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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이야기, 개인과 기풍
2013-01-29 조회 11323    프린트스크랩
▲ 시간제가 적용된 바둑승부 역사상 최장의 대국. 최후의 본인방 슈사이(秀 哉) 명인의 은퇴기는 도전자를 고르기 위해 1년에 걸쳐 선발전을 거쳤고, 도 전권은 30세의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7단에게 돌아갔다. 제한시간은 각 40 시간. 무려 6개월에 걸쳐 14번에 나누어 두어졌다. 관전기를 썼던 가와바 타 야스나리는 훗날 이 한판을 『명인』이란 소설로 펴냈다.



1. 바둑사에 있어서 시간에 대한 인식의 변천

 

바둑은 어떤 기술인가.

 

답의 하나는 시간을 잡아먹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온 종일 바둑판 앞에 앉아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인생을 허비하는 걸까. 그래서 역사적으로 바둑에 대한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낫다는 공자의 말씀은 그래도 좋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놀이의 평가는 달라지는 것.

20세기에 들어와 경제적 여건이 좋아지면서 휴식에 대한 인식은 변했다. 일을 끝내고 적당히 노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뿐만 아니다. 창조적인 일에 있어서는 때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요청된다는 이론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바둑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 6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생산과 일을 중시했지만, 경제가 부흥하면서 개인에게 시간이 주어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여가시간. 그래서 다시 재검토된 것이 노는 시간의 효용이었다. 노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는, 어떻게 노느냐?

 

바둑은 그런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바둑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산업화에 앞서고 경제적 수준이 앞선 일본에서 바둑이 주장한 것도 시간의 의미. 그리고 바둑이 제시한 시간은 일본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바둑은 홀로 하는 것. 무한정 홀로 앉는 것.

상대가 있어도 결국엔 자신과의 싸움.

 

명치유신 후 일본이 사회의 여러 전통을 벗어던지고 있을 때 바둑은 전통을 고수했다. 기사들은 화복(和服)을 입었으며, 머리를 밀어 산사(山寺)의 이미지를 고수했다. 바둑은 정신의 예(). 그러기에 바둑의 세계에는 시간이, 한정 없는 시간이 허용되었다.

 

그 이미지는 바둑이 제한시간을 두지 않을 수 없을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제한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 그들의 바둑관이었다. 고뇌하는 세계. 그것이야말로 동양의 정신사()에서 기()의 완성을 통해 인격의 완성인 도()에 이르는 길이었다. 도에 이르는 길에 시간은 독립변수가 된다. 시간은 완성을 위해 무한정 주어져야 한다.

 

한국에서 바둑의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고 했을 때 조남철 선생이 착안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바둑에 시간을 주자. 바둑에 시간을 주어서 여타 다른 오락과는 다른 세상이 바둑의 세상임을 알려주자. 그것이 한국바둑 초창기의 정체성 확립의 길 하나였다.

 

이제 돌아보게 된다.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므로 돌아볼 수 있다. 과연 그것은 성공했던가? 나아가서, 오늘 바둑의 쇠퇴에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대국장 창문으로 오후의 느릿한 시간을 드러내는 햇빛이 비춘다.
수읽기 삼매경에 빠진 대국자들도 가끔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고개를 돌려
바깥풍경을 봤으리. 이런 고즈넉한 풍경, 잃어버린 지 오래.
조훈현-오규철. 22기 왕위전 도전2국. 1988.03.25. 운당여관. (자료사진/월간바둑)




2.
한국바둑사에서 시간의 변천

 

시간의 변천을 살펴보면(1), 2,000년대 들어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 제한시간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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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국수1위전 도전기 각 5시간 (당시 일본의 명인전 본선 대국은 각 10시간)

1967년 제2회 왕좌전 2차예선 각 5시간

1967년 여류최강 대 명사친선대국 각 2시간

 

2001 왕위전 도전기 각 5시간

2001 왕위전 본선리그 각 4시간

 

2007 왕위전 도전기 각 2시간

2007 11기 기성전 도전3번기 각 1시간

2007 전자랜드배 왕중왕전 결승3번기 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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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두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훌쩍 지나간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앞서 말했지만, 바둑은 시간을 무진장 뺏어가는 놀이라서 바둑 두다가 점심 거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60년대 한국바둑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와 관련해 바둑 하나 보고 가자.

 

당시 아마추어의 대국에는 1시간 또는 2시간을 주었다. 프로와의 차이를 둔 것인데 짧아서인지 초읽기에 몰리는 일은 보통이었다. 그러면 5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간다.

