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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시스템과 개인의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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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시스템과 개인의 승부
2013-01-25 조회 10095    프린트스크랩
▲ 4인방으로 불리며 한국바둑의 황금기를 구가한 서봉수 유창혁 조훈현 이창 호 9단이 sbs 창사2주년 특별연기대국을 벌이는 모습. 1992년. (자료사진/ 월간바둑)

   

 

1. 세대교체의 역사

 

무릇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외부에 열어놓음으로써 생존을 일궈간다.

영양소를 밖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가 그 얼마나 주민을 피폐하게 하고 있는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바둑계는 어떻게 자신을 열어두었던가.

 

그것은 세대교체의 과정과 결과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바둑계는 1964년 프로와 아마의 구별 이후 2010년대 초까지 약 40년간 서너 번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왔다. 기존의 세대를 밀어내고 새로운 세대가 반상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보였던 것이다.

간략하게 보면, 해방 이후 60년대 중반까지는 조남철의 시대였고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는 김인의 시대였다. 그것은 바둑의 제1세대라고 할 만한 시기였다. 이때의 바둑계는 일본에 비해 실력에 있어서나 관념에 있어서나 한계에 부딪쳐 있었다.

 

1972년은 한국바둑계에 있어 획기적인 전기가 예비되고 마련된 시간이었다. 그때에 비로소 새로운 반상 이해, 신선한 반상 관념, 생동하는 세대교체 등이 드러나기 시작했었다. 이에 대해 1977바둑9월호는 당시를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1972년은 바둑계에 획기적인 한 해가 된다. 이 해 무명의 서봉수 초단이 명인전 본선에서 무적의 김인을 꺾고 도전자로 올라섰고 드디어는 조남철 명인으로부터 명인위를 쟁취한 것. 서명인의 출현은 갈증에 허덕이던 팬들에겐 단비와 같았고 침체에 빠졌던 바둑계엔 용기를 불어넣어둔 충격파였다.

 

바둑계에 쇄신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한없이 멀고멀어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 보이던 김인왕국이 하루아침에 가까워 보이고 젊은 기사들은 새롭게 연구를 시작했다. 때마침 일본에 가있던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등이 속속 귀국하면서 김인을 향한 도전세력은 전력이 크게 강화되었고 이 중에서도 조훈현의 존재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었다.”

 

멀어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 보이던 김인왕국이 하루아침에 가까워 보이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시의 수준은 일본의 정상급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다음 <1> <2>가 말해준다.

 

1(1960년대 조남철과 김인)

김인이 구상한 그림 중의 하나로 활발하다. 실전은 흑1이 아니라 흑A, B로 되었는데 흑의 책략이 부족하다는 자평이 있었다.(1969년 제3회 왕좌전 제1. 8단 조남철 : 7단 김인)

▼ 김인의 자평

 

2(1972년 서봉수의 명인 획득)

1은 흑2와 교환되어 악수다. <2-1>처럼 상변을 먼저 정리한 뒤 백1 이하 7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1972년 제4기 명인전 도전3. 백 명인 조남철 : 2단 서봉수)

▼ 19세 명인이 탄생했던 그 도전기

▼ <2-1도>

 

1972년 조훈현 19, 서봉수 19. 바둑에서 나이는 중요하다. 적어도 20세쯤에는 일가를 이루어야 비로소 대성을 기약할 수 있다. 나이 하나만으로도 90년대에 도래하는 한중일의 바둑 수준을 예상하는 자료가 하나 있다. 중국과 일본이 80년대 중반 슈퍼대항전으로 겨룰 때 후지사와가 말했다.

 

슈코 선생을 기쁘게 할 아이(이창호)를 내제자로 삼았습니다. (조훈현)에게 2~3점으로 버팁니다.”

 

훈현에게 2, 3점으로 대항할 수 있다면 이미 프로 초단에 가깝다. 조치훈 기성조차 입단은 11세에 이루어졌다. (중략) 바둑을 단련하는 데에 젊음보다 더 좋은 밑천은 없다. 바둑의 기초적 힘은 20살까지 이미 키워지는 것이다. (1회 중일 슈퍼대항전)

 

그러하다. 승부에서 나이는 무서운 요인이다. 젋음은 새로운 관념의 습득을 용이하게 해주며 기존 관념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문화적 한계 또한 넘어서게 해준다. 뿐이랴. 한판의 바둑에 들어가는 극심한 에너지를 생리적으로 뒷받침해준다.



