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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의 신화와 기(技)에의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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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의 신화와 기(技)에의 강조
2013-02-01 조회 10301    프린트스크랩
▲ 1988년 우승상금 40만 달러의 응씨배가 만들어졌다. 대만의 기업가 잉창치 씨가 이 대회를 창설한 으뜸 이유는, 오랜 연구 끝에 가장 우수하고 완벽한 바둑룰이라며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전만법(일명 응씨룰)을 전파하기 위해서 였다. 사진은 1989년 9월, 녜웨이핑을 꺾고 초대 우승을 차지한 조훈현 9 단. (사진/월간바둑)

 

 

1. 바둑의 대비되는 관념들

 

바둑과 관련해서 대비되는 인식들이 있다.

 

()냐 기()냐 하는 것이 그것으로,

승부를 다투니 스포츠다, 감성에 기초하여 창조적 작품이 나오니 예술이다, 하는 것은 그 설명.

 

그 어느 것이나 옛날부터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한 것인데, 문제는 그 어느 하나가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이 되는 경우다.

()가 강조되면 잡기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예()가 강조되면 고상한 정신적인 놀이로 받아들여진다. ()를 강조하면서 스포츠로 바둑의 정체성을 잡고자 하는 것은 바둑 역사 3천년에서 극히 최근의 일.

 

이처럼 바둑이란 것은 우리가 바둑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가꾸어나가느냐에 본질이 달려있다.

 

바둑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술로서 인정받는 회화도 조선왕조 5백년엔 천대받는 기술에 불과했던 것이며 음악 또한 그랬다. 건축도 다를 바 없었고 자연과학도 중인(中人)의 계급에 속했다. 그처럼 이데올로기나 사회적 인식은 특정 문화의 가치를 결정해왔다.

 

그런데 바둑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시대적인 관념을 하나 받아들임으로 해서 바둑 자체의 본질을 크게 변경시키는 경우가 없지 않았으니, 실로 관념의 힘은 두려운 것이다. 물론 엄격하게 말하면 자체의 변치 않는 본질이란 없다. 본질 또한 인간이 바둑을 어떻게 다루어가느냐에 달린 것. 그러나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 또는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사이의 구별은 필요할 것이다.

 

실로 관념 즉 사회적 인식이란 것은 막강한 힘을 미친다.

개인의 태도와 의식은 물론이고 사회적 제도의 성립과 같은 것에 이르기까지 더할 나위 없는 영향을 미친다. 과연 한국의 바둑계는 관념의 힘을 제대로 인식했던가.

 

그런 시각에서 제기되는 문제 하나는, 승부의 공정성에 대한 이해가 한국바둑계에서 어떻게 변했는가, 그리고 그 변화가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그에 있다. 오늘 한국바둑사의 모티프 하나는 승부의 공정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와 그 현실적 힘에 대한 고찰이다.

 

 

2. 공정성의 문제에 바둑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문제, 즉 공동체의 질서와 평안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계급사회도 그 노력의 하나요, 공산주의 사회도 그 하나다. 오늘 우리는 평등을 바람직한 것으로 안다. 민주주의 이념이 바로 그것이고 그로써 평등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물론 공산주의식 평등은 인류역사를 돌아볼 때에 거의 불가능한 유토피아라는 것을 이제 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공정성의 신화. 정의는 게임의 룰이 공정할 때 얻어진다는 신화. 그래서 강화된다. 의무교육과 대학 들어갈 때 성적 외에는 차별이 없다는 그런 것.

 

바둑에서도 그런 것을 도입했다. 바둑은 기술(技術)이기에, 승부를 다투는 기술이기에 일찍부터 승부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된다.

 

1) 실력 차이가 있으면 치수를 두어 한 판의 바둑이 승부의 공정 즉, 서로가 이길 확률 50%를 갖도록 한다. 접바둑이 이것이다.

 

2) 실력 차이가 없으면 덤을 두어 선착의 이점을 상쇄하도록 한다.

 

3) 관습과 전통은 그 한계가 규정되어야 한다. 승부는 개인적인 것이므로 개인을 넘어선 다른 권위가 개인을 눌러서는 안 된다.

 

1)은 한국, 중국, 일본이 역사적으로 받아들인 논리다. 내기바둑도 이를 적용한다.

2)1940년대 이후의 일본 기계나 한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3)은 일본 세습제 본인방과 같이 사회적 권위가 승부를 제약해온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는 1940년대 이후 실력의 차이가 급속히 줄어들었던 시대의 요청이기도 하다.

