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밤에 쓰는 19줄
Home > 컬럼 > 문용직
밤에 쓰는 19줄
2004-02-27     프린트스크랩
나의 반상 일기(2월 27일) - 밤에 쓰는 19줄


바둑의 역사는 길게 보면 길고 짧게 보면 짧다.
인생사 100년에 알려진 세상사 3천년. 선사시대마저도 어제 일에 불과하다.

6시에 잠을 잤다. 잠이 오는 걸 어떡하겠나. 프로랜서 직업이란 이런 게 좋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래서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우울증이 아닐까 살펴보아야 한다. 옆에서 주의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인간이란 과연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느 학자는 비관한다. 왜냐? 무엇보다 우울증이 보다 일반화될 것이라고.

10시에 일어났다. 응? 아침이 아니구나. 이거 어떡한다? 정신은 맑고 몸은 가볍다. 피부가 건조한 게 약간 간지럽지만 참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로 생각한다. 긁는 재미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맑은 정신에 맑은 일을 하자! 정말 오랜 만에 게임이론 책을 폈다. 7년도 넘지 않았나 싶다. 고전 중의 고전인 John F. Nash, Jr의 Equilibrium Points in n-Person Games와 The Bargaining Problem을 훑어보면서 19줄 반상이 인간이 발견한 최선의 거리임을 가설로 잡고 증명까지는 뭣하지만 근거를 찾는 약간의 추론을 완성했다.

그렇군. 영화도 있었지. J. Nash의 일생을 소재로 한 영화도 있었지. 바둑이 화면에 잡히는 그 영화 제목이 뭐더라? 그건 잊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화면에 잡히는 바둑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돌이 엉망으로 놓여지지는 않았었다. 백돌이 반상에 많이 깔려 있었는데 흑백을 말도 안 되게 섞어놓지는 않았었다. 누군가 바둑을 약간은 아는 사람이 PD 옆에 있었을 것이다.

그의 간결한 논문을 감상하고 바둑을 생각하는데 2시간이 걸렸구나. 그림 20개 정도 만들고 내용을 요약하는 것에. 3월 5일까지 월간 바둑에 원고를 주기로 했으니까 내 능력이 닿는 적당한 수준의 글을 쓰자. 내 능력으로 수학적 정리(定理)를 시도하는 건 무리. 누군가가 나의 착상을 보고 간결하게 해주면 좋겠지.

K. Arrow라는 학자가 있다. Impossibility Theorem을 발표했는데 듣기로 수학이 약해서 증명에 대학원생의 도움을 받았다던가? Individual Values and Social Choice란 얇은 책을 읽었는데 정말 놀랐다. 집합을 이용해서 정치적 문제를 증명하다니! “민주주의라면 이 정도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라고 누구나 공감하는 그런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그런 민주주의는 없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 대단한 업적이라니! 예를 들면, 독재자는 없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조건을 만족시키면 필연적으로 독재자가 등장한다!

감탄과 진지함 속에는 이런 것도 섞어보자. 그 짧은 정리 하나로 인해 수백 명의 박사가 먹고 산다는 사실을. 수백 명만 되랴. 1류의 학자가 창의적 글을 하나 발표하면 2류의 박사들이 그걸 이해하고 설명하고, 3류의 박사들은 또 그걸 붙잡고 나름대로 이해하느라 애쓰고, 4류의 학자들은 또 …. 뭐, 이런 거다.

여하튼 나 자신에게 한 마디만 더하자. 고전이 최고다. 고전이야말로 기초요, 창조와 발견을 자극하는 끊임없는 샘물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다른 책은 다 쓰잘 데 없다.

바둑도 예외가 아니다.


실전보

실전을 보자.
흑5 백6 흑7.

참 할 말도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많다. 저걸 어떻게 하나….
흑5 하나만 다룰까. 백6까지 다룰까. 흑7까지 다루기에는 지면이 너무 많아진다. 무엇보다 잠이 온다.

2월의 27일의 오전 1시 15분이다. 아! 나도 어느새 시간에 대해서 단선적인 문화적 맥락에 익숙해져 있구나! 이런! 이런! 나 참!

흑5와 백6만 하자.







흑5는 어디에 두어도 한 판이다.

