!” 그것을 알았다. 모두가 알았다. 그것이 이성재, 목진석, 김승준 등의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촉발시켰다.

 

시대는 천재가 매듭짓는다. 의미를 확인한다. 명인이자 영웅이 곧 그 천재. 시대는 천재가 그려내는 그림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 개인의 등장과 퇴장은 곧 바둑계의 이미지, 그 등장과 퇴장에 다름이 없다. 대극적 상황의 갈등을 극복하고 일어서려는 욕구 속에 비로소 새로운 지평은 열려지는 것이다. 바둑은 2인 제로섬 게임. 본질적으로 대극 없이는 완성이 불가능한 세계다.

 


1983년 MBC에서 두어진 1회 한일정상 TV속기전, 조훈현-이시다의 대국장면.


 

개인적인 의미로 바둑이 주어질 때 그 얼마나 바둑이 싱싱하게 살게 되는가를 반상에서 감상해보자. <6> <7>는 이시다 9단이 방한했을 때 둔 것으로 이제는 자신만만해졌을 때라고 하겠다.

 

6(, 무법의 서부활극)

835바둑이 제목으로 잡은 것이 , 무법의 서부활극이었다. 끊고 싸우는 것은 수읽기와 담대함이 함께 해야 쉽게 할 수 있는 것. 1 끊는 것은 바른 방향. 이 한수. 5 이후의 수순은 <6-1>. (1983년 한일 속기대결. 9石田芳夫 : 9단 조훈현)

▼ 조훈현의 자신감

▼ <6-1도>

 

7(요석을 잡혀 끝나다)

몇 수 더 진행된 국면이다. 6으로 이은 수가 패착. 7 끊자 백 두 점이 요석이라 중앙 흑까지 편해졌다. 6<7-1>처럼 백1에 먼저 잇고 하변을 아낌없이 버린 다음에 7로 이어야 했다.

▼ 이어진 실전(조훈현-이시다)

▼ <7-1도>

 

네모난 반상에서 그 무슨 의미요, 내용이 싱싱한가를 말할 수 있는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판의 바둑에는 그 바둑 특유의 정서가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린 안다. 감상자가 아무리 실력이 약해도 돌의 생동하는 힘은 느낄 수 있다. 혼을 다하는 바둑에 약동하는 힘이 없을 리가 없다.


1980년 조치훈은 오다케 9단을 꺾고 대망의 명인에 오른 뒤 금의환향했다,
정부는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들어 기사로는 처음으로 은관문화훈장을 서훈했다.
(자료사진/월간바둑)

 

4. 오늘의 문제, 개성이 발현될 시스템인가

 

사회학이나 사회심리학에서 어려운 문제 하나는 공동체에서의 리더의 역할이다. 과연 히틀러는 독일 국민을 세뇌시킬 정도의 카리스마를 발휘했는가? 국가를 상징하는 권력자 개인의 이미지는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같은 차원인가? 국민 개개인은 집단의 존재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우칭위안의 그 표표한 인상은 과연 바둑의 사회적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가? 해가 넘어갈 무렵 어두워진 대국실에 대국자 단 둘이 남은 흑백의 실루엣은 과연 바둑을 얼마나 적절히 표상했을까?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린하이펑을 상대한 이창호의 무표정은 바둑의 깊이를 알려주는가?

 

1970년 김기수가 권투 라이트급에서 벤베누티와 세계타이틀 매치를 할 때 장충체육관에 나타난 박정희 대통령은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수북이 쌓았다. 박정희는 김기수의 도전이 국민들의 희망에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를 알았을까? 과연 김기수의 타이틀 도전과 쟁취는 국민의 자긍심을 얼마나 높였을까? 이후의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을까?

 

바둑에서의 천재의 역할에 대한 의문도 그런 것이다. 다를 바 없다.

일본에서 조치훈이 얻은 성취는 개인의 성취가 아니었다. 우리가 조치훈을 우리라고 생각하는 한 그의 성취는 개인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조훈현이 1989년 제1회 응씨배에서 녜웨이핑을 이겨 우승했을 때 그것은 개인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천재의 성취가 사회와 적절한 관련을 맺는다면 그 성취는 개인적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둑에서의 천재의 성취가 그랬다. 그것은 단순히 이미지의 상승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컨대 마음에 일본에 대한 강박감이 남아있지만, 조훈현과 조치훈이 그것을 대신해서 넘어섰을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까닭 없었던 부담을 내려놓는다. 쉽게 내려놓는다.