 

이제 이리 요약된다. 프로제도가 성립된 다음 프로의 명예와 수입은 개인의 승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승부는 개인의 수준에서공정해야 한다.

 

누구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요 논리인 듯하지만, 세상사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바둑의 세계에서도 여성들은 권리를 보장받아왔는데, 사회적 약자의 보장 논리가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여성들은 입단도 여성들만의 입단이요, 승단도 여성들만의 승단규정을 적용받는다. 남성들과 함께 기전에 참여하면서도 따로이 여성들만의 기전 또한 만든다. 그 결과 이제는 남성들이 약자가 될 정도이다.

 

세상사 간단하지 않다.

한국바둑계는 공정성의 기준에 지나치게 함몰된 감이 없지 않다.


▲ 2012년 9월5일 베이징에서 펼쳐진 삼성화재배 본선32강(더블일리미네이션) 2회전에서 이세돌과 구리 9단은 세계바둑대회사상 초유의 '4패 빅' 무승부 바둑을 선보였다. 바둑은 굳이 심판이 필요치 않은 게임이기는 하나 이처럼 반상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를 안고 있다. 중국룰을 따랐다면 이세돌 9단이 이긴 바둑이라 더욱 화제가 되었던 한 판이다.

 

 

3. 공정성과 덤의 긍정적 작용 - 한국의 경우

 

세상 모든 것이 명암을 지닌다. 어둠 없는 빛은 없다. 바둑에서도 그런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덤의 문제이다.

 

덤은 승부의 공정성을 기하려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흑과 백의 차이를 덤으로서 보상해주어 흑과 백의 출발선을 공정하게 하려는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면, 덤은 승부의 공정성을 담보해주어 바둑의 세계가 근대시민사회와 마찬가지로 정의가 살아있는 민주적 세상임을 알려주었다. 공정하면 정의로운 것이며, 정의로우면 그 세상은-놀이든 게임이든-도박이 아니라 건전한 세상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50년대 이후 한국의 바둑에 따라다녔던 부정적인 이미지 하나는 바둑이 도박이나 시간의 낭비라는 인식이었는데, 깨끗한 승부 규칙은 그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물론 그것은 프로를 지망하는 소년들에게도 빛이 되었다. 많은 프로 입문자들이 토로했다. 프로가 되고자 했던 이유 하나는, 프로 바둑이 노력한 만큼 개인의 실력에 의해 보상을 주는 세계라는 점에 있었다고.

 

 

4. 덤의 부정적 작용

 

덤은 프로의 바둑을 따분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다.

특히 90년대 이후 채택된 덤 6집반은 반상의 내용을 단조롭고 건조하게 격변시켰다.

 

6집반 아래에서 흑은 초반에 급하게 승부를 내야만 한다.

돌이 많아지면 반상은 그만큼 결정되며 그러면 변화를 이끌어내 덤 6집반을 부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백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다. 초반에 변화를 피해야 한다. 그래서 백의 선택은 변화가 적은 화점의 선택이다. 화점은 반상을 단조롭게 한다.

 

다행히 화점은 흑에게도 바람직하다. 소목은 복잡하고 큰 정석을 부르는 경향이 있기에, 변화를 가져야 하는 흑으로서는 피해야 하는 초반 착점인 것이다.

 

결론은 이리 된다.

 

흑과 백 모두 화점을 선호하는데, 흑은 발 빠른 포석, 또는 그에 걸맞은 급격한 공격이 가능한 중국식포석 같은 것을 선호하게 된다. 초반 큰 모양과 공격을 위주로 하는 흑에게 대항해서 백은 두터운 수법을 선호한다. 흑에게도 두터운 수법은 요구된다. 공격 위주가 되니 그러하다.

 

두터운 수법 위주의 바둑은 단조롭다. 대국자는 물론이고 관전자에게도 재미가 없어진다. 개인의 잠재적인 개성이 발현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둑 내용으로 살펴보자.

 

1(덤이 없을 때의 수법, 秀策)

<1>는 슈사쿠(秀策)의 수책류포석이다. 7이 요점으로 다음 AB를 맞봐 흑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CD 또한 맞보는 것이니, 선착의 이점을 흑7로서 지켜갈 수 있다.

▼ 슈사쿠의 마늘모

 

2(4집반, 5집반 때의 수법, 두칸협공의 격렬함)

<2>는 공격 위주의 포석이다. <1>에 비해서 격렬하다. 한칸과 세칸의 중간이 되는 두칸이 많이 쓰인다.

