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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노력: 예(藝)와 기(技)는 엇갈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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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노력: 예(藝)와 기(技)는 엇갈리는가
2013-01-15 조회 10586    프린트스크랩
▲ 바둑이란 뭘까? 도일 수업 중 잠시 귀국한 조훈현 소년이 조남철 8단(당시) 과 함께 남산에 올라 나란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조남철 8단은 이때 이미 김인에게 정상의 자리를 물려준 뒤였다. 조훈현 소년은 그가 뒷날 한국 바둑계를 휩쓸 것을 예측하고 있었을까? (자료사진/월간바둑)



1.
놀이로서의 바둑, 삶의 긍정과 에너지

 

바둑이란 무엇일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금에 걸쳐 질문해 온 것이다. 질문이 있으니 답 또한 있었다. 긍정도 부정도 모두 있었는데, 굳이 맞다 틀리다 따진 경우는 없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많은 답변들이 고금의 유명한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깊은 사색 또는 넓은 탐구 끝에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개는 심심할 때 한마디 한 정도이며 또 상식적인 이해를 벗어난 것도 없다. 고금의 말씀이란 것은 대체로 그런 정도이다.

 

이젠 다르다. 옛날과 다른 답이 나오곤 하는데 그건 바둑이 변해서가 아니다. 바둑을 바라보는 우리가 또는 세상이 변해서 그런 것이다. 2008년의 갤럽조사에 따르면, 바둑이 다른 오락에 비해서 좋은 이유로 정서의 함양과 두뇌 개발에 뛰어나다는 것을 애기가 대부분이 꼽고 있는데, 이야말로 50년 전 1960년대만 하더라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는 조남철 선생을 노름두목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인식의 변화는 어디서 오는 걸까. 바둑에만 국한한다면, 놀이에 대한 세상의 이해가 바뀐 점과 바둑의 정체성에 대한 선인들의 노력, 그 두 가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놀이에 대한 이해의 변화를 보자.

 

이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것에 기인하는데, 놀이를 무용(無用)의 용()이라고 보는 혁신적 견해가 지난 50년 널리 지지를 넓혀왔다. 바둑에 적용하면 이렇다. 우린 바둑을 두면서 다른 거 하지 않는다. 그냥 둔다. 시간과 땀을 허비하고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기에 바둑은 비현실적인 지적(知的)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초점이다. 비현실적인 놀이의 가치, 그것이야말로 바둑의 가치인 것이다.

 

만약 바둑이 현실적인 놀이라면 아무도 바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진부하고 즐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인 놀이로서 우리에게 주어지기에 비로소 우린 즐거워하고 놀이에 참여한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둑이 오랫동안 끊이지 않고 전해 내려온 이유이다.

 

삶은 언제나 그 지평이 재해석되고 넓혀져야 하는 것. 만약 우리가 하나의 가치기준에 의해서 삶을 평가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 답이 주어져 있으니까 말이다. 역사에서 우린 그러한 예를 많이도 본다. 이데올로기가 강한 사회가 바로 그것. 나라 전체의 목표를 정해놓으면 우린 그 하나에 예속된다.

 

모든 놀이는 그러한 예속을 부정한다. 모든 놀이에는 자유와 상상력이 주어져 있고 삶과 달리 비현실적인 질서를 일으키는데, 그 속에서는 모순도 역설도 통합되는 경향을 가진다. 예컨대 운과 실력과 재능 등은 놀이에서도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인.

 

그러나 놀이에서는 그런 요인들이 통합되고 긍정된다. 긍정되기에 우린 즐겁고 편안함을 얻는다. 그 결과 억압이나 통제에 의해 숨겨진 삶의 에너지가 풀려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가 살아난다.

  


대국시작을 알리는 징이 울리면 두두두둑 우박이 일시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그런 호시절의 바둑잔치가 우리에게 있었다. (자료사진/월간바둑)


 

2. 바둑이란 무엇인가 - 예와 기가 어우러진 세계

 

바둑은 홀로 하는 것. 둘이 하더라도 결국엔 홀로 앉아서 고뇌한다.