 

1(여류 베스트 홍백전)

1965바둑은 신광여고 학생인 조영숙()과 수도여고의 윤희율을 대국시켰다. “긴장에 싸인 이 대국은 장장 5시간을 끌었다.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다. 그만큼 진지한 대국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관전기 서두에 실린 글이다. 재밌는 것은 다음과 같다.

 

시간은 이미 오후6. 바둑판에 구멍을 낼 듯이 노려보고만 있는 조양을 달래서 일단 봉수(封手)하고 저녁을 먹었다. 식후에는 왕십리에 있는 경우당 김정학 회장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회장 부인의 따뜻한 영접이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었으나 두 소녀의 긴장만은 여전히 팽팽하다.”

 

그러하다. 힘껏 두면 저런 일 예사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10분 만에 뚝딱 두어치우는 일은 일반 기원에서도 보기 힘들다. 참고로 백1에 대해 흑4는 다소 맥빠진 느낌을 준다. A B C로 진행하는 것이 바르다. 그것이 힘이 있다. 여기 흑4 다음 백이 A로 막는 진행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흑이 불만이다.

▼ 조영숙-윤희율

 

그런 풍경이 60년대였다. 70년대도 다를 바 없었고 80년대도 비슷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와 시간은 바둑의 새로운 관심거리가 되었다.

 

90년대 들어와 세계대회가 많이 개최되게 되자 하루에 한 판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세계대회의 경우엔 1인당 3시간이 보통이 되었다. 그럼에도 국내 바둑은 대체로 도전기는 5시간, 본선 대국엔 3시간, 4시간이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95년 바둑TV가 개국되면서 상황은 급전했다. 상황은 2000년을 전후하여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서 더욱 변해갔다. 시간을 크게 줄이는 쪽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1)이 보여주듯 결승국마저도 10분 제한시간을 주고 있다.

 

그러나 TV 위주의 제한시간에 대한 반성도 없지 않다. 2010년 무렵, 한국이 중국에 밀리는 경향을 보이자 그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 것은 짧은 제한시간. 속기바둑이 프로들의 수준을 낮춘다는 것으로, 사실 이 문제는 10년도 이전에 이미 지적되었다.

 

 

 

3. 시간과 기사 정체성의 문제

 

우린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삶의 방식 또한 우리가 손으로 감촉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기반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바둑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시간은 바둑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의미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기사들에게 시간은 바둑의 세계를 알아가는 조건으로 인식된다. 초반을 생각해보시라. 돌 몇 개 놓여지지 않은 공간에서 기사들은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모호하면 불안한 것이 당연한 것. 돌의 높낮이, 돌의 간격, 진영의 크기, 발전성 등을 고려하고 계획을 세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계산만이 작용하는 사활이나 끝내기에서도 마찬가지다.

 

60년대 전문기사 제도를 마련하고 바둑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했을 때, 문제가 된 것은 잡기로서의 바둑이 아니라 건전한 놀이 또는 심오한 정신적 예()로서의 바둑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물론 이미 바둑이 잡기로 인식되어온 상태였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국 바둑관전기의 시조인 운심각주인(雲深閣主人 每日申報에서의 관전기 필명) 유광열 선생이 알려준 풍경 하나가 바둑의 사회적 인식을 거울처럼 알려준다. 1930년대 당시 일본의 기사와 한국의 노국수 간의 대국을 취재할 때를 회상한 것이다.(바둑1979.4)

 

“... 그때 하시모도의 대국태도는 퍽 인상적이었어. 경건하기 짝이 없더군. 우리 국수들은 대국하다 말고도 참외를 벗겨서 어쩍어쩍 먹고들 했는데......”

 

하하. 참으로 눈에 선한 그림이다. 바둑에 인생을 던진 기사와 내기의 대상으로 삼은 국수들의 차이. 그것은 바로 국민들에게 바둑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는가를 그대로 말해준다.