아니다. 사실 설명하기 싫고 또 어렵다. 매우 어렵다. 쉬울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내가 알기로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다. 아까 종이에 그리긴 했었는데, 아쉽게도 지금 내 프로그램으로는 곡선을 그을 수가 없다. 지면이 좁아 발견을 쓸 수 없다고? 음, 그런 문제가 있었지. 누구의 마지막 정리라더라? 또 잊었다. 아! 페르마!

흑5는 흑7과 연관되어 있다. 백6은 좌하귀 백 한 점과 연관되어 있고. 하긴 흑5와 백6이 어디 돌 하나에만 관계되랴. 모든 돌은 반상의 모든 돌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참고도1

참고도1 백2도 당연히 둘 수 있다. 다만 요즘 그렇게 안 둘 뿐이다. 왜냐? 당장 흑3을 두지는 않겠지만 흑3이 남아 있다는 것은 매우 기분 나쁘다. 오청원 선생도 최근의 강좌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실전 백2 날일자가 무난하다고. 난 잘 모르겠다. 다만 영원한 답은 아니라는 것은 나의 실력으로도 장담할 수 있다.














참고도2

협공은 안 되나? 참고도2 백2도 물론 가능하다. 안 될 게 없다. 다만 백6은 성립되지 않는다. 축이 흑에게 좋기 때문이며 적절한 축머리도 없다.



















참고도3

축머리 하니까 하나 생각난다. 참고도3을 보자. 우하귀 흑5를 주목하자. 그리고 백6 백8의 수순도 주의하자.




















참고도4

수순을 바꾸면 참고도4에서 보듯, 백이 큰 손해이다. 30년 쯤 전에 오청원 선생의 포석 강좌에서 본 기억이 난다. 잊지 못할 오청원 선생의 포석 강의. 흑의 포석. 백의 포석. 그 간결한 사고와 가벼운 결단력, 맑은 반상의 길. 잊지 못한다. 1970년대의 월간 바둑에서 가장 읽을 만한 글이었다고 본다. 그 후론 그런 좋은 강좌를 본 기억이 없다.













참고도5

참고도2 백6을 참고도5 백1로 두면 백에게 나쁜가?

음, 어려운 질문이다. 굳이 평가한다면 백이 일방가여서 좀 불만이라 하겠다.

















참고도6

참고도6의 맥점도 백에게는 기분 나쁘게 남아 있다. 사실 참고도5 백11은 참고도6 백2가 부분적으로는 두터운 수법으로 정수라고 하겠다. 다만 여기서는 곤란한데 흑3이 백의 세력을 지우는 절호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익혀두자. 백2 호구로 지키는 수를. 실전에서 두기는 매우 힘들지만, 그렇게 두어도 한 판이 된다. 참고도6도 한 판이다. 흑이 우세를 장담할 수 없다.











실전의 흑7이라….
오늘은 이만 하자. 피곤하다. 1시 36분.

흑7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내일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내일의 일기는 내일 걱정하자. 걱정은 무슨 걱정! 그냥 쓰면 쓰게 되겠지. 이 정도를 걱정이라고 하면 어떻게 사나! 잠이 적당히 쏟아진다. 내일은 점심 약속도 있지 않은가. 자자. 자도록 하자.

기보를 그리고 나면 2시가 약간 넘겠지. 실전보 하나에 참고도 6개라. 약간만 더 참자. 끝내고 자자. 아침이 상쾌하리라.

가까운 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끊기듯이 들려온다. 그친다. 과연 밤이다. 밤다운 밤이다. 소리가 하나 있어서 검고 어둔 적막한 밤이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斯文亂賊 |  2004-02-27 오후 5:5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 영화제목은 A Beautiful Mind; 애로우는 1951년에 그 불가능성 정리를 증명해서 1970년대 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던가요? ^^  
斯文亂賊 |  2004-02-27 오후 5:5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근데 전 콩도르세의 역설이 더 재밌었슴당~  
soss1234 |  2004-02-27 오후 11:5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쉬운듯하며 점점 어려워진다 가방끈이 짧은게 따라갈랴니 힘들당  
soss1234 |  2004-02-27 오후 11:5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가 고민거리를 주는가 에고 모르겼다  
soss1234 |  2004-02-28 오전 12:0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企業革新에 未來生存이 걸렸다 變化에 발맞출 리더쉽.戰略이 重要함  
조천일출 |  2004-02-29 오전 8:3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