명인전 도전권을 땄을 때 서봉수의 단위는 초단이었으나
조남철 명인과 명인전 도전기를 벌였을 때엔 19세, 2단으로 승단해 있었다.
1972년 4기 명인전 도전기 장면. (자료사진/한국기원)
어쨌든 당시 19세, 2단 명인의 탄생은 속된 말로 '사람이 개를 문 사건'에 비견될 만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5년 이창호가 연구생이 되었을 때, 한국의 바둑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기업의 후원으로 기사들의 경제적 여건은 안정되고 있었으며 사회적 인식 또한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조치훈의 명인 획득이 사회적 인식변화에 큰 힘이 되었으며 조훈현 서봉수의 오랜 경쟁도 바둑의 세계를 깊은 흥미로 바라보게 했다.

 

여건이 좋아지고 사회적 호응에 힘입어 재능 있는 어린 소년들이 연구생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 세대교체는 성공했다. 조훈현과 서봉수 이후에는 유창혁과 이창호가 있었고, 그 후에는 이세돌이 있었다.

 

사회적 세대효과와 나이는 조훈현과 서봉수를 넘어서는 이창호의 등장을 일부 설명해준다. , 이창호는 75년생으로 85년에 연구생에 들어갔으므로 일본에 대한 심리적 부담-60년대와 70년대 기사들처럼 주눅이 든다거나 하는 등-이 없는 세대였다.

 

유창혁도 이창호와 함께 세대교체를 이룬 기사인데, 그 역시 66년생으로 일본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강했던 70년대로부터 거리가 먼 세대였다. 198822세에 조훈현으로부터 대왕을 쟁취할 때 이창호 등 서너 명을 제외하곤 유창혁이 가장 나이가 적었다.

 

유창혁과 이창호의 성장은 조훈현과 서봉수에 크게 힘입었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하나는 바둑의 수준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강박의 극복이었다.

 

조훈현이 일본을 넘어설 즈음에 입단하였기에 유창혁과 이창호는 일본에 대한 심리적 부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이 반상 밖으로 분출되고 소비되는 리비도(정신적이고 생리적인 에너지)를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절약된 리비도를 얼마나 반상의 연구에 쏟아부을 수 있는지, 아마 두 기사는 짐작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조훈현과 서봉수가 닦은 반상 수준의 발전을 보도록 하자.

 

3(안목이 넓어진 서봉수)

<3>는 앞서 1972년에 비해서 서봉수가 얼마나 강해졌는가를 보여준다.(<2> 참조) 한점 정도는 강해졌을 것이다.

▼ 조훈현-서봉수의 일전


1까지 들어올 것을 예상한 후 다시 흑4 이하 백5에 흑6, 8까지 귀를 버린다. 과감하고 안목이 넓다. 수법이 크게 시원시원해졌다. 트인 것이다.(1978. 13기 왕위전 도전2. 백 왕위 조훈현 : 5단 서봉수)

 

4(1984년의 도전 5)

<4>는 다른 기사들 또한 얼마나 실력 수준이 향상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젊은 기사들은 1972년의 서봉수보다도 강한 실력이다.

▼ 도전5강의 실력


1 이하(이후는 <4-1>)는 강인한 자세. 실력 없으면 둘 수 없는 기백이다.(1984년 위험대결. 9단 조훈현 : 5단 강훈)

▼ <4-1도>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유창혁과 이창호가 뒤를 이었으니 조훈현과 서봉수는 약 15년 가까이 세대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조훈현이 김인을 제치고 일어설 때 김인과의 나이가 10년 차이, 김인이 6년을 독주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다소 길게 여겨진다.

 

그러나 초점은 기사의 수명으로, 전성기는 20대 초반부터 40대까지라고 하는 일반적인 기사 수명에 들어맞는다. 나이 40이면 한계가 온다. 지적(知的)으로나 체력적으로 승부를 겨루기 힘든 것이다. 80년대 말 조훈현과 서봉수는 나이의 경계에 섰다.