 

저런 차이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사회적 인식이란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라서 바꾼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인데 말이다. 조남철 선생이 했던 것은 기사들의 태도를 먼저 바꾸는 일이었다. 국민들의 인식은 기사들의 자의식 다음에 올 수 있는 것이라 보았다. 시간을 먼저 다루는 것이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우리나라의 각종 타이틀 기전 제한시간은, 대체로 본선 리이그전 이상을 5시간씩으로 두어왔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예선전이 5시간, 본선전 이상은 10시간씩으로 우리보다 곱절이나 된다. 즉 그네들은 열 수를 생각하는데 우리들은 너덧 수밖에 읽지 못하는 그런 시간으로 대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의 수준에 육박하려면 우선 제한시간부터 그들처럼 늘여야 한다고 전부터 주장한 일이 있다. 이 의사의 반응인지 제11기 국수전과 제2기 왕위전 도전대국부터 시간 연장이 실현되었다.” (기계(棋界)1968.1)

 

실로 바둑에 인생을 걸었던 일본의 옛 기사들은 물론이거니와 60년대의 기사들은 시간에 대해서는 양보할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그 이전 순장바둑 국수들의 행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했다.

 

시간의 경주는 전문기사로서의 자기 싸움과도 맞물린 것이었다. 예를 들자. 1975년 초 조치훈과의 대국을 위해 일본에 다녀온 후, 서봉수는 변했다.

 

바둑에서 수양과 인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과 시합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부족하다. 적개심 따위로도 안 된다. 앞으로는 오직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 기분으로 두어나가야 한다. 주어진 시간을 전량 다 소모하며 매판 4시간 59분이란 기록을 기보 끝에 남기고 싶다.

속기란 한 마디로 경솔하며 속기로 이긴다는 것은 운과 다를 바 없고 좋은 기보도 나올 수 없다.” (바둑1983. 12)

 

서봉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프로의 승부는 언제나 대국하기 전 마음자세에서 이미 갈라지는 것이 널리 경험되고 인정되었기에 자신을 바둑에 던지고자 하는 기사는 누구나 시간을 불살라버리고자 했다.

 


1976년 4월 27일 도쿄 제국호텔에서 벌인 조치훈-서봉수의 일전.
명인과 왕위 2관왕이었던 서봉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젊은 강자 조치훈과 고바야시 고이치와 실력을 겨뤘으나 3전 전패하고 돌아왔다.
(자료사진/한국기원)

 


4.
소외를 보상하는 바둑의 시간

 

바둑의 정의 하나는, 바둑이란 것이 시간을 없애는 매력적인 도락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바둑이란 시간을 죽이는 직업, 그 점에서 보면 프로란 시간을 어떻게 죽이느냐, 그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기사들은 딴 세상에 사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화복(和服)을 입고 머리를 삭발한 채로 하염없이 바둑판 앞에 앉아있는 그들. 그들은 세상과 동떨어진 세상에서 인간의 극한, 정신을 실험하는 존재로 이미지 잡혔다. 그것이 힘이었다. 바둑의 성장에 미친 긍정적인 힘이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것은 두 방향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 기사에게 바둑의 세계가 있다는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2) 근대적 시간으로부터 소외된 대중들에게 바둑의 세상으로써 심리적 보상을 얻도록 했다.

 

근대화는 전통으로부터의 소외 과정. 그 대표적인 것이 시간.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개인이 잃어버린 것이 전통적 시간이었고 주어진 것은 단선적 시간이었다. 사회가 부여한 단선적인 시간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일부를 상실하는 고통을 겪는다.

 

60년대의 잡지를 보면 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이 빠르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면 참으로 느리디 느린 시간관념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개인은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외롭다. 개인이 소외될 때 개인은 개성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 속에 매몰되는 자기 자신. 어떡하면 좋을 것인가?

 

보상이 필요하다. 개성을 살려주는 그 무엇이 요구된다. 자기의 성찰도 그 하나겠지만, 보다 쉬운 것은 개성이 살아있는 세상을 만나 동질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그 무엇을 대신하는 그 어떤 일체감을 얻는 것이다.

 

바둑은 그 좋은 대상이었다. 도시화 속에서 소외되는 개인들에게 바둑은 보상으로서 기능했다. 그 간접적인 증거를 잠깐 보자.

 

(2) 처음 바둑을 배우는 경로(2008 한국갤럽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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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 친구, 동료 등의 지인을 통해 61.3(%)

군 복무 중, 바둑교실, 학교* 15.8

독학, TV와 인터넷 매체**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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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복무 중(7.4) 바둑교실(6.0) 학교(2.4) ** 독학(15.9) TV와 인터넷 매체(5.8)

 

가까운 곳, 지근거리의 대화가 가능한 곳, 그 곳에서 배운다. 이는 도시화에 따른 소외로부터 바둑이 긍정적인 보상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2008년에도 이러하니 60년대 70년대에야 더하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바둑을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는가?
우리 생활 주변, 삶 속에 바둑은 항시 함께였다.
(사진/이주배)



5. 개성과 기풍을 숙성시키는 시간이 즐거움의 요소

 

소외는 영웅을 기대한다. 자신과 일체감을 안겨주는, 그래서 소외를 감소시킬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영웅이 현대사회에서는 널리 요청된다. 바둑의 경우에도 다를 바 없는데, 바둑에서는 그 무엇이 그 영웅의 본질을 이룰까? 만약 바둑이 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대중들에게 소외를 보상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제공할 수 없었다면 바둑의 성장은 어려웠을 것이다.