 

장벽은 무너지고 안개처럼 스러진다. 시야가 트이면서 비로소 어깨가 가벼워진다. 그 일을 앞서 해내는 것이 천재의 역할이다.

 

 

아쉽게도 그러한 80년대 90년대를 지나서 오늘은 다른 세상에 와 있다. 오늘 주된 경기방식은 단체대항전과 랭킹시스템에 집약되어 있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 천재는 부족하다. 우칭위안은 등장하기 힘들며 그의 바둑도 없다. 지나치게 짧은 제한시간에 몰린 이벤트성 대국과 상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의식의 획기적인 성장은 쉽지가 않다. 시간이 짧아지면 개성의 발현이 제약된다. 천재의 등장이 어렵다. 정체성이 사라진다.

 

천재는 아마추어도 살찌운다.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바둑이 기사는 물론이고 아마추어에게 자극을 주지 못한다면 그 대국은 의미가 스러진다. 반상은 뜻을 잃게 된다. 수법의 세계라고 해서 그 여파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다. 수법의 세계도 좁아진다.

 

2000년 초를 전후해서 한국바둑계는 그 경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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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2013-02-05 오전 7:53: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렇죠 바둑둘때 시간이 없으면 새로운 수를 생각하기 보다 알기 쉬운 수를 두기가 쉽죠
새로운 수를 창안할때는 많은 생각이 필요한데 10분 바둑은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박탈해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0분 바둑은 창안성을 말살 시킵니다.
생각을 안하고 아는 수만 찾아서 두니 당연히 실전을 통해 바둑이 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高句麗 |  2013-02-05 오전 7:56: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금 프로기사가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은 이유는 10분바둑 때문이 아니고 연습바둑(바둑공부)를 많이 두기 때문입니다
예번보다 연습바둑을 많이 두어서 실력은 늘었는데 상대적으로 실전바둑을 통한 향상은 줄어든것이죠  
동방의샛별 |  2013-02-05 오후 12:03: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動的일까, 靜的일까?
조남철(수법, 동적?) 김인(중후, 정적) 조훈현(발빠름, 동적) 이창호(끝내기, 정적) 이세돌(전투, 동적) 다음천재(정적?)
 