 

유창혁과 이창호는 약 15. 이창호가 더 길었는데, 재능이야 여기서 말할 바 못되니 나이로만 보아도 이창호의 전성기가 유창혁보다 더 긴 것은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그들 다음에 또다시 세대교체가 일어난다는 것은 예측가능한 것이었고, 실제로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해서 한국바둑계에는 다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이세돌을 초점으로 박정환, 윤준상 등인데 이들은 실력적으로 유창혁과 이창호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바둑의 성장과 쇠퇴, 그 안목에서 세대교체를 다룬다면 이쯤에서 연령효과를 잠시 젖혀두고 두 개의 요인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일본의 극복, 다른 하나는 시스템.

 

 

2. 바둑은 심리의 기술이자 개인의 승부, 천재가 요청된다

 

바둑은 무엇보다도 심리의 기술이다.

불안의 영속은 바둑에 기본이기 때문이다.

 

초반은 돌이 없어 모호하기에 불안하고, 중반부터 종반까지는 돌이 많아서 불안하다. 돌이 많으면 상대편 돌이 가까이 다가오기에 전쟁을 모형으로 하는 반상에서는 위기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돌이 많아지면 안전거리가 점차 사라진다.



세고에 9단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 소년 조훈현.
(자료사진/월간바둑)


조훈현의 경험을 들어보자(바둑1973.3)

 

세고에 선생님은 바둑의 승패 자체에는 아무 말씀 안하셨어요. ‘바둑은 가만 놔둬도 나보다 나아질 것이라면서, 수 같은 것은 안 가르쳐주시고 다만 바둑을 둘 때의 마음가짐이라든가 심리적인 움직임 같은 것을 그때그때 지적해서 충고를 주시곤 했지요.”

 

매우 당연한 가르침이다. 바둑은 정신의 놀이로 감성과 논리를 동시에 사용한다. 초반 모호한 세상에서나 중반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계산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 감성을 이용한다.

 

5(초반은 주로 감성 이용의 단계)

이 국면에서 흑의 영향력이 좌상과 중앙에 걸쳐서 강하다는 것을 감()으로 인지한다. 그것은 계산되지 않는다. 다음 백의 착수는 A부터 D가 떠오르는데 그 이후의 변화가 바람직하냐? 그것은 모호하고 공배와 같은 주변의 압력, 그 크기와 에너지 장()의 수준에 제한된다. 그것은 감()으로서 인지되고 표현된다. (2012년 제7회 응씨배 8강전. 9단 이창호 : 9단 장쉬)

▼ 이창호-장쉬. 응씨배

 

천재는 그런 감성과 논리를 적절히 잘 배합하는 재능을 갖춘 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알 수 있다. 자신만의 시대를 열려면 기존의 감성에 붙들리지 않아야 할 것을 알 수 있다. 감성이 자유로우려면? , 그리 되려면 먼저 바둑에서 요구되는 재능을 타고 나야만 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세고에가 조훈현을 지도했던 바와 같이 갈고 닦는 것이다.

 

개인이 능력을 타고나지 않으면 바둑에서는 정상에 설 수 없다. 그러니까 능력은 절대의 전제로 없는 것을 만들 수는 없다. 각 분야마다 요청하는 재능은 다르다. 이 시각에서 보면 조훈현 이후 우수한 기사들이 세대교체를 이루어간 것은 우연에 많이 힘입는다고 하겠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시대적 행운을 우연이라 하자.

 

 

3. 90년대까지의 세대교체, 개성을 살려주는 시스템이었다

 

보드게임이든 스포츠든 승부에서 승부를 가리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1) 기록 경기 2) 상대적인 기력 경기. 또 하나의 구별이 있다. 1) 개인이 하는 거 2) 집단이 하는 거.

 

바둑은 어디에 속하나? 상대적인 기력으로 개인이 승부한다. 최근 한국리그 등 단체대항전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두 사람이 마주하는 것이 바둑의 진행이고 승부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강조하는 까닭은 앞서 말했듯이 바둑의 본질은 감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감성은 쉽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개성이 중요하다면? 그러면 개성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주어져야 한다. 기사 공동체는 개성이 중시되는 그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세대교체가 필요할 때 이뤄지고, 그래야 수준이 높아지고 너비가 넓어지며 공동체는 활기를 얻게 된다.

 

유창혁과 이창호가 조훈현과 서봉수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환경은 그 점을 충분히 보장해주었다. 물론 조훈현과 서봉수의 경우에도 개성은 존중되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어떤 것이었나?