▼ 두칸협공은 덤 5집반일 때

 

3(6집반 때의 수법, 두터움과 단조로움)

<3>는 조훈현과 이창호의 바둑에서 많이 등장했다.

서로 화점을 두는 것. 2가 흑1의 대각선상에 위치한 것을 주의하자. 이후 34를 맞봐 싸움을 피한다. 6도 같은 이치다. 단조로우면 백이 유리하다는, 끝내기 승부로 이끌고 가자는 계산이다.

▼ 두터움과 단조로움은 덤 크기의 산물

 

덤의 크기는 한국에서 바둑의 재미를 많이 앗아갔다.

 

두터운 수법이 대세를 이루고 승부를 끝내기에서 찾으니 변화가 줄어든다. 내용은 따분하다. 그리고 바둑이란 것은 초반의 안목이 중요한 것인데, 그리고 초반이 비로소 개성이 발현되는 곳인데 초반의 개성 없는 진행은 재능 있는 소년의 발전적인 안목을 제한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와 바둑의 인기가 줄어드는 배경에는 이러한 단조로운 반상 내용이 숨어있는 것이다. 실력이 아마추어라고 해서 바둑의 내용이 흥미롭고 단조로운 것을 구별 못할까. 다 드러나는 법이다.

 

따분한 바둑과 화려한 바둑, 그 차이를 반상의 맛으로 느껴보자.

<4><5>가 그것으로, 대국은 오래 전의 것이지만 최근에 유행하는 두터운 계산바둑과 적극적인 바둑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우칭위안이 10번기의 승부를 통하여 일본바둑을 크게 흥왕시킬 때 대중의 흥미는 승부에도 있었지만 대국 내용에도 있었다. 내용 없는 승부는 단순한 숫자일 뿐이다.

 

4(린하이펑의 중앙 마늘모는 참으로 태연하다)

1과 흑2 교환 어떤지? 1로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변화를 피한 것이다. (1970년 제9기 명인전 도전4. 백 명인 林海峰 : 9藤澤秀行)

▼ 린하이펑의 기풍

 

5(우칭위안의 의견 - 활동성과 효율을 강조)

우칭위안(吳淸源)<4> 1을 비판했다. 너무나 활동성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 우칭위안의 기풍

 

어느 것이 더 화려한가? <4>는 변화를 닫고 있다. 린하이펑(林海峰)은 끝내기 승부로 가는 경향이 있다. 이창호의 바둑과 비슷하다. <5>는 변화를 추구한다.

 

물론 반상에서야 좋고 나쁘고를 따질 절대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바둑은 물론이고 인간사에서도 도전과 의지가 큰 스케일로 제기될 때야 비로소 그 의미는 강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바둑이란 무엇인가? 공정한 승부가 바둑의 본질이냐? 승부란 본래 불리한 편에서 도전하는 거, 그것이 인류사에 맞는 거 아닌가?

 

알 수 없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승부에 내용이 없다면 그 승부에 부여되는 의미는 좁아지게 된다. <6>를 보자. 서봉수가 술회한 꼬투리란 단어에는 인간적인 소박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에서는 격렬한 도전을 보여준다. 그것도 사라질 수 없는 승부 감정.

 

 

6(허황한 수이지만 역전을 노려야)

1에 대한 서봉수의 술회를 들어보자. “1은 허황한 수이지만 지금의 판세로는 무언가 꼬투리를 잡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국후에 이 수로는 a에 두어 숨이 긴 바둑을 두어야 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실전에선 흑1 이후 <6-1> 9까지 진행되어 흑이 더욱 불리해졌다. 그러나 그래도 이리 두어야 할 것이다.

▼ 허황한 수이지만

▼ <6-1도> 실전진행

 


 


▲ 1938년 일본에서 덤 4집이 첫선을 보인 이래 덤의 크기는 61년 ‘덤 5집에 비길 경우 백승’으로 상향조정하였고 이것이 74년 30기 본인방전에서부터 현행 5집반이 적용되었다. 이에 우리도 70년대 중반부터 뒤따라 덤 5집반을 시행했다.
현대바둑이 일본에서 역수입되었고 또 그들을 뒤좇다보니 덤제도도 그들을 모방한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덤 5집반을 공식기전에 먼저 적용한 것은 우리가 1년 빨랐다. 일본이 덤 5집에서 5집반으로 과감히 조정하지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 한국이 73년 1월 대한일보사가 백남배를 창설하면서 바로 덤 5집반을 채택했다. 당시 우승상금 50만원으로 최대기전이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흘러 3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한국은 덤 6집반을 전격 채택함으로써 덤제도에 관한 한 일본을 주도했다.
사진은 김인-정창현의 1회 백남배전 결승.1974.03.09 (자료사진/월간바둑)