끝없이 시간을 물 쓰듯이 잠긴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초반은 예()의 측면 강하다. 슈코의 바둑을 보라. 우칭위안의 초반을 보라.

아니 여러분의 초반을 보라. 숫자를 생각하는가? 아니다. 감정을 생각하는가?

아니다. 생각 이전에 모호한 감정의 더미 속에 잠긴다. 딱히 꼬집어 뭔가를 끄집어내는 거 없이 기다리면서 잠긴다. 그러하다. 그것이 핵심이다.

 

왜 그런가. 초반은 모호하여 상징적인 내면의 언어로 붙잡지 않고서는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언어는 다가오는 것. 우린 의식하면서 말하지 않는다.

 

 

1(초반은 가슴에서 온다)

반상을 넓게 열어젖히는 고바야시 사토루 9단의 초반. 1 이하 백5는 프로들 바둑에서는 잘 두지 않는 수법. 너무 정직하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바둑의 본성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그래서 여러분도 바둑을 두는 것이다. 짐작컨대 고바야시는 마음 한번 크게 호흡하고 반상을 크게 끌어안고 싶었으리. (1989년 제36NHK배 결승. 9小林 覺 : 9武宮正樹) 

▼ 사토루의 초반.품고 싶었던가

자리에 앉기 전엔 모호한 감정의 더미 속에 우린 들어가 있다. 그로부터 하나의 뚜렷한 감성이 터져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초반. 우린 그런 식으로 초반에 접근한다. 예술가의 창작과 다름이 없다. 바둑을 예()의 세계라고 부르는 소이이다.

 

초반이 그리 되는 이유 하나는, 우린 반상을 우리의 몸짓 언어로 부여잡기 때문이다.

 

2(종반에도 몸짓 없이는 나아가기 힘들다)

19세기 말, 일본의 명인 바둑에서 나온 것이 하변. 1 잇는 것이 큰 실수였다. 이런 실수는 둔 직후 곧 바로 알기 때문에 흑을 잡은 기사는 곧 반상에서 얼굴을 외면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런데 어떻게 실수를 알까? 둔 직후 하나의 그림이 몸을 때리기 때문이다 

▼ 관절이-몸이 바둑의 언어

상변을 보자. 2가 급소다. 2가 오니 흑 모양이 어떤가? 다리를 접고 움츠린 인상 온다. 몸으로 느낀다. 그것이 몸의 언어요, 인간 언어 은유의 바탕이다. 2 이후는 아래 <3도>. 백10까지 흑이 망한다 

 

두점머리 때리거나 맞을 때 때리거나 맞는 체감이 전해진다. 아프지 않던가?

실로 두점머리는 두드려라는 격언은 우리의 몸 언어로 반상을 체감한다는 것을 거울처럼 밝혀준다. 그러니 논리적 답을 얻어야 하는 곳에서도 그 첫 번째 직관은 몸 언어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반 이후 기()의 측면에서도 감정은 개입한다.

 

예와 기가 한껏 힘을 얻었을 때, 동양의 정신사에서는 그것을 두고 인격의 완성과 결부짓곤 했다. 장자(莊子)의 포정(庖丁)편에서 백정의 오랜 세월 숙련된 솜씨는 곧 정신의 완성과 통했다. 삶은 도야(陶冶)를 통해 완성되어야 하는 것. 삶은 실천을 통해 이상의 경지로 올라서야 하는 것. 그것은 동양의 지혜는 물론이고 서양의 철학에서도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3. 바둑이란 무엇인가 - 인식의 변화와 제고; 1960-1980

 

해방 직후 한국의 바둑인구는 약 2-3천 명 수준이었다. 왜 그리 적은가.