하이디77 |  2013-02-05 오후 12:53: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김인, 이창호의 대를 잇는 두터운 바둑으로 승부하고 승률이 높은 천재가 나오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겠지요. 현재의 기수들은 아닌 듯... 좀 심한 표현이지만.  
백발도사 |  2013-02-05 오후 2:06: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도전제를 채택하지 않고 랭킹제도를 채택하는 운동 좀목에도 천재와 영웅은 있다. 지난 35년 동안의 정구의 천재들을 들자면 보그, 지미 카너스, 맥킨로, 렌들, 아가씨, 삼프라스, 페더러, 나달, 쟈코비치, 등등이 등장했다. 골프에도 아놀드 파머, 잭 니콜라스, 타이거 우즈, 등이 골프의 영웅이었다.  
高句麗 물론 랭킹제에서도 당연히 영웅이 있죠 그러나 랭킹제보다는 도전제가 영웅을 키우고 흥미를 유발하는 데는 랭킹제보다 도전제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죠 권투도 프로권투는 도전제입니다 프로레슬링도 도전제이고요
백발도사 |  2013-02-05 오후 2:17: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오늘날에도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등의 바둑 천재들이 있다.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에 못지 않은 바둑 천재인데, 바둑 인구가 줄어서 바둑의 위상이 내려갔고, 이미 세계 최강의 기사들이 나온 적이 있어서 뉴스 미디어의 조명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할 뿐이다. 또한 바둑계가 중요한 에셋인 이세돌을 활용하지 못하고, 시시콜콜한 그의 약점을 너무 부각시켜 손해 보았다.  
高句麗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이가 천재들인거는 사실이지면 사실대로 말해도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이를 조서시대에 비교하자면 과거의 서봉수에도 못미칩니다 서봉수는 모든 기사를 제치고 도전기를 독찾이 했으니까요 오늘날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이가 과거의 서능욱이정도도 못 미칠 겁니다 국내기전에 한해서 평가할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당시는 세계대회가 없었으니까요
高句麗 그당시는 서봉수 다음으로 도전기를 찾이한 기사가 서능욱이죠 서봉수 와 서능욱의 대왕전 도전기 외는 다른기사는 거의 도전기 근처에도 못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저는 바둑에 흥미를 유발하려면 과거의 조서같은 독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창호도 조훈현 못지 않은 독재자가 되었고요 그러나 오늘날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이는 과거의 조서나 이창호같이 뚜렷이 실력이 남보다 뛰어난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도전제가 아니다 보니까 더욱 그럴 겁니다
高句麗 도전제였다면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이가 적어도 타이틀 몇개 더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과거의 4인방 같이 바둑계는 이세돌 최철한 박정환 시대라고 말할수도 있고 그러나 지금은 너무 평준화 되어서 이세돌 시대라고 말하기도 좀 뭐하죠 이세돌이도 랭킹제로 따지면 승률이 남보다 조금 나을 뿐이지 그렇게 뚜렷이 두각을 나타낼정도의 영웅은 아니죠
백발도사 고구려님 식으로 말하면 조남철 선생이 바둑을 제일 잘 두었겄네요. 혼자서 타이틀을 다 차지했으니까요.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해야지 이세돌을 서봉수만도 못하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高句麗 백발도사님 바둑 부흥엔 이세돌이 더 잘두냐 조남철이 더 잘두냐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지금의 이세돌이 조남철 시대의 조남철이나 조훈현시대의 조훈현보다 더 잘두지만 지금 이세돌은 조남철이나 조훈현시대에 비하면 그 명성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조남철이나 조훈현시대는 그당시는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지금의 이세돌이는 조남철시대와 조훈현조훈현 시대에에 비하면 반의 반도 못미친다는 것이죠
高句麗 |  2013-02-06 오전 11:59: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과거에는 바둑하면 조남철 바둑하면 조치훈 바둑하면 조훈현 바둑하면 이창호하던 시대가 있었읍니다 이때 한참 부흥기를 맞이 했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바둑하면 이세돌이라 하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세돌은 랭칭상 다른 기사보다 조금 점수가 높을 뿐이지 이창호나 조훈현 조남철 시대같이 독보적인 존재나 영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marvel |  2013-02-06 오후 2:07:4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구려님, 과거의 영광을 가지고 현재의 상황을 말하기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바둑이 발전하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놀이문화나 스포츠가 발전하지 못했었구요. 그리고 한국의 현대의 바둑이 아직도 발전단계에 있는데, 그것을 마치 지난 과거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어패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용직 박사님의 글은 과거에 대한 고찰은 있지만, 근 10년 바둑에 대한 고찰은 상당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marvel |  2013-02-06 오후 2:19: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박사님, 천재가 나올 수 없는 구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재를 허용하지 않는구조를 누가 만들었느냐하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재들(조훈현, 이창호)의 출현으로 전체적인 기사들의 수준이 올라갔다면, 그 이후에는 왜 그렇게 될 수가 없었나요? 그것이 구조의 문제라면 어떤 구조의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고찰하는 것이 더욱 논점이 명확해 지는 것아닐까요?  
marvel |  2013-02-06 오후 2:26: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만일 도전기 여전히 남아있었다면, 이세돌 9단도 이창호 못지않게 국내의 바둑기록들을 갈아치웠겠지요?! ... 하지만, 문박사님의 글의 논점을 가지고 일본바둑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반대의 질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부를 60등하던 아이가 3-4등까지는 급격하게 성적이 발전할 수 있지만, 1등을 하기까지 그리고 1등을 한 후에 계속해서 유지해가는 것은 다른 문제로 다가옵니다.