 

1) 제한시간이 넉넉하다

2) 도전권제가 주된 승부방식이었다

3) 권위에의 예속이 거의 없었다

 

이는 지금의 시스템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1) 2012년의 지금은, 제한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심지어 10분 바둑도 있을 정도니 말이다. 길어야 1시간이고 2시간도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을 발휘할 초반에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개성이 발휘되지 못하면? 그것이 문제다. 언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바둑계에 널리 알려진 경험은, 한 번 이기면 자신감이 붙는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어쨌든 한 번 싸워서 자신만의 힘으로-즉 자신만의 개성으로-힘껏 싸워서 이겨봐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이 붙는다. 그렇지만 짧은 제한시간으로는 그런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다. 이겨봐야 실수를 적게 해서 이기는 것에 불과하다.

 

2) 이제 도전권제는 수적으로도 적어졌지만, 상금 비중에 있어서도 한국리그와 같은 리그전이나 단체대항전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는 큰 문제다. 개성이 발휘될 여지를 크게 제약한다. 개인은 집단 속에서는 개성을 발휘 못한다. 그건 모든 분야가 그러하지만 바둑과 같은 기예의 경우엔 더욱더 심하다. 도전해서 영웅을 넘어서는 경험이 주어지지 않으면 의식의 획기적인 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3) 권위에의 예속 정도는 과거 조훈현의 시절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바둑계에서 권위가 승부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일본은 지나치게 시스템이 굳어진 거 아닌가 싶은데, 선배와 권위에의 존중이 강하면 문제가 만만치 않다. 바둑이나 예술의 성장과 발전에는 권위란 것이 많은 경우 암초가 된다.



조훈현-이창호 21기 명인전 도전2국.1990년. 
1세대에서부터 3세대에 이르는 국수들이 대거 가세한 보기 드문 복기현장이다.
바둑의 승부세계는 앞세대와 뒷세대가 피아 구분없이 도전하고 응전하는
냉정한 정글의 세계지만, 이렇듯 앞세대는 뒷세대를 길러주고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뒷세대의 영웅들은 어디까지나 앞세대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승부를 바라보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자료사진/월간바둑)
 


4. 오늘의 문제, 정체성의 위기가 세대교체의 위기로

 

그랬다.

90년대와 달리 오늘엔 기사 개인의 재능을 살려주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기풍이 사라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단체대항전과 짧은 제한시간 아래에서 개성은 발휘되기 힘들기에 젊은 기사들의 기풍은 형성되기 힘들다. 그 결과 기사의 정체성에 의혹이 부쩍 늘게 된 것이 오늘이다.

 

이는 기사 개인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바둑계 전체에 여파를 미친다. 그것도 부정적으로 미친다. 왜 그런가. 이 문제를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60년대 김인은 중후한 기풍으로 널리 성적을 올렸다. 이는 반상에서도 힘을 냈을 뿐만 아니라 애기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바둑이란 것이 두터워야하는구나. 그런 인상 새겨주어서 당시 근대화 과정에서의 인간성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바둑이 다가섰던 것이다.

 

6(서로 다른 기풍이 서로 다른 수법을)

1은 백A, B, C를 기대한 수.

2는 흑a 지킬 때 백b, B, c로 넘겠다는 수.

▼ 조남철-김인. 최고위전

19678월호 기계의 해설을 보자. “1(35)은 귀의 약점을 보강하며 우변 백 두점의 공격을 은근히 엿보자는 뜻입니다.” “2는 지략이 풍부한 재미있는 수로...”(1967년 제7기 대통령상패쟁탈 최고위전 4. 8단 조남철 : 6단 김인)

 

알 수 있다. 이 한 수의 교환만으로도 바둑을 대하는 안목의 차이, 기풍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중후는 발빠름에 대한 하나의 대극 현상이 되는 바, 이는 바둑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시각적인 효과를 준다. 즉 팬들로 하여금 바둑의 이미지 하나를 부여잡게 해준다. 대상이 없으면 마음은 생겨나지 않는 법. 대상이 있어야만 사랑도 미움도 할 수 있다.

 

기풍은 바둑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 되며, 그 만큼 반상은 풍부해진다. 애기가들의 안목과 기대도 반영도 넓어진다. 애기가 층이 두터워지는 것이다.