본래 바둑은 유한계급이자 지식인들의 향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여건에서 출발하여 70년대 초에는 바둑인구 100만을, 80년대 말에는 500만을 추산하였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한두 가지의 요인이나 한때의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서 다룬 놀이로서의 기능, 예와 기가 어우러진 즐거움과 정서적 함양 등 바둑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유용성이 20세기 현대 사회에 잘 어울리지 않았다면 바둑의 확산과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법.

조남철 선생을 비롯해서 60년대 바둑에 매진하고자 했던 기사들은 대중에게 잡기로 인식된 바둑을 어떻게 유용한 놀이로서의 바둑으로 인식 전환을 가능하게 했을까?

 

1967기계(棋界)10월호 권두언에는, 조남철 선생이 앞으로의 숙원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8.15 해방 후 오늘날까지 20년간에 바둑인구는 시초의 3백배인 백만으로 증가하여 우선 커다란 집단을 형성했읍니다. (중략) 일단 보급에 관한 문제는 자연추이에 맡기기로 하고 (중략) 첫째는 전문기사 중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명실공겸(名實恭謙)한 명인을 길러내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일반 팬들의 바둑관이랄까 또 혹은 바둑의 재인식이랄까, 좌우간 정신적 자세를 새롭게 하자는 일입니다.”

 

 

명인을 길러내는 일과 대중의 인식을 함께 다루고 있었다.

이는 인식의 전환 없이 바둑의 성장은 불가능한 점을 깊이 인식한 것으로, 당시 바둑 확산의 가장 큰 애로는 바둑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사회에 제시하는 일이었다. 답을 제시해도 그 답을 전해줄 통로가 없다면 노력도 쓸모가 없기에 그 답을 전해줄 통로를 찾는 일이었다.

 

먼저 답을 제시하는 주체를 제시했다.

주체는 전문기사. 바둑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 집단. 1964년 프로와 아마를 구별했다. 전문기사 제도를 시작한 것이다. 도락인 바둑에도 전문가가 있다고? 노름에도 전문가가 있다고?

 

그 비양에 대한 바둑의 응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문기사의 태도와 자세, 즉 정체성. 다른 하나는 신문에 바둑을 싣는 것.

신문은 50년대부터 간간이, 60년대 중반부터는 대부분의 신문이 약간이나마 바둑란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예와 기로서의 바둑은 사랑방에서 나와 신문으로 들어섰을 때 널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신문은 무엇보다도 인식 전환의 큰 도구였다. 신문은 그 자체가 긍정적인 평가를 높인다. 신문은 공동체가 정보의 원천으로 인식하는 것. 정보의 원천이라는 것은 권위와 정당성을 내포하는 것. 그러므로 신문에 실린다는 그 자체가 이미 공적(公的)인 것이기에 긍정적인 가치 판단을 부여받는 것이다.
 


월간바둑 잡지는 한국기원이 바둑보급을 위해 발행하는,
단순한 전문지의 영역에 머문 정도가 아니었다.
프로기사는 물론 바둑을 좋아하는 바둑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경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자료사진/월간바둑)
그나저나 사진 속 인물들, 누군지 아시겠어요?
  


 

19678월호 기계를 보면, “한국기단의 앞날은 밝다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신문의 힘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체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희철) “대전의 중도일보에서도 묘수풀이를 실리고 있는데 그것에 응모해오는 사람들이 신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오고 있어서 바둑난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남사) “그건 이런 것이지요. 독자가 신문제작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을 준다는 것, 그냥 배달되는 신문을 읽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좀더 가깝게 의견을 교환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바둑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굉장히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신문에 바둑이 실려지지 않으면 한 구석이 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상두) “세계바둑대회 선수가 동경에서 이기고 돌아와서 고 김성수선생 댁에서 환영회를 하게 됐고, 그 후부터 좀 생각하는 각도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죠.”