 

대중들이 스포츠나 예술의 스타에 환호할 때 그들은 스타들의 독자적인 개성에 대해 환호한다. 그런데 그 요구는 바둑의 경우에서는 무엇으로 드러날까? 영웅의 갈등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영웅신화다. 조남철과 김인의 대결, 조훈현과 서봉수의 갈등, 스승에 대한 이창호의 도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웅은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개성 없는 영웅은 없다. 영웅의 개성은 바둑에서는 기풍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시간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기풍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피땀을 흘러야만 얻어지는 것이다. 영웅은 자신만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하여 그 오랜 시간을 도전과 패배, 재도전으로 노력한다. 그러하다. 바둑에서도 기풍의 성장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것이 한국바둑의 심리적 성장 동력이었다.

중후한 김인, 바람 같은 조훈현, 야생의 서봉수...

 

아마도 이러한 개성이나 기풍이 무슨 힘이 되는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바둑의 흥미가 본질적으로 승부가 아니라, 승부를 둘러싼 이야기, 그것도 인간적 이야기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 권희철 선생이 쓴 관전기의 힘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무미건조한 숫자를 놓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단조로움을 가급적 말소하며 거기에 살을 붙이고 향기마저 풍기게 해야... 아무리 천하의 명국이라도 관전기로 엮은이의 기분과 솜씨에 따라 보잘것없는 졸작으로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반대로 평범한 바둑이 명국 이상의 인상을 독자에게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바둑1979.4)

 

우린 인간을 만나고 싶다. 숫자를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린 승부를 둘러싼 인간을 보고 싶다. 인간이 배제된 승부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바둑을 즐기되, 대국자의 고뇌를 그 대상으로 했다. 만약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채로운 교직으로 반상에 수놓아지지 않는다면 그 바둑이 무슨 감흥을 주랴. 그래서 그 언제나 바둑의 이해는 곧 기풍의 이해를 전제했다. 아니, 기풍의 이해로 바둑의 이해를 찾아갔다.

 

실로 개성적인 기풍으로 이뤄진 세계가 바둑의 핵심이었다. 기풍은 기사의 인격만큼이나 다양했다. <2>는 기사들에게 질문한 국면이다. 만약 당신이 흑이라면 어떤 구상을 하겠는가?

 

2(기풍과 취향 - 당신의 취향은?)

(1981년 명인전 본선. 6단 서능욱 : 4단 강훈)

▼ 서능욱-강훈

 

3(기풍과 취향-1, 고재희 6단의 취향)

무난한 착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무난하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백2는 무겁다. 3이 오니 백은 양곤마가 된다. 백은 백2 대신에 AB를 구상하는 것이 좋겠다.

▼ 고재희의 구상

 

4(기풍과 취향-2, 서능욱 6단의 취향)

대국 상대자였던 서능욱의 구상이다. 1은 두터운 수법. 이후는 아래 <4-1>를 예상한다. 1이 오니 하변 백도 전체적으로 엷어진다. 백을 잡은 서능욱은 저 흑1을 두려워했겠다.

▼ 서능욱의 구상

▼ <4-1도>

 

바둑은 저런 것이었다. 저런 차이에 대한 이해를 핵심으로 했다. 그 차이를 둘러싼 갈등을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서로가 차이가 있는 것, 그것이 반상에서 드러나든 반외에서 밝혀지든, 그것이 바둑의 이야기이고 본질인 것이다.

 

 

6. 개성을 사라지게 하는 것도 시간이었다

 

시간 없이 내용 없을 것은 분명하고 내용 없이 기풍 드러나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바둑계는 스스로 시간을 제한했다. 급하도록 제한했다. 거의 모든 기전이 제한시간을 1시간 넘지 않는다. 개인은 이제 1시간짜리 기사가 된 것이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개인은 수단이 되는 경향이 있다.