5. 공정성의 신화와 스포츠로의 급격한 정체성 변화

 

한국바둑에서 공정성의 신화가 최고점에 오른 것은 바둑의 스포츠화 추진이라고 하겠다. 2001년 한화갑 총재는 취임사에서 바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바둑을 스포츠로 전환하자고 했다. 왜 그랬을까. 두 가지 원인을 들 수 있다.

 

1) 일본을 실력으로 추월했을 때 일본이 더 이상 한국바둑계가 따라야 할 모델이 아니라는 인식의 확산.

 

2) 기전의 성장이 멈췄을 때 프로기사가 과잉 공급된 바둑계가 정체(停滯)되고 쇠퇴의 조짐을 만나면서 돌파구로 스포츠의 승부를 강조한 것.

 

1)의 경우, 한국은 일본이 바둑을 예()로 다루고 있다는 그 점을 간과했다. 세계대회를 석권하다보니 교만이 생겼다. 승부에 이기는 것이 바둑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중에 강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결과 바둑의 예()적 본질에 대한 간과가 나타났다.

 

2)를 보면, 한국바둑계의 융성은 신문기전과 기업체의 기전에 기초한 것이었기에, 경제사정과 매스미디어의 변화로 기전이 축소되자 기사들의 경제적 여건이 나빠졌다. 그러나 이미 기사의 숫자는 많아져 공급이 수요를 초과했던 바, 여건을 타개하는 방식으로 사회와의 연대 대신에 정부에 기대고자 한 것이다. “기업에서 정부로대상을 바꾼 것이다.

 

문제는 2)의 경우 스포츠로의 정체성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이 추구가 기존의 예() 추구한 애기가들의 부정적 대응에 마주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급격한방향전환이었다. 스포츠화가 되었을 때 급격하게 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승부가 중시되고 내용은 뒷전이 되었다. 80년대까지 바둑을 배웠던 중년 이상 애기가들은 흥미를 잃고 호감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승부를 중시하고 내용을 뒷전으로 밀어 넣은 구체적인 제도 변화를 보자(1).

 

(1) 2001년 스포츠화 추진 이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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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랭킹시스템으로 기사를 평가

2) 단체대항전의 확산과 일반화

3) 짧은 제한시간으로 TV 시청자에 바둑을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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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랭킹 시스템. 기사 개인의 이름은 숫자로 대체되고 있다.

둘째, 단체대항전. 기사 개인은 집단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개인은 집단의 일부로 이해된다.

셋째, 짧은 제한 시간. 개인은 좋은 수보다는 실수를 적게 해야 하는 강박 속에서 살게 된다. 짧은 시간 내에서 좋은 수를 발견하기란 힘이 드는 반면에 실수할 확률은 훨씬 높다.

 

단체대항전이 강화되는 현상도 주의하자(2).

스포츠 형식으로 구단을 만들어 단체 대항전을 하는 것이다.

 

(2) 승부방식의 변화의 상금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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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대항전: 한국바둑리그(2004) 우승상금 1(전체규모 10, 5명이 1팀을 이룸)

개인전(도전권제): 왕위전(2004) 우승상금 3,500만원(전체규모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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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 예()적인 측면은 지울 수 없는 본질에 가깝다.

초반의 그 모호한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곧 상징이요 비유요 예가 아니던가. 바둑의 예적인 측면은 관습과 전통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도전권제, 사범, 개인의 개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제한시간. 그러나 그것은 지난 10년간 너무나 가파르게 무너졌다.

 

스포츠도 좋지만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승부의 양산이 중시된다. 개성적인 인간은 물론이고 바둑의 예()적 측면도 공정성을 찾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2003년 시범적 대회인 드림리그를 마치고 '이것이 승부다!'란 슬로건으로 본격 출범한 2004 한국바둑리그. 8개 기업이 구단으로 참여했고 총규모는 10억원이었다. 각 팀별 4명씩, 단체 풀리그전으로 치른 2004한국바둑는 국내 프로야구를 벤치마킹해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으로 최종 우승팀을 가렸다. 한국리그는 그간 개인전 성격이 강한 바둑에 대한 이미지를 뒤바꾸게 만든 대회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2004년 5월 63빌딩에서 연 2004한국리그 개막식.