 

신문은 바둑과 독자가 교감하는 대화의 자리가 된 것이다.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 더 높은 효과를 지닌 자리가 된 것이다. 신문이라는 공적인 권위자가 바둑을 대중에게 권하는 것이며, 대중은 그것에 대해 신문에의 참여로 응답하는 것이다.

 

신문에 바둑이 실린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전문기사의 정체성을 높여주었다. 우리는 바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라는 그 사실. 사회적 인식이란 소수의 의견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대답인 것이기에, 소수 즉 전문기사에 대한 인식은 신문의 영향만큼이나 변화될 수 있었다.

 

신문에 맞추어 전문 잡지의 창간 또한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65기원(棋苑)의 창간은-뒤에 기계, 바둑으로 이어지는-바둑이라는 전문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널리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본래 활자(活字)란 것은 하늘의 메시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조상들의 남겨진 가르침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다시 말하면 정당성의 기초가 되는 것. 말씀은 남는다. 고대에서 말씀은 구화(口話)로 이어지고 중요한 말씀은 바위에 그릇에 새겨지는 것. 새겨진 글씨는 하늘과 같은 정당성의 권위를 가진다.

 

과연 그런 세계가 있구나! 그것이었다.

신문과 바둑 월간지, 그리고 전문기사의 태동은 그 궤를 함께 했다. 그리고 대중에게 바둑이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렸다. 1960년대 말 신문기전은 7개를 넘었고, 월간지는 꾸준히 증가하여 초기의 약 2배 가까운 부수를 올렸다.

대중의 인식이란 의견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과 다름없다.

의견은 변화하는 것. 인식이 깊어지면 변화한다. 70년대 중반 일본 조치훈의 활약이 한국에 소개될 때, 그 소개는 당연히 신문과 잡지의 몫이었다. 신문과 잡지와 방송에 알려지는 만큼 공적인 권위, 즉 정당성은 부여된다. 알려지는 만큼 바둑의 사회적 가치는 인식의 전환에 비례하고 또 확산되는 것이다.


 


조치훈이 1980년 오다케 9단을 물리치고 명인에 올랐을 때의
감흥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신문과 바둑잡지라는 전령사 덕에 현장의 감동을 최대한  누릴 수 있었다.
(자료사진/일본기원)
 

 

4. 바둑은 딴 세상이었기에 성장했다

 

희랍신화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시대에서 얼마 멀지 않은 시기에 오면 그들의 종교적 권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단지 예술가의 손끝에서 조각이나 미술품으로 남을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왜 신들은 사라졌을까?

 

그 이유는 신들을 너무나 현실에 끌어당겼다는 것에 있었다.

신들에게 너무나 인간적인 속성을 많이 부여해서 신들이 그만 인간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그런 신비한 속성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어느 세계나-예술에서 특히-그 세계가 권위를 갖고 의미를 대중에게 전해줄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는 현실에 물들지 않아야만 한다. 현실에 지나치게 밀착해서는 아니 된다. 현실에 가까우면 아니, 현실이 되어버리면 그 정당성과 권위는 안개처럼 스러져버린다.

 

한국에서 바둑이 60년대 이후 약 50년 넘게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것에는, 바둑의 전문가 집단이-소위 프로기사, 줄이면 프로-주체로서 행동했던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자신만이 바둑의 세계를 깊이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실천했다는, 그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전문가의 당연한 자부심이자 힘이었다.

 

바둑은 딴 세상이었다.

바둑의 예와 기는 문외한이 잠깐 공부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에서 바둑 두는 기사들이 세간과 거리를 둔 승려와 다름없이 전문가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바둑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일생을 바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기의 세계이기에-자기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세계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절제. 그것이야말로 그 어느 세계에서나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60년대 이후 많은 전문기사들이 자신의 절제를 주장했다.

바둑에서 성적을 못 내는 것도 현실이 고달픈 것도 자기 자신의 무절제와 정체성 부족에서 그 첫 번째 원인을 찾았다. 당연했다. 바둑은 예와 기의 세계이기에, 정신과 마음으로 들어가는 동양의 놀이이기에, 마음과 자세에서 현실의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당연했다.