 

바둑리그가 최대의 기전이 되면서 팀에 속하는 개인은 점차 자아의 독특함이 매몰되는 경향을 경험하고 있다. 개인이 매몰되는 집단의 강조는 개성이 발현될 여지가 줄어드는 승부 위주의 스포츠에로의 강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 모두가 기사 개인의 존재감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스포츠 토토를 실행하려 했던 시도 하나만 보아도 개인은 물론이고 승부를 얼마나 단순하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된 속기 기전의 범람은 불안의 심리학을 제공하는 듯하다. 짧은 제한시간 속에서 개인은 시간에 쫓겨서 불안하다. 불안하면? 자신이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둔다. 내용이 없기에 승부로 채운다. 바둑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대인의 정신적 공허감은 잠시라도 뭔가로 채우지 않고서는 5초도 견디기 힘들다.

 

 

이미 상당히 늦었지만 2000년대 중반에야 내용 없는 바둑에 대한 우려가 표면화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둑TV에서 양산되는 바둑에 대한 우려로, 첫째 실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바둑2007.8)

 

시간이 많아도 실수는 있다. 실수 없는 바둑은 고금에 없다. 문제는 빈도. 그리고 자신의 책임 하에 오는 실수냐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실수냐, 그 차이. 실수가 많아도 그것이 생명력이 있으면 그것은 명국이다.

 

최선을 다한 장고 끝의 실수는 고뇌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감정, 예컨대 유리 불리에 대한 이해, 자책, 지나친 긴장 등에 의해 빚어진 실수는 오히려 바둑을 하나의 큰 작품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10분의 제한시간에 쫒겨-이는 제한시간 5시간을 다 쓰고 난 다음 몰려서 오는 초읽기와 다르다-실수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급적 실수를 적게 하는 것이 목적인 그런 상황에 의한 실수와는 질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것이다.

 

승부방식과 문화적 정체감, 그것에 기준해서 바라볼 때 최근에는 일종의 불안의 정체성이 반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듯하다. 개인차가 거의 없는 바둑 스타일과 단속적인 전투가 반상을 지배한다. 기풍이 사라진다. 기풍이 드러날 기회가 없다.

 


5회 원익배 십단전 준결승 이창호-강유택. 2009년 12월.
서른 중반부터 하향세를 보인 이창호의 쇠퇴 요인에는 속기일색의 기전방식도 
한가지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7.
바둑의 쇠퇴엔 시간이 한 몫 했다

 

시간과 관련된 두 개의 대비가 한국바둑의 성장과 쇠퇴를 대변해준다.

 

1) 바둑은 누가 만들어내나?

a) 시간이 많을 때에는 기사가 바둑을 만들어냈다.

b) 시간이 없을 때에는 대중이 바둑을 만들어낸다.

 

대중이 바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은, 바둑TV(임진영 PD의 말)가 사실상 주장하는 것이다. (바둑2008.11)

 

시청자가 지루하지 않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시간이 2시간입니다. 거기에 맞추다보니 제한시간 10분이 대종을 이루게 되었지요.”

 

2) 시간에 적극적인가

a) 시간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에는 승부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b) 이야기가 들어갈 시간이 없을 때에는 건조한 승부만이 담긴다.

 

이야기도 없지만 이야기가 있어도 기사거리가 없다는 데 대한 기자의 토로가 현실을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서정보, 바둑2007.12)

 

기전이 주로 승패 위주로 되다보니 기사 쓸 게 별로 없으니까.”

 

 

90년대 말 이후 한국바둑계의 시간은 한국바둑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둑을 좋아하는 애기가들의 바둑도 앗아갔다. 바둑이 좋은 휴식이 된다는 것은, 정신의 회복을 얻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정신적 회복, 그것은 곧 소외의 극복을 말한다.

 

시간이 많을 때에는 소외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허겁지겁 소화만을 요구하는 승부의 요청 속에서 내용은 없고 승부만의 요청만 많다. 밥을 급하게 먹을 때 소화되는가? 여유로운 마음 갖게 되는가? 바둑도 다름이 없다.

 

한판의 바둑은 프로에게도 힘들다. 그런데 그 힘든 바둑을 짧은 시간에 몰아넣어서 아마추어가 이해하라고? 이해는 곧 참여를 의미하기에, 이제 아마추어는 피곤하다. 승부에 물린다. 바둑은 가치 낮은 재화가 된다.

 

바둑TV의 요청에 의해 바둑은 낮은 가치의 바둑을 공급하고 있다. 이럴 때 바둑의 인구가 급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낮은 가치를 공급하는 재화에 누가 높은 대가를 치르려고 하겠는가.