 

7(반상은 개성이 부딪치는 세상)

초점은 백2. 이 바둑을 포함해서 도전기 7국 모두에서 재밌는 것은, 이창호가 백일 때에는 백2를 모두 흑1과 대각선상에 두었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조훈현은 백을 잡았을 때 백2를 대각선상에 놓는 법이 없었다. 서로 엇갈리게 되면 싸움이 되기 쉬운 때문인데, 싸움을 장기로 하는 조훈현과 달리 싸움을 싫어하는 이창호는 서로 엇갈리는 포진을 기피하는 것이다.

▼ 개성의 차이

 

또 하나, 조훈현은 끊임없이 싸움을 도발하고-5 이하 흑13까지, 그리고 흑19, 20, 21까지 역시 백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이창호는 백14나 백18과 같은 수에서 보듯이 가까이 붙지 않는다. 이는 계산바둑의 전형으로, 집과 끝내기에 강한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는 것이다.(1992년 제4기 기성전. 백 이창호 : 흑 기성 조훈현)

 

이창호는 두텁되 느린 듯한 계산의 바둑이며-따라서 신산(神算)으로 불렸다. 조훈현은 변화를 추구하니까 반상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또 바람으로도-자체 뚜렷한 몸이 없이 변하니까-불렸다.

 

그 어느 것이나, 바둑이란 것이 이런 세계, 이런 측면이 강하면...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바둑 시스템은 그런 희망을 저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시간의 힘과 시스템의 힘을 모르고, 승부의 스포츠 측면만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나는 기사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둑계의 쇠퇴를 앞당기는 것이다.

 

기사의 개성이 약해지면 바둑계의 힘이 약해진다.

 

랭킹제 아래에서 단체전을 북돋우는 현실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기 쉽다. 자신을 잃을 때 도전의식은 자라나기 힘들다. 현재의 시스템이 도전자를 북돋우기에는 힘이 약하다.

 

스포츠의 지나친 강조가 기존의 기사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세대교체도 어렵게 하고 있다. 영웅의 도전을 통한 세대교체가 실패하면 바둑 수준의 약화로 이어진다. 바둑세계의 신화를 상실하면 바둑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 가치를 제공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정체성의 위기가 세대교체의 위기로 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대교체의 위기는 정체성의 불안을 한층 가중시킨다.

 

묻는다.

과연 소년들의 재능을 닦아줄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되어 있는가?

 

개성을 살려주는 제도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개성이 사라지는 시대에 세대교체는 쉽지 않다. 새로운 세대가 과연 바둑에 유입될 것인가? 어려운 난제다. 입단 연령이 늦어지고 여류입단 지망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개인의 개성 상실을 이미 소년들은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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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2013-01-25 오후 12:22: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글을 보니 바둑의 스포츠화가 오히려 쇠퇴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수 있네요 한마디로 바둑 스포츠화는 실패라는 것이죠
스포츠와 이후 제도를 많이 개선했지만 그 제도는 거의 대부분 실패했고 그것이 바둑계의 위기를 불어온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제도란 무조건 바꾼다고 능사가 이니죠 옛것도 좋은 것은 살리고 제대로 바꿀때만 성공합니다  
高句麗 |  2013-01-25 오후 12:25: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후퇴하지마 그렇다고 무조건 새로운 수나 새로운 정석 새로운 포석이 좋은거 아니죠 새로운 정석 새로운 포석 새로운 수가 많이 등장하지만 검증하는 과정중에서 살아남은 정석보다는 걸러지고 버려진 정석 포석 즉 실패한 정석 포석이 더 많다는 것이죠
새로운 정책이나 변화는 이렇듯 수없는 검증을 통해 받아들여야 하는데  
高句麗 |  2013-01-25 오후 12:30: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인은 무조건 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무조건 옛것은 폐기하고 새로운 정책을 받아들여야만 발전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나라에서 그렇게 세퇴시켜서 그렇겠지만 이게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정신을 파괴 말살하려는 수법으로 써먹은 것이죠 이는 구시대의 정석은 구시대의 거니까 무조건 폐기하고 무조건 아무 검증없이 신정석만 활용하자고 하여 바둑에서 패하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죠  
高句麗 |  2013-01-25 오후 12:34:5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식으로 무조건 옛것은 옛 정신 문화는 구시대니까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미국식 서구 문화 물질 문화는 21세기 새로운 문화니까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여 지금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고 있읍니다
서구는 한국인이 구시대의 유물로 폐기처리 하려는 동양의 옛 문화에서 동양의 정신문화에서 해결을 찾으려 하는데
 