 

 

6. 스포츠로의 정체성은 승부만을 양산

 

불과 10년 사이에 바둑은 전통과 관습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자신의 언덕을 스스로 허문 것이다. 그것은 기댈 언덕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그래서 어찌하는가. 더욱 더 빠른 시간 안에 불안이 가져다주는 텅 빈 공허감을 승부로 채우고 또 채운다.

 

문제는 사회적 인식이 더불어 변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바둑은, 그 본질이 스포츠가 중시하는 공정성보다 정신의 도야에 가깝고 인간사 반영에 더 긴밀하다고 받아들여졌다. 2008년에도 그것은 남아있다. (3)에서 보듯이 함께 배우는 것이 독학 등에 비해 약 4배나 된다.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3) 처음 바둑을 배우는 경로(2008 갤럽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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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 친구, 동료 등의 지인을 통해 61.3(%)

군 복무 중, 바둑 교실, 학교* 15.8

독학, TV와 인터넷 매체**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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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복무 중(7.4) 바둑 교실(6.0) 학교(2.4) ** 독학(15.9) TV와 인터넷 매체(5.8)

 

(4) 바둑이 유익한 이유(2008 갤럽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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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개발 40.3(%)

두뇌개발 20.3

성격이 침착해진다 7.2

정서 배양과 수양 등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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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수양 2.6, 정서적 4.3, 정신 건강 1.2)

 

스포츠와 달리 아직까지 바둑엔 집중력 개발이나 두뇌개발, 정서 배양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정신의 개발이나 정서의 함양, 성격의 완성 등에는 개인이 집단보다 중시된다는,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 정신사에서 높이 평가되어 온 인격과 기()의 합일,

 

그러나 이제 그런 인식이 사라지고 있다. 바둑을 받쳐주었던 사회적 인식이 사라지면?

 

, 그러면 사회적 지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바둑의 정체성도 모호해지고 바둑의 사회적 가치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바둑의 위기. 애기가의 감소. 기사의 정체성 혼란. 경제적 뒷받침의 축소.

 

바둑이 그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본질을 벗어나면 당연히 그 본질에 근거했던 사회적 인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본질과 인식, 성장과 쇠퇴는 깊게 연관된 현상이다.

 

 

7. 한국바둑의 쇠퇴는, ‘바둑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은 데서 왔다

 

항변이 있다. 스포츠로 가는 것이 바로 그 고민의 내용 아닌가, 하고.

아니다. 스포츠로 가더라도 바둑의 귀한 세계를 던져버릴 필요는 없다. 더욱이 최근의 스포츠 추세는 정신과 신체의 구별을 부정하는 태도이기에 굳이 바둑이 정신적 측면을 소홀히 할 이유가 없다.

 

스포츠마저도 기술이 아니다.

기술만의 스포츠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도전, 인간의 잠재력, 인간의 희망 그런 것과 결별한 스포츠는 없다. 몸과 마음을 인간적으로 다루는 기술, 그것이 스포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둑계가 사범이라고 불리던 기사를 선수(選手)라고 호칭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널리 사용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기사를 단지 단체 대항전의 말()로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로또를 하느냐 마느냐, 했던 고민은 그 단적인 단견(短見). 명인전이 아니라 테크론배 명인전처럼 회사의 명칭을 앞에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60년대 신문기전의 성장이 바둑을 긍정적인 놀이로 인식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였을 때 토대는 예()의 강조였다. 그 토대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곧 사회적 인식 아니던가.

 

바둑도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이다. 단순히 평등이나 정의와 같은 관념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단순한 개념으로 성립되는 세상은 스포츠에서도 없다. 오히려 그런 개념을 희생하더라도 인간 개인의 또는 인간 집단의 개성과 잠재력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둑은 기술(技術)이다.

고래로부터 이리 말해왔다. 갈고 닦으면 그 경지 미묘하여 정신의 도야를 가져오고 또 정신의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인간적인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기술이다. 감정, 의지, 지적인 이해, 미묘한 감수성, 기미를 알아채는 예감능력, 계산과 같은 합리성, 등등. 그 모든 것을 쏟아야만 제대로 된 생명력 깊은 한 판을 얻는다.

 

바둑이란 그런 것이다.