 

시간에 대한 이해와 실천, 그것이 한국바둑 성장과 쇠퇴의 이면에 큰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부족한 것이 귀한 법. 세상이 시간에 쫓길 때 바둑은 느린 시간으로 세상의 소외를 보상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성공했던 것이 성장이었고, 실패했던 것이 쇠퇴를 이끌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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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湖千秋 |  2013-01-29 오전 12:27: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간 일련의 씨리즈 정말 유익하고 꼭 필요한 성찰이었습니다.
일일이 꼽고 싶지만..하여간 박사님의 견해와 시각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노고에 감사드리며 차후 혹 짚을지 모르겠지만...
속성바둑의 문제점 못지않게....조숙하여 채 익기도 전에 떨어져 문드러지는...

조로를 조장하는 것 같은 현 영재운운 세태에 대한 경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바둑..실력 물론 중요하지만 실력이전에 인성이 본령아니었을지..  
江湖千秋 시간도 중요하지만 코찔찔이에게 무슨 철학과 스토리가 있겠으며 문화예술적 소양이 있을 것이며..넷게임 같은 바둑만 또닥이느라..같잖은 상금에 눈이 멀어 아둥바둥하는데 언제 그런 가치들을 함양할 수 있을 것입니까..기껏 바둑만 잘 이겨내는 기계일 뿐이지..아 하고픈 말은 많지만..
高句麗 |  2013-01-29 오전 7:51: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예술의 창작은 긴 고뇌의 괴로운 고통속에서 창작이 됩니다 소설도 고뇌어린 고통속에서 명작이 탄생합니다 디자인을 창조할때도 그렇고요 그것이 예술입니다
아마추어 같은 10분 바둑에서는 예술이 창작이 나올수 없죠
그래서 10분 바둑때문에 바둑의 깊이나 예술성이 많이 떨어졌다고 봐야죠
당연히 기사거리도 떨어질테고 10분 바둑에서 무슨 기사거리가 나올까요?  
高句麗 |  2013-01-29 오전 7:54: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옛날의 기보를 보면 아 과연 하는 감탄사가 많이 나왔읍니다 그것은 긴 시간의 장고속에서 나오는 내용의 깊이나 오묘함 때문이겠죠
그러나 요즘 바둑은 옛날 바둑같은 아 과연 하는걸 못 느낍니다 10분짜리 바둑으로 일관하다 보니 그 기보를 보는 바둑팬들도 못느끼는가 봅니다 저만 그런지 몰라도 물론 제가 옛날보다 칫수가 5점정 이상 실력이 늘어서 감탄이 덜할수도 있지만 이글을 읽고 보니 꼭 그것만은 아니라  
高句麗 |  2013-01-29 오전 7:58: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기사들이 아무리 실력이 늘어도 지금의 10분 바둑은 옛날의 3시간 4시간 의 장고바둑에서 오는 고뇌어린 작품 속에서 오는 바둑 내용을 따라갈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 아마추어들도 바둑감상할때 깊이를 느끼는게 틀리다 생각이 듭니다.
즉 3시간 4시간 고뇌어린 아마추어 바둑도 10분짜리의 프로바둑보다 질이나 작품성에서 기보내용이 좋을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같은 프로끼리는 더 말할  
高句麗 |  2013-01-29 오전 8:00: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위가 없죠 지금 제가 말한 것이 꼭 맞는다 틀린다 말할수 없읍니다 그러나 한번 이점은 깊이 생각하고 검토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강릉P |  2013-01-29 오전 11:27: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박사님 역대 글중에서 시간떄문에 퇴보했다는 글은 처음이군요..
아무래도 바둑리그의 영향 때문인지 박사님이나 배태일 박사님이나
의견이 비슷한것 같습니다. 허나
너무 과거에 매몰되어있는것 아닌가 합니다..1980년대가 바둑이 최전성기였다고
하는데 너무 자조적인것 같습니다.지금 중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고
거기에 우리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건 문화적인 측면떄문이지
시간떄문인가..그건 좀 의문..  
高句麗 과거에 매몰된게 아니라 너무 스피드나 변화를 중요시하다보니 과거의 장점이 매몰된게 많읍니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과거의 장점을 다시 살려서 발전을 도모하자는 의견으로 들립니다
강릉P |  2013-01-29 오전 11:28:3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떠한 면에선 엄청 퇴보했지만 또 인터넷 바둑이나
바둑의 상아탑 진입등 진보한 것도 매우 많습니다..
1980년대보다 못한게 없죠..지금은 조치훈 같은 명인급이
100명은 된다고 봅니다..10분 바둑이라도 이틀바둑보다 오히려
내용이 좋은경우가 허다합니다..  
高句麗 과거의 조치운 같은 명인급이 100명이라 하더라도 10분바둑에서는 명국이 탄생하기 질 좋은 내용의 바둑이 탄생하기 힘듭니다 10분 바둑이나 3시간 바둑이나 같다면 왜 예술가들이나 소설가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고뇌할요? 예술가나 소설가들만 그럴까요? 디이진이나 발명가들도 그렇읍니다 시간과 바둑의 질은 반드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강릉P |  2013-01-29 오전 11:33: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물론 중국리그가 시간이 길기 떄문에 그것의 영향인지..