高句麗 |  2013-01-25 오후 12:38: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기원의 행정도 좋은 옛 제도는 보존하고 새로운 제도는 새로운 정석 포석같이 검증해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무 검증없이 옛제도는 무조건 폐지하고 새로운 제도는 검증없이 받아들이다 보니 오늘날 위기가 온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한국기원 관계자 분들이 저보다 못하다는거 아닙니다
적어도 저보다 일을 잘하니까 지금까지 한국기원이 명맥이나마 유지한거라 봅니다  
高句麗 |  2013-01-25 오후 12:41: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만 전체를 보는 안목이나 새로운 것을 나에게 맞게 받아들이는 신중성 지난일을 검토하여 잘잘 못을 가리는 분석 능력은 저보다 못한거 같읍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보다 능력이 더 낫지만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아마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것을 나에게 맞게 고치는 발상도 한국기원 관계자 분들이 저보다 못할 것입니다 즉 독창성도 저보다 못하다는 것이죠 다른 것은 저보다 더 낫지만  
풍운아1 |  2013-01-25 오후 2:13: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얼핏보면 다 맞는 말씀인것 같은데 한참 생각하면 아닌것 같다.기사의 개성이 강해지는 시스템이 일본인데 바둑실력은 낮아지고 인기도 날로 적어지고 있다.반면 중국은 스포츠로 방향을 잡아 기사들 실력도 높아지고 인기도 높다 바둑지망생이 줄을 잇고있는 실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또 단체전을 복돋운다고 했는데 바둑은 일반 스포츠완 다르다 단체전은 서로 협력하고 마음이 맞아야하나 바둑은 어차피 혼자 한사람을  
풍운아1 |  2013-01-25 오후 2:22: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상대할 뿐이다. 일반 단체전처럼 패스하고 토스하는 시스템이 아니기에 단체전 운운은 아닌것 같다.현위기는 정체성늬 위기가 아니라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8-90년대처럼 바둑교실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니 바둑교실이 줄고 운영 안되고 따라서 바둑인구 유입도 점차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한창 바둑교실에, 연구생에 밀려들 때 들어갔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9단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고 있지만 입단문이 좁아  
풍운아1 |  2013-01-25 오후 2:25: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체가 심해 부모들이 아이들을 바둑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데에 대한 연구가 한국기원에서 이루어져야한다고 본다  
하이디77 한국기원에서 할 일은 아니지요. 바둑계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통해서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교본도 없는데 바둑을 가르치는 정체성이 있겠습니까? 교본부터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입단문이 좁아지는 것과 바둑을 가르치는 것은 함수 관계가 약한 편에 속합니다. 바둑은 집중력 등을 위한 교육의 일환입니다.
高句麗 |  2013-01-26 오전 7:17: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중국과 한국이 다른 것은 중국은 정부가 나서서 보급한다는 것이죠 꼭 스포츠화 때문에 성공한거 아니라 봅니다 중국 정부의 지금 같은 노력이라면 스포츠화 하지 않았더라도 성공했을 것입니다
토너먼트 보다는 도전기 방식으로 하는 것이 더 도전 의식을 불어 일으키고 이기면 사기를 붇돋아 주고 더 효과가 있는거 사실이라 봅니다  
高句麗 |  2013-01-26 오전 7:19:08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일본의 바둑쇠퇴 원인은 일본기사들이 해외에만 나가면 나가 떨어지니까 관심이 적어지고 일본이 장고바둑 하는데 왜 지냐고 하지만 장고바둑해서가 아니라 일본은 중국이나 우리나라 같이 프로기사를 육성하는 바둑도장 시스템이 없읍니다 그래서 한중에게 뒤지는 원이이 될 것입니다  
高句麗 |  2013-01-26 오전 7:22: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나라도 바둑도장이 없을 때는 아마추어끼리 겨뤄서 입단했읍니다 그러다 보니 프로기사와 실력이 많이 차이가 나는 상태에서 입단했으니 지금 프로9단의 경지에 들어가 입단하는 상태와 차이가 많이 나죠
일본은 우리가 예전에 아마추어끼리 겨루다가 입단하는 방식으로 하니까 한국과 중국을 못따라 가는 것이지 장고바둑이나 제도가 문제가 있어서 아니라 봅니다  
高句麗 |  2013-01-26 오전 7:24:1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리고 한국기원은 국제적인 승부에만 온갖 열정을 쏟지 바둑보급에는 승부에 비해 열정이 적은것은 사실입니다 승부만큼 바둑 보급에 열정을 쏟는다면 얼마든지 위기를 타개해 나갈수 있으리라 봅니다
열정과 의지가 있으면 길은 얼마든지 보이는 법이니까요  
풍운아1 |  2013-01-26 오전 9:54: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기원이 국제적인 승부에 열의를 보인는 것은 당연합니다.축구도 국내시합엔 관중이 적지만 국제시합이 있으면 폭발적인 관심을 나타내듯 바둑도 초치훈이 일본에서 당시 최고수준의 일본기사를 물리치고 우승했을때 폭발적인 관심이 있었고 조훈현이 잉창치배에서 우승하고 이창호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했을때 바둑이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이를 바둑보급에 활용해야하는데 그 방법과 전략이 문제죠  
하얀솔 |  2013-01-26 오후 7:09: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 스포츠의 지나친 강조가 기사의 정체성을 약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지난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종목은 단체리그전으로 치루어졌고, 참가한 기사들은 운동복에 운동화차림으로 체육관에서 대국했습니다. 이보다 더 노골적인 스포츠 강조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G참여가 바둑기사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얀솔 |  2013-01-26 오후 7:16: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프로기사들은 AG 대표가 되기를 열망했으며, 이세돌9단은 AG 금메달이 다른 어떤 국제기전 우승보다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둑종목이 향후 AG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사실을 바둑기사 정체성(바둑기사=예술인) 확립의 계기라며 기쁘게 생각하는 바둑인/바둑팬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합니다.  
하얀솔 |  2013-01-26 오후 7:28: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2. 입단연령이 늦어지는 현상은 소년들이 개인의 개성상실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심각한 <입단적체> 현상때문입니다. 현역기사 평균치에 해당하는 실력을 갖추고도 번번히 입단에 실패하다 늦깍이로 프로면장 따는 일이 늘어나다보니 새내기 평균입단 연령은 높아지기만 했습니다.
 