 
高句麗 문용직 박사님은 갈수록 줄어드는 바둑인구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한 말이지 바둑 기술적인 면을 말한건 아니죠 즉 영웅이 많이 나와서 바둑팬들도 늘어나고 랭킹제보다 도전권제를 해야 바둑인구가 늘어난다라는 취지지 프로기사가 과거보다 바둑을 못둬서 하거나 국제경쟁력에서 떨어져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죠 지금 가장 시급한것은 바둑 발전이니 뭐니 하는거 보다 어떻게 하면 갈수록 줄어드는 바둑인구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가장 급선무라 봅니다 그래서 도전제나 바둑영웅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것이고요
marvel |  2013-02-06 오후 2:32: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들에 반열에 들었갔지요. 마치 조훈현이 일본의 실력자들을 이긴 것과, 삼성같은 기업이 일본이나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을 넘어서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이 기술부분에서 볼 때는 지난 30년 동안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왔지요. 하지만, 발전속도로만 보자면, 예전같지않지요. 이제 삼성에게 부여된 과제는 1등을 따라잡는 것에서 선도하는 것으로 변했지요  
高句麗 바둑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용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면 문제가 크죠 문용직 박사님은 바둑이 과거보다 발전했냐 후퇴했다를 논하는것이 아니라 갈수록 줄어드는 바둑팬 인구감소 문제를 논한것이라 봅니다.우리가 1등을 따라 잡느냐 못 잡느냐는 급한게 아니고 차후에 논할 문제이고요
marvel |  2013-02-06 오후 2:41: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제 삼성같은 기업에 부여된 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바둑을 보면, 과거에 대한 충분한 성찰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바둑을 한국이라는 지역의 틀에 가두기보다 좀 더 큰 부대에 담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시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시각의 공존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高句麗 바둑을 한국지역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줄어드는 바둑인구의 심각정을 논하는 과정에서 문박사님의 의견이 나온것이라 봅니다. 그러자면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면서 점검을 해야죠 과거는 과거일뿐이라고만 몰아붙인다면 계속감소하는 바둑인구 문제 해결 못합니다
marvel |  2013-02-06 오후 4:08: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구려님, 바둑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영웅이 없어서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심정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 어떤 사회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닙니다.
한국바둑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작업으로 과거에 대한 반추하는 것을 저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과 같이 가지 않는 반성은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高句麗 영웅이 없어서 바둑인구가 줄어든다는게 이유의 전부가 되는게 아닌거 사실입니다 제 말은 어느 스포츠 종목이던 영웅이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흥미을 갖는 다는 뜻으로 쓴 것입니다. 영웅이 있다고 다 해결되지 않지만 그래도 영웅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많이 나리라 봅니다
marvel |  2013-02-06 오후 4:15: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박사님은 바둑이라는 것에 대한 나름의 자기정의를 가지고 접근해가고 있고, 거기로 부터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반성적인 작업도 중요하지만, 바둑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에대한 두가지 사회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크게 문용직 박사님같은 프로기사들의 의견들을 청취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반대편에는 미래의 바둑인구가 될지도 모를 젊은이들의 바둑에 대한 생각을 들어야합니다  
marvel |  2013-02-06 오후 4:20: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막연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왜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바둑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를 묻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각 시대의 문화의 경향이 있는 것인데, 어느 한 시대의 문화(바둑을 포함한)를 일반화시켜서 그 기준에서 답을 찾으면, 그 세대의 문화적 향수를 갖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다른 세대나 다른 문화의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매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marvel |  2013-02-06 오후 4:24: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예를 들면, e스포츠라는 것은 젊은 세대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장년세대에는 상대적으로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e스포츠가 갖는 재미를 설명하고 e스포츠 안에 있는 영웅들을 이야기해도, 그것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설득력을 갖지를 못합니다.  