 

바둑 자체가 그런 것 아니던가! 그것이 바둑을 대하는 전문가의 자세였다.

 

물론 그런 다짐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많았다는 것은 그 만큼 실천은 어려우며, 또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기사들도 없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사에게 높은 정신세계를 요구하는 자체가 이미 도와 예의 측면에서 바둑을 보고 싶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둑은 딴 세상이었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한국 바둑의 정체성을 살려주었다. 함부로 해서도 아니 되며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세상. 9단이라는 입신에 도달하면 그 어떤 정신적인 경지에 들어간다는 이상, 그것이 바둑이 주는 이미지였다.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신선사상에 바둑이 자주 등장해왔다는 사실은 바로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대국은 안정되고 비밀스런 공간에서 두어져야 했다.

왜냐. 바둑 자체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유지해야만 비로소 세상의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바둑이 바둑의 정체성-예와 기가 어우러져 정신세계를 고양시키는-을 지켜나갈 때 비로소 세간의 인식도 긍정적이고 호의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90년대 말까지 한국바둑의 힘이었다. (위 사진은 기타니도장의 수업 장면. 어린 조치훈과 그 옆 윤기현도 보인다.)

 

 

5. 바둑이 주체가 아니 되면 정체성이 사라진다 - 오늘의 문제

 

19655월호 기원(棋苑)을 보면 화보에 제21회 춘계입단대회 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프로 아마 구별 없는 시대가 바둑의 초창기였다.

 

2) 혼돈, 그것이 생명이고 동양의 정신사이다, 그 근본은 서양과 다르다. 동양에서 하늘과 우주는 혼돈이다. 혼돈은 불쾌한 일면이 아니다. 생명의 원천이기에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

 

3) 저 혼돈이 주는 활력은 우리의 옆에 있었다. 그러므로 소외를 느끼는 근대의 인간은 누구나 되고 싶은 것이 바로 저 사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가 되고 싶어 했다. 특히 70년대에 그랬다. 왜냐? 자신의 삶이 그러기를 바랐기에 그랬던 것이다.

 

 

저 생명의 혼돈 속에서 전문기사가 나오고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을 주장하여 정당성과 세간의 지지를 얻었다.

 

오늘의 문제 하나는, 바로 저 혼돈에서 어렵게 나온 전문가 집단이 대중에게 주체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사례를 들면, 이제 인터넷과 TV의 시간에 맞추어 10분 바둑을 두는 것이 다반사다. 왜 그리 두는가? 소비자의 구미에 맞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둑TV의 주장이자 이론. 그것에 동조하는 것은 한국기원.

 

바둑리그의 경우, 통일된 복장, 시청자의 취침시간에 맞추어 대국한다는, 그 우화.

바둑은 산 정상에서 아래 마을로 내려온 것이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거실의 화병에 그림으로 내려앉듯이.

 

바둑의 쇠퇴 증상은, 바둑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대중의 구미에 자신의 정체성을 기대게 되었을 때 이미 시작된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바둑이 세계대회를 휩쓸었을 때 바둑은 정신을 잃었다. 승부가 전부이고 대중들의 환호가 곧 바둑의 내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1995년 바둑TV가 개국되자 또 하나의 신문이 탄생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건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한국기원이 바둑TV의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 들어가지만 않았다면.

 

오늘, 바둑의 쇠퇴와 정체성의 흔들림, 그리고 대중의 구미에 맞추어 자신을 재단하는 일, 그것은 함께 맞물린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인기가 높은 강의를 개설하여 강사를 그에 맞추는 것은 강의의 질을 떨어뜨린다. 싸구려 가치 없는 지식을 퍼뜨린다.

 

오늘 바둑이 그러하다.

 

바둑의 정체성, 그것이야말로 인식의 기초요, 바둑의 기초다.