요컨대 바둑의 생명이란 것은 동양정신의 정신사적 위치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이리 생각한다. 만약 바둑이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은 바둑은 우리가 즐기기에 적합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를 강조할 때 그런 것이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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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한의사 |  2013-02-01 오전 11:33:5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동양 사상을 근간으로 했던 모든 부분에서 도전받고 있는 현상입니다. 비단 바둑만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高句麗 |  2013-02-01 오전 11:38: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양인은 동양의 신비적인 면에 매료됩니다 현 세계의 혼란을 동양의 정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요 그러나 우리는 서양이 신비적으로 생각하는 동양의 문화를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을 하여 버리고 무조건 서양것만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바둑은 고상한 것이 아니다 이술만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둥 신비적인 면을 일부러 벗어던지려 하고 있읍니다.  
백발도사 |  2013-02-01 오전 11:39: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흥미 있고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2012년 9월5일의 삼성화재배 32강전의 이세돌과 구리의 대국에서 4패 빅이 나왔는데, 이 판이 중국 룰을 따르면 이세돌이 이기는 것이라고 본 글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응창기 룰을 따르면 이세돌이 이기게 됩니다. 응씨 룰에서는 3패나 4패에도 동형반복금지 원칙을 적용하니까요.
 
高句麗 |  2013-02-01 오전 11:40: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떤이는 바둑은 이제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이상 도니 예술이 아니라다라고 주장하기 까지도 합니다 이것이 마치 발전인양 한국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한국기원도 이런 착각을 하는것은 마찬가지고요
서양인은 바둑이 가지고 있는 신비감 동양적인 매력에 찬사를 보내는데 한국인은 한국기원은 바둑이 가지고 있는 동양적인 매력을 스스로 버리려 하고 있읍니다  
高句麗 |  2013-02-01 오전 11:46:1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러면서 마치 그것이 21세기에 맞는 앞서가는 제도인양 착각을 하죠
그러나 한국인 같이 고상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 하는 행동 보면 다 고귀하고 가문이 높은 양반집 자제처럼 자세를 잡고 행동합니다
그러면서 바둑은 더이상 예술도 아니고 도도 아니고 고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니 고상한것을 추구하는 이미지와 체면을 제일 중시하는 한국인들이 바둑을 멀리하는 것이죠  
高句麗 |  2013-02-01 오전 11:48: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은 예술이요 도요 고상한 것이다라고 강조할때는 자진의 자녀가 바둑을 두면 멋있어 보이겠지 또한 부모입장에서 멋있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바둑학원 보내는 부모도 많을 것이고 또 도요 고상한 취미요 예술이다라고 강조하니까 바둑두는 모습 보면 멋있어 보일것도 같고 또 남이 두면 멋있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바둑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이상 도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고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高句麗 |  2013-02-01 오전 11:51: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까 이제는 바둑을 두는게 멋있어 보이지 않고 바둑두는 사람 보면 그냥 잡기하는 것으로 보이겠죠 그래서 바둑에 흥미를 갖는 사람도 줄어들고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부모도 줄어든 사람도 많으리라 봅니다
한국 사람들 같이 이미지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 없읍니다 그런데 바둑은 스포츠 이기 때문에 더이상 도도 예술도 아니고 고상한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여 바둑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高句麗 |  2013-02-01 오전 11:55: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스스로 추락시켰으니 이미지나 체면을 제일 중시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의해서도 바둑을 멀리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봅니다.  
高句麗 바둑이 도나 예술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바둑을 잡기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이미지를 추락하는 일로써 바둑이 스포츠 인것만 주장해온 한국기원과 바둑인 스스로 이미지 추락을 강조한 자처한 것이죠