그것은 더 자세히 연구해봐야 할 문제입니다..그러나 약간
고개가 갸웃해졌습니다.  
강릉P |  2013-01-29 오전 11:59: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리고 냉정히 생각해보면 젊은 사람들이 바둑을 안배우는 이유는
바둑이란것이 별게 없다는것을 알고있기 떄문이기도 합니다..재밌고 머리좋아지고
돈되고 과학적인 게임은 넘쳐납니다.젊은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슴은 아프지만 이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일본이 왜 바둑이 퇴보했습니까?
누가 바둑에 시간을 들여 투자를 할까요..시간을 변화시키지 말고 바둑인들이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이것저것 해야 할것은  
강릉P |  2013-01-29 오후 12:01: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많은데 많은 시간 투자해야 하는 게임이라면 젊은이들은 100퍼센트
노입니다..바둑은 답이 없는 게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해오 일본을 본다면 무조건 시간을 늘린다고
되는것도 아니겠지요..형편 없지 않습니까..오히려 더 몰개성화되고
있습니다..  
高句麗 일본이 퇴조한것은 장시간 바둑과 아무 관련이 없읍니다 국제무대에서 갈수록 저조한 일본기사들의 성적때문이라고 봐야죠 과연 일본이 지금 우리나라 같이 중국과 대등하게 겨루면 지금도 일본이 장고바둑때문에 퇴조한다는 소리 나올까요? 물론 장고 바둑이 바둑성적과 관계 없다고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같은 바둑도장 시스템이 없어서 성적 못 내는 것이지 장고바둑이기 때문에 성적이 안좋은 것은 아니죠
高句麗 즉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의 바둑도장 같은 조기교육시스템이 없어서 성적이 안좋은 것이지 장고바둑의 효과가 없어서 성적이 안좋은 것은 아니라 봅니다
노숙자50 |  2013-01-29 오후 1:50: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열흘짜리 바둑 부활하면 바둑 인구 늘어날까요? 과연?  
江湖千秋 |  2013-01-29 오후 2:11: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시간이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 봅니다. 그러나 열에 두엇정도 중요한 변수 아닐지..
반 가량은 달라진 세월.. 세태가 원인일 겁니다.
그나 저나 천하제일 바둑전문가 고구려님^^
의견개진도 좋지만 너무 왕성하면 사람들이 식상하고 질려해요.
한마디하면 백마디로 폭풍이니 아는 척이나 할 수 잇것어요ㅋ  
하얀솔 |  2013-01-29 오후 5:32: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 해마다 소속선수 60%이상이 물갈이될 수 있는 현행 바둑단 운영방식이 리그 참여기사 자아의 독특함을 들어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고 있습니다. 소속팀이 해마다 뒤바뀌는 현실에서는 'A바둑단 기사로서의 甲'이라는 정체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정체성, 자아의 위기는 단체리그전 도입자체가 아니라 <운영방식> 때문입니다  
하얀솔 |  2013-01-29 오후 5:45: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 승부위주의 스포츠바둑 강화가 개성발휘여지를 줄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단체스포츠에서도 개성은 발휘되며 영웅은 탄생합니다. 국가대항 단체전인 월드컵에서도 축구영웅신화는 존재합니다. <스포츠=몰개성=영웅말살>이라 단정짓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하얀솔 |  2013-01-29 오후 6:04: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3. 이창호 쇠퇴요인의 하나로 속기일색의 기전방식을 꼽기는 어렵습니다. 2013년 1월 현재 이창호의 무관탈출 희망은 TV속기전인 바둑왕전 우승입니다. 이처럼 30대 중반인 이9단에게는 체력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속기바둑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창호 쇠퇴는 80년대이후 출생 후배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자리 |  2013-01-29 오후 6:22: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느 박사는 속기때문에 한국 기사들 기력이 떨어진다 하고,오늘 박사는 속기때문에 기풍 형성이 안되고,팬들은 이해하기 어렵고,그래서 인기가 떨어진다는데,과연 그런가?빈약한 논거로 선입관에서 비롯된 편견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좋은 논설이 아니다.두분 박사는 좀 더 설득력 있는 논거를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대자리 오늘날 바둑은 과거에 비해 대중으로부터 더 멀어진 것이 아니고 바둑계 종사자들이 바라는 욕망이 더더욱 커졌을뿐이다.