바둑이 먼저가 아니라, 바둑의 정체성이 바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점을 60년대 초에는 한국기원이 실현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한국기원은 그 점을 망각했다.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이 부족하게 여겨서 귀하게 느끼는 것을 전문가 집단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집단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누가 가치를 값어치 매기는가? 전문가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문가인 것이다.

 

바둑TV나 신문사는 바둑이 가치가 있을 때에만 바둑을 제공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바둑에 관심이 없다. 바둑의 제공으로 얻어지는 가치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가치는 바둑이 제공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 가치는 바둑의 정체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한국 바둑 성장과 쇠퇴, 그 모티프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주체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타인에게 정체성의 확인을 기대는 것, 그것이 한국 바둑의 쇠퇴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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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우 |  2013-01-15 오전 10:01: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진 제일 왼쪽분은 모르겠네요
두번째 부터는 서봉수 사범, 유건재 사범, 조남철 선생 같은데....  
초저녁불빛 |  2013-01-15 오전 10:07: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집단은 가치가 없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각골명심해야 할 말이로세~  
와당 |  2013-01-15 오전 10:23:5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의 쇠퇴 증상은, 바둑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대중의 구미에 자신의 정체성을 기대게 되었을 때 이미 시작된 것이다." 좋은 지적이고 정확한 진단 같습니다.  
高句麗 바둑의 스포츠라는 지나친 현실주의가 바둑의 정체성을 잃게 만든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하이디77 바둑이 스포츠가 될 때 반대했던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못했는데, 문용직님이 정확하게 짚어주신 것 같네요.
高句麗 |  2013-01-15 오전 11:22: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느정도 현실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현실에 가까우면 현실이 되어버리면 정당성과 권위는 안개처럼 스러져 버린다
참 공감가는 말입니다 이말을 듣고 보니 바둑의 스포츠화가 정당성과 권위가 사라지게 한게 안닌가 생각이 듭니다
생각하면 바둑이 스포츠화하고 나서 부터 바둑의 도니 예니 하는 관점이 사라지면서 바둑에 관심도 멀리하게 된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인물 |  2013-01-15 오전 11:51: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인구가 줄어든 이유는 컴게임등 놀이 문화가 많아져서이고, 또한 바둑은 처음에 배우기가 어려워 접근성이 용이 하지 안하여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스포츠화네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이지요
 
