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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2는 가벼운 착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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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2는 가벼운 착점이 아니다
2004-02-23     프린트스크랩
나의 반상 일기(2월 23일) - 백2는 가벼운 착점이 아니다


9시 22분.
2월 7일의 아침 9시 22분.

이 국수와 도전자 최철한 6단이 함양 군청 2층의 소회의실에 마련된 대국장에 도착했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이다. 대국을 앞두고 너무 빨리 도착하면 기다림이 주는 긴장감에 서서히 지치고, 촉박하게 다다르면 마음이 아무래도 급해진다.

그러면 어느 정도가 알맞을까? 알려진 답은 없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대국장에는 5분 전 정도가 적당하다.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두 대국자는 약간은 신경이 쓰인다.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 10분의 시간이 다소 불편하다. 그러나 그건 관례적인 인사. 바둑을 아끼는 분들에 대한 프로들의 답례. 다만 대국 시작 후에도 10분을 플래쉬 누르는 소리를 듣는 것은 좀 길지 않을까. 5분이면 적당하지 싶다.

아니다. 익숙해지면 불편하지도 않을 듯하다. 대국 전부터 반상에 몸과 맘이 몰입된 상태에서 무엇이 귀에 거슬릴까.

아니다. 그래도 소리와 빛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승부에 대한 여유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9시 30분. 나는 한국기원의 대리인 자격으로 입회인의 의무를 지고 대국의 시작을 알렸다.
함양(咸陽)에서 국수전 도전 제2국을 개시합니다. 밝은 빛의 기운이 모인다는 함양입니다. 좋은 바둑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국수가 가볍게 나를 향해 목례를 했다. 최6단도.


기보1

서툴렀다. 뭔가 한두 마디 더할 것이 있을 듯도 한데 말이다. 할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기록계 옆에 앉는다. 최6단은 첫수를 우상귀 소목에 두었다. 세력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그의 기풍이 드러난 한 수이다. 착점에 1분 정도 걸렸을까. 이 국수의 백2는 화점. 역시 1분 정도 걸렸을까. 시간 사용 기록표에 1분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흑3에도 1분 미만이 들어갔다.

기보1이 그 진행이다.









기보2

왜 백2 화점을 선택했을까. 물론 이 국수의 맘을 나는 모른다.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약간은 안다.

기보2를 보자. 흑1이 화점이었다면 아마도 이 국수는 대각선상의 백2를 택했을지 모른다. 그 확률은 대략 80%. 과거에 이 국수의 바둑을 대충 조사한 바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 실전의 백2는 왜 대각선상에 놓여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기보3에서 찾을 수 있다. 백1로 흑의 폐부를 찌르는 느낌이 아주 강렬하다.









기보3
























기보4

기보4 백1은 뭔가 부족하다. 좌상귀 백돌이 A나 B에 있다면 백1을 두고 싶다. 그 느낌이, 아니 그 주장이 강하게 전해온다. 이 정도는 느껴야 승부 바둑을 둘 수 있다.


















기보5

기보5 백1은 어떨까. 한 때 유행한 걸침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예리함이 기보3 백1에 미치지 못한다. 상대의 턱 밑을 파고드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기보5는 기보3보다 반상의 중앙을 훨씬 폭넓게 펼쳐간다는 기분을 준다. 어느 것이 더 좋으냐 나쁘냐 하는 절대 기준은 없다. 그런 판단은 현재의 바둑 수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최6단은 가벼운 손맵시로 기보1 흑3을 두었다. 흑 차례가 결정된 것은 2주 전. 이 정도까지는 준비되었을 듯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다르다. 흑은 먼저 두기에 결정권이 백보다 강하다. 이제 백은 생각해야 한다. 남은 귀를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기보3 백1 또는 기보5 백1처럼 두어야 할 것인가.

백4를 우하귀에 걸치는 바둑은,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대국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다. 어느 누구도 한 마디 말은 없지만, 바둑TV와 바둑채널, 동아일보사와 한국기원 편집부, 사이버 오로의 카메라는 좋은 구도를 잡느라 가벼운 자리 다툼까지 하고 있다. 전문 사진가에게는 그들만의 안목으로 잡히는 반상의 구도가 있는 모양이다. 당연하다. 당연히 그러리라. 내가 모를 뿐이다.

이 국수가 장고를 꽤 할 듯도 하다. 사실, 이제부터는 알려지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다름이 없다. 대국 전에 준비해둔 마음 외에도 또 다른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마음은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경계, 그것을 우리는 마음이라 부른다. 반상의 논리와 함께 마음의 평정도 바라보아야 한다. 두 대국자는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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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개vxn~ |  2004-02-23 오후 6:0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시시각각 변하는 경계, 그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캬~~술을 끊으셨다더니...글로써 사람을 취하게 하시는구먼~~  
soss1234 |  2004-02-23 오후 11:0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동과부동이 둘이아니다 안과바깥이 둘이아니다 정동일여 다즉일 ^^*  
고운가락 |  2004-02-26 오후 7:0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세상에나....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렇게 자세히 표현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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