하얀솔 |  2013-01-26 오후 7:36: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여류입단 지망자가 줄고 있는 이유도 소녀들이 개인의 개성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성바둑인구 감소>때문입니다. 1992년 조사당시 인구대비 9.7%였던 여성바둑인구는 2004년 3.3%로 12년사이 1/3으로 줄었습니다. 2008년 조사에서는 5.1%로 상승했습니다만, 2000년 7.3%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하얀솔 |  2013-01-26 오후 7:52: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여류입단 지망자 감소는 <여성들의 전문직 진출>이 과거보다 활발해진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2012년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여성비율은 사상최고인 41.7% 였습니다. 여류기사의 경제적 처우에 중요한 변화가 있지않는한 '바둑잘두는 머리좋은 여학생'을 둔 학부모 입장에선 여류기사 만들기에 망설임이 큰 것이라 생각됩니다.  
高句麗 여성의 사회진줄 보다는 바둑으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과 바둑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라고 하는게 주된 이야가 되죠
강릉P |  2013-01-28 오후 10:17: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골프는 우리나라가 잘치죠..왜 그럴까요..열린계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왜 쇠퇴할까요..닫힌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스포츠,개성때문이란 진단은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강릉P |  2013-01-28 오후 10:21:5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떠한 종족도 무한한 진화를 할수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섣불리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미 바둑의 진화는 끝을 이룬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적으로 거의 진보할 자리가 없기 떄문에 개성도 힘을 잃게 된거죠.
그러니까 만약 진보를 바란다면 바둑이란것은 멸종되야 될것이고 다른형태의
바둑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봅니다..너무 비약한건지 모르겠지만..  
최강한의사 |  2013-01-29 오후 3:46: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런 현실을 극복하고 나타나는 영웅이 필요한 거죠.
이창호 시대에도 과연 누가 그걸 뚫고 나올 것이냐 했고 10여년 있었지만, 결국 기풍이 전혀 다른 이세돌이 나타나서 뚫었지요.
애시당초 그런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사들은 여기서 논할 대상이 되지 못할 겁니다.  
하이디77 냉정한 통찰이십니다. 섬뜩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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