高句麗 |  2013-02-01 오후 12:11:1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 사람들은 실리보다 이미지를 80%이상 먹고 삽니다 그만큽 실리보다 이미지나 체면을 중시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다 고귀한 양반잡 자제분들이니까요
바둑을 보급할때 이점을 참고해야 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더이상 도가 아니다 예술이 아니다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 내리는 발언 하면 안되죠  
하이디77 바둑학원을 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사안입니다.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나이는 어리지만 개량한복 입고 자격증과 명찰을 달고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이미지가 중요해서요. ㅎㅎㅎ
하이디77 고상한 이미지 말이지요. ^^*
하이디77 |  2013-02-01 오후 12:11: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을 읽으면서 짧은 식견 때문에 이런 내용으로 말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누가 나서서 잘못되지 않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프로기사들은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먹고 살고 바쁜가요?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정을 할 수 있다면 어떤 틀이라도 잡아야 할텐데...  
高句麗 태권도는 도복을 입고 학생은 교복을 입읍니다 체육인은 체육복을 입고 그러나 바둑만 복장이 없네요 의사도 의사복이 있는데요 저도 바둑도 옷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저도 고상한 아미지나 신비감을 주는 개량한복이 적격이라 생각했읍니다 한국기원에 건의 해보심이 어떤지
캐쉬리 |  2013-02-01 오후 12:27: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정말 좋은 글입니다....  
풍운아1 |  2013-02-02 오전 11:46: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이 도와 예를 중시해서 떠받들고 있는곳이 일본인데 일본바둑이 어떻게 쇠퇴하고 국민적 관심에서벗어나고 있는지 보면서도 스포츠화한 바둑때문에 교수되고 바둑교실하면서 먹고사는 분들이 이렇게 말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봐줘야하나? 바둑이 스포츠화하면 잡기가 되고 도와 예를 중시하면 정신적인 놀이가 된다고 했는데 그정신적인 놀이가 잡기 아닌가요? 도와 예를 중시해서 산속으로 들어가 도끼자루썩는지도 모르는  
풍운아1 |  2013-02-02 오전 11:54: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신적인 놀이가 되야한다는 것인지? 태권도,합기도,검도도 스포츠이지만 도와 예의를 중시하고 있으며 문박사 말씀대로 최근 스포츠가 정신과 신체의 구별을 부정하는 태도인데 바둑만 한국기원이 정신적 측면을 일부러 소홀히 한다는 말인지 얼핏 이해가 안간다.프로기사 명칭도 그렇다.사랑방에서 내기바둑두면서 시정잡배 취급받던 바뚝꾼들을 프로기사로 만들면서 사범으로 불려지기를 희망했던 조남철선생님의 노력이  
高句麗 제 생각은 한국기원이 바둑의 스포츠화 이후로 너무 스포츠화만을 강조하다 보니 정신적인 측면을 소홀히 한것은 사살입니다 그러나 바둑팬들 중에 바둑은 소포츠이지 더이상 예나 도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생기죠 왜 그럴까요? 한국기원이 너무 스포츠화만을 강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 예술쪽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둑스포츠화 이후로 한국기원이 바둑을 도나 예술로 부르는 경우 별로 보지 못했읍니다 어쩌면 일부러 외면했는지도 모르죠
풍운아1 |  2013-02-02 오후 12:03: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프로기사들의 지위향상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그래서 프로기사를 시정잡배로 보는 사람도 없다.그런데 13살난 프로기사를 사범으로 부르는것이 옳은가?70넘은 노기사를 사범이라 부르는 것이 옳은가?어르신이나 선샌님으로 호칭해야하지.검도합기도장에 가면 사범이나 불리우는 이들이 많다.그들의 사회적 대우나 인식이 선수라 불리우는 최경주,이승엽,박지성보다 높은가?기사가 단체시합에서 선수라 부르면 단체대항전의 말로  
高句麗 실력은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그만큼 경지에 가면 대접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배움의 자세입니다 나이 많다고 어린놈에게 고개 숙이기 싫다? 그건 배움의 자세가 안되었다는 것이죠 진정 배움의 자세가 간절하다면 80먹은 어른도 3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3살어인이에게도 배울게 있다면 저도 나이 막을 만큼 먹었지만 나이먹은거 자랑 아니죠
풍운아1 |  2013-02-02 오후 12:06: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말(馬)로 인식하는 문박사의 인식이 더 문제인것 같아 안타깝다.  
풍운아1 |  2013-02-02 오후 12:29: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옛날에 정부부처에 축구부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축구선수로 뽑히는 것을 공무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부처별 대항에서 선수로 뽑힌 사람은 국장이든 과장이든 선수집합하면 모두 기꺼이 다르곤 했다.프로기사도 단체전에 나서면 선수이고 안나가면 프로기사이고 과장도 계장도 선수로 뽑히면 그냥 선수다. 선수란 말을 단체대항전의 말로 인식하는 생각을 바꾸시길 빌어본다.  