高句麗 예 나머지 말은 맞는거 같네요 모든 문제는 한두가지 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종합적으로 여러 문제를 다루어야 해결될 문제라서 그중에 영웅이나 도전권제는 그 중의 일부일 뿐이죠 작은거 부터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자 한 말이죠
하얀솔 |  2013-02-06 오후 7:02: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 도전권제는 천재의 개성이 크게 발현될 여지를 높이는, 달리 말해 천재육성에 알맞은 토양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도전권제는 前대회 우승자에게 결승직행이라는 특권을 주어 기득권 보호에 철저한 방식입니다. 이는 새내기 천재가 타이틀 획득이라는 성취로 <자신감>을 얻어 자신의 천재성을 일찌기 만개시키는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하얀솔 |  2013-02-06 오후 7:22: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타이틀 경쟁시장에 뛰어든 신예 천재에게 도전권제라는 <진입장벽>을 만들어야 좋은 시스템이라면, 과거 저단진만의 별도 예선전도 부활시켜야 할것입니다. 타이틀 경쟁은 가능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개인의 개성발휘-천재육성-에 도움이 됩니다. 도전권제는 국수전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旣成 수재들의 기득권을 강화시켜야, 新銳 천재를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얀솔 |  2013-02-06 오후 7:39: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 랭킹제는 천재의 등장을 어렵게 만들거나, 개성을 죽이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랭킹제없이 기전서열제만을 고집하는 일본바둑에서는 타이틀보유자外는 그냥 <기타 여러분>입니다. 개성이란 甲을 乙과 구분시켜주는 그 무엇입니다. <기타 여러분>으로 뭉뚱그려버리면 甲과 乙의 차별화는 어렵습니다. 타이틀은 없더라도, 각자의 현재실력을 객관적 숫자(랭킹점수)로 보여주면 개성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高句麗 맞읍니다 기전서열제는 타이틀 보유자외 기타 여러분입니다 별이 너무 밝으면 빛을 잃읍니다 별이 빛을 잃기 때문에 태양이 빛이 나죠 저는 타이틀 보유자외 나머지는 기타여러분에서 끝나기 때문에 타이틀자가 더욱 빛이나고 그래서 타이틀전 열릴때마다 모든 언론 바둑과 상관없는 일반인도 타이틀 열릴때마다 관심을 갖는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高句麗 무림이나 주먹세계도 도전제이지 랭킹제가 아닙니다 무림 고수가 처음부터 신인들과 밑에서 부터 치고 올라오는게 아니고 신인들이 무림고수와 대결하려면 밑에서 부터 치고 올라가서 도줜권을 따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먹세계나 무림세계에 열광하는 거라 봅니다 무림세계도 무림인이 무조건 1년에 한번씩 신인들과 밑에서 부터 치고 올아간다면 무림인데 대한 동경도 사라지고 신비감도 사라지고 격이 많이 떨어지겠죠 그러나 무림인은 고수는 아무나 넘볼수 없 도줜권제이기 때문에 고수들을 우러러 보고 사람들이 무협지에 열광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高句麗 사실 이세돌이나 조훈현 같은 1인자가 아무나 신인들하고 마구 퉅고 하면 격이 많이 떨어집니다 도전권을 통하여 1인자는 아무나 만나지 못하게 할때 사람들이 더욱 1인자를 더욱더 높이 우러러 보고 사람들이 도전권 할때마다 흥미를 갖고 재미를 갖고 보게 되죠 이건 사람의 기본심리라고도 할수 있죠 바둑보급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심리세계를 무시할수 없다고 봅니다
高句麗 랭킹제를 통해 아무나 1인자하고 대면하면 영광이라 생각 안합니다 도전권을 통해 1인자를 어렵게 만나게 해야 1인자를 만날때 영광이라 생각하고 하늘같이 떠받들게 됩니다 그래서 무협지가 재미있는 것이죠 바둑도 그렇고 이런 심리가 바둑에 대한 흥미와 보급에 많이 작용하리라 봅니다 물론 고수가 아무나 만나서 겨루면 전체 무림인의 실력은 향상되나 대신 무림의 세계에 대한 재미가 없어져서 무술에 대한 관심도는 적어져서 무술 배우는 사람이 적어지리라 봅니다 바둑계도 그런 경우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봅니다
하얀솔 |  2013-02-06 오후 8:03: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 개인기전 숫자가 충분히 많지않은 상황에서 단체리그전은 새내기 기사들이 더 많은 대국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주며, 이는 신예육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중국갑조리그가 그런 역활을 했었고, 한국도 작년 락스타리그 신설이 새내기 육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얀솔 |  2013-02-06 오후 8:20: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유창혁 9단의 2009년 개인전 성적은 국수전 16강진출이외는 예선탈락이었고 정규 바둑리그 성적은 1승 3패였지만, 바둑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빛나는 활약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며, 바둑리그 MVP 후보까지 올랐습니다. 본문주장대로 단체대항전이 개성발현을 억압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이런 사건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노숙자50 |  2013-02-06 오후 11:41: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난 10년간 바둑계가 크게 변했죠. 긍정적인 면도 많고, 부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문박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 모르시는 듯 합니다. 바둑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지난 오천년처럼 앞으로 오천년도 흘러가게 될 겁니다. 7-80년대의 밀실에서 두어지던 바둑만이 바둑의 전부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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