샌디쿠팩스 동감이 가는 말씀. 다만 문용직 선생이 주장하는거이, 바둑은 컴게임과는 다르다. 바둑의 道 와禮적인 측면을 강조한 말인듯 하네여.
하이디77 바둑의 침체를 어찌 한가지 이유로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크게 작용한 이유들 중에 하나를 말씀하고 계신 거지요. 게임이 놀이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면서 바둑이 힘들어졌다는 시각도 충분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ㅎㅎ
하이디77 |  2013-01-15 오후 2:52: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예와 도의 측면을 상실한 바둑이 침체되었다는 내용보다도, 바둑매체 등에게 한국기원이 끌려다니면서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분석이 더 아픕니다. 이제라도 되돌아가야 하나요?
그럴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현재 바둑계의 핵심이라는 분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장본인들인데... 이 사람들은 전부 직책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물들이 바둑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끌어가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데...  
하이디77 |  2013-01-15 오후 2:55: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수의 표를 얻어 직책을 얻은 분들인데, 소수의 바른 의견이 다수의 어리석은 의견을 이길 수 있을까요? 플라톤의 중우정치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그냥 다들 아시는 것 같은데요. 마땅한 대안이 있어야 할텐데 생각이 짧은 저는 떠오르질 않네요. ㅡㅡ;  
하얀솔 |  2013-01-15 오후 4:14: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올림푸스의 신들이 사라진 이유는 종교적 신비감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국가종교의 지위를 기독교가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 올림푸스 신들이 예술가의 손끝에서 되살아나기까지는 1000년의 세월-르네상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현실과 유리되고, 그 결과 외면당하면 종교던 예술이던 도태됩니다.  
하얀솔 |  2013-01-15 오후 4:20:0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50년대 바둑은 <딴 세상>이었습니다. 일부 유한계급의 도락이었을 뿐이었죠.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중들도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나 놀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바둑은 대중오락의 하나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바둑이 <딴 세상>이 아닌 <우리사는 세상>속에서 대중의 삶의 일부로 파고 들어갔던 과정이 한국바둑 성장사였습니다.  
하얀솔 |  2013-01-15 오후 4:37: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俗人의 접근을 엄격히 금지시킨채 안정되고 <비밀스런 공간>에서 전문가의 바둑을 두고 있는게 오늘날의 일본 도전기 여관바둑입니다. 그런 일본바둑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과 애정은 날로 식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래, 당신들끼리 고상한 예술해라, 우린 관심없다>... 이런 인식의 확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하얀솔 |  2013-01-15 오후 4:58: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이 쇠퇴한 이유는 정체성을 대중의 구미에 맞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로는 스포츠바둑을 외치지만, 실상은 한 발만 걸쳐놓은채 <우리는 원래부터 품격낮은 스포츠가 아니니까,당신들(대중)은 이정도로 만족하라>식의 모호함은 대중의 구미를 제대로 맞추었다 보기 어렵습니다.  
하얀솔 |  2013-01-15 오후 5:10: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바둑... 대중에게 그들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바둑은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바둑의 시장가치란 전문가(공급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대중(바둑팬=소비자)의 요구가 받쳐주어야 시장가치가 결정되고, (타 종목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이디77 나름 설득력있는 말씀이시네요. 저는 줏대없이 휩쓸리고 있지만, 이렇게 다른 시각도 있군요. 인정합니다. ^^*
현묘구현 |  2013-01-15 오후 5:52: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실상 바둑의 정체성, 바둑이 뭔가라는 자리매김이 앞으로 바둑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이라고 봅니다. 바둑이 이렇게 되고 그들만의 리그가 된데는 외부에 의한 끌려다님도 있지만 자승자박적인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월간바둑 20년 이상 보고 있는데 내부의 느낌이 묻어나는 꼭지들의 글을 보면 위기의식이 없어요. 글보다가 하도 화가 나서 어디 글을 남긴적도 있는데  
현묘구현 예를 들어 수십명 지각에 관한 룰문제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룰정비에 관한 지적은 없이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군요.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아 저 사회가 그냥 돌아가고 있구나 외부에서 보는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한채... 이런 생각이 들고 과거의 문제점이 '재단법인' 으로서의 한국기원의 문제점이 보여다면 이제는 정체성을 잃어 뭐가 잘못된지 조차 모르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와당 현묘구현님 의견에 깊이 공감합니다.
와당 |  2013-01-15 오후 5:57:1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하얀솔님~ 한국기원 관계자 맞지요? 국외자는 반면을 넒게 볼수있지요. 반면 관계자는 항상 본능적 방어 관점으로 밖에 안보이는 법이지요. 더 중요한건 그 당사자는 그걸 못느낀다는게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왜 기업에서 비싼 돈들여 외부 컨설팅을 하는지 아십니까? 하얀솔님이 바둑토토나 바둑현안 댓글에서 보여주는 그런 관계자적 안목때문에 그런겁니다.  
와당 |  2013-01-15 오후 5:59: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내재된 방어본능 때문에 공정성이 훼손되고 창조적 파괴같은 신선한 개선이나 개혁은 도저히 엄두도 못내는 것이지요. 하얀솔님같은 시각이 한국기원을 지배하고 있다면 한국바둑의 몰락은 내부적 요인이 분명하고 부흥의 길또한 요원할것으로 보입니다.  
동방의샛별 |  2013-01-15 오후 7:58: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무리 수읽기와 전투가 능해도 원리를 체득할 수 없으면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는 신포석의 구상이 필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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