하얀솔 |  2013-02-02 오후 7:10: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 사회적 약자 배려차원의 여자입단대회, 여류기전 별도 개최가 남자기사들을 '약자'로 만들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한국바둑이 공정성의 기준에 지나치게 함몰되었다 볼 수도 없습니다. 며칠전 여류명인전에서 우승한 최정2단이 획득한 상금이 1200만원이었습니다. 이는 일반기전인 명인전 우승상금 8000만원에 비해 결코 과다한 금액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얀솔 |  2013-02-02 오후 7:26: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난달에 끝난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남녀단식 우승상금은 각각 243만 호주달러로 동일했습니다. 다른 그랜드슬램대회 남녀단식 우승상금 역시 동일합니다. 남녀우승상금이 동일해 지는 과정에서 여성차별-역차별 논쟁이 제기되었습니다만, 차별논쟁 당시 여자단식 우승상금은 남자단식의 약 90%였었습니다. 여류명인전 우승상금이 명인전 상금의 15%에 불과함에도 공정성이 지나쳤다면, 도대체 몇 %면 적절한 공정성인가요...  
하얀솔 |  2013-02-02 오후 7:36: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 90년대이후의 덤크기 증가가 바둑의 재미를 앗아가고, 그 결과 바둑인기가 줄었다 볼 수는 없습니다. 중국은 2002년 덤크기를 5집반에서 7집반으로 늘렸지만, 바둑인기는 더욱 늘었습니다. 응씨배는 한중일 모두 덤5집반이던 시절 1989년 첫회부터 덤7집반(대만식 8점)으로 정했지만, 공정성이 지나친 7집반 덤규정때문에 응씨배가 재미도 없고 인기도 시들한 대회로 전락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얀솔 |  2013-02-02 오후 7:47: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3. 2000년대초 기전 정체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스포츠로 방향전환을 시도한 점을 두고, 사회 대신에 정부에 기대기 위함이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기전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바둑 후견보다는 스포츠바둑 마케팅이 기업유치에 더 유리합니다. 참가비 3억원을 내고 바둑리그-지나찬 스포츠의 표상-에 참여하는 기업 수는 일반기전 후원기업 수에 버금갑니다.  
하얀솔 |  2013-02-02 오후 7:59: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물론 스포츠 전환이후 정부지원이 확대된 점을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작년 한해동안 바둑계로 흘러들어온 국민체육진흥기금(사용시 문체부 승인필요)은 약12억원이었습니다. 예도론을 지키던 시절에 비하면 살림살이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얀솔 |  2013-02-02 오후 8:13: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말나온 김에 스포츠바우처(저소득층 스포츠 강좌지원) 문제도 짚어보겠습니다. 바둑학원은 현행법상 체육시설 관련법이 아니라 학원법(技藝 교습)의 규율을 받습니다. 그 결과 저소득층 청소년이 태권도 등을 배우고자 할 때는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으나, 바둑을 배우고자 할 때는 지급불능입니다. 바우처사업에서라도 스포츠가 아니라 '기예'로 취급받았으니 기뻐해야 할가요?  
하얀솔 |  2013-02-02 오후 8:24: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4. 처음 바둑을 배우는 경로를 조사해본 결과 독학에 비해 함께 배우는 경우가 4배라는 사실만으로 바둑의 본질이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면서 배운다는 것은 상대방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놀이라는 것을 말해줄 뿐, 예술이냐 스포츠냐를 가르는 기준은 아닙니다.  
高句麗 바둑은 스포츠이면서도 도 예술도 됩니다 한국기원도 너무 편향적으로 스포츠화만을 강조하다 보니 도 예술 쪽을 소홀히 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둑은 더 이상 도 예술이 아니라 착각한 것이고요 한국기원이 도 예술 스포츠를 같이 강조했다면 사람들이 바둑은 스포츠지 더이상 도나 예술이라 말하지 않았겠죠 아마 한국기원도 바둑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바둑은 도나 예술이 아니다라고 생각한거 아닌지
하얀솔 |  2013-02-02 오후 8:29: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이 유익한 이유로 정신개발, 정서함양 등을 꼽았다 하여 바둑의 본질이 스포츠가 아니라 藝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스포츠바둑이란 관념이 온전히 사회에 뿌리내렸다해서, 심폐기능 향상이나 키크기를 위해 바둑학원 보낼 학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정신개발, 정서함양을 바둑학원 보내는 이유로 꼽을 것입니다. 이는 <마인드 스포츠> 고유특성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얀솔 |  2013-02-02 오후 9:05:5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5. 일본 명인전은 그냥 명인전입니다. 아사히(朝日) 신문이 주최하고, 협찬/후원기업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명인전입니다. 반면, 한국 명인전은 한국일보/바둑TV가 주최하지만, 후원(돈줄)은 기업(하이원리조트)입니다. 기전앞에 붙은 '~배'라는 거슬리는 명칭을 떼고자 한다면, 시원하게 기업후원을 끊거나 대폭 줄이면 됩니다만... 藝를 추구한 댓가를 프로바둑계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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