언제 바둑이 동시적으로 수천수만명이 동시접속하여 게임을 하며,수많은 바둑 도장들이 수백만원의 수강료를 받아가며 프로지망생들을 직업적으로 가르친 적이 있었는가?바둑은 결코 쇠퇴한 게 아니다.다만 프로축구나 야구에 비해 못 미치는 것 뿐이다.바둑을 어떻게 축구나 야구처럼 대중적인 게임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는 올바른 문제제기지만 바둑이 왜 쇠퇴하는가는 바른 문제제기가 아니다.문제인식이 잘못되니 처방도 복고적인 주장만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묘구현 논거가 빈약하고 설득력을 따지기 이전에 복잡하게 보이지만 너무나 명확한 인과관계입니다. 바둑을 거대한 수학에 비유하자면 조그만 산수가 모여 큰 한판이 되는데 시간이 적으면 당연히 실수가 나오죠. 빈약하고 선입관이고 따질 이유가 없어요. 너무 뻔한 얘기라. 꼭 찍어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것도 아니고.
高句麗 제일 큰 문제는 바둑인구의 감소때문에 문제라 봅니다 현상태만 유지해도 문제가 안되는데 갈수록 줄어드니까 미래를 볼때 심각한 것이죠
현묘구현 |  2013-01-29 오후 8:32: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 맞는 얘기지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둑'이라는 장르와 그 '바둑'을 두는 당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인지가 궁금합니다. 결국은 아마추어, 팬들은 본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이건 소통의 문제가 아니에요. 결정의 문제지. 1시간 2시간짜리 바둑만 있다고 볼 사람들이 안보고 바둑 둘 사람들이 안둡니까? 문제는 바둑계 내부 그중에서도 직접 두는 프로기사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거죠.  
현묘구현 아마추어, 시청자, 팬 이 모두가 비슷한 맥락이라면 모두들 어차피 결정되는대로 따라갑니다. 속기화를 어떤 담론없이 현대화니까...티비시대니까...싫어하니까...이렇게 맹목으로 받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속기가 솔직히 보기도 더 나쁩니다. 해설들을 여유도 없고 무슨 가위바위보도 아니고 승부만을 위한 대결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바둑' 그 본질을 위해선 당연히 최소한의 '시간' 둘시간, 즐길시간, 음미할시가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이디77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
하이디77 |  2013-01-30 오전 10:47: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울에서 아주 머~~얼리 떨어진 시골에서 현재 바둑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
바둑을 가르치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이 교본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리즈로 나와 있다고요?
그런 것은 교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단편적인 지식을 엮어 놓은 수준인 것이지요. 그 정도는 아마추어인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제 수준에서 충분히 엮을 수 있는 내용으로 말이지요. 바둑계의 발전을 이야기 하자면  
하이디77 |  2013-01-30 오전 10:52: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위의 주제인 시간도 들어갈 것이며, 기타 그 동안 논의되었던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평소에 스치듯 말씀드린 바둑교본은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않네요. 아쉽습니다.
바둑을 배우는 방법에 쉬운 접근도 중요합니다. 제 직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쓰는 바둑학원의 교재 3 종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편적입니다. 바둑이라는 것이 단편적인 지식을 모아놓기만 하면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하이디77 바둑매체를 육성하고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바둑티브이가 원하는 시간단축에 기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해서 생긴 결과라고 보면 무리일까요?
천리추풍 |  2013-09-18 오후 12:07: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몰개성한 바둑을 두고 있다는데 많이 공감합니다.
근래 한국프로들의 바둑을 구경하다 보면 과거 일본의 기사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져요.
요즘 감히 누가 자신의 바둑을 걸고 우주류특강이네,싸움바둑을 둬라등의
책 한 권 당당하게 발표할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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