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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구나.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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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구나. 목이 마르다.
2004-02-19     프린트스크랩
나의 반상 일기 - 2월 19일

어제는 여기 저기 쏘다녔다.
우울증을 다루기 위해 병원에 다녀왔으며, 지난 가을 치질 수술의 보험금 청구도 했다. 교보에서 책도 사고, 인파에 묻혀 마른 기침도 해댔다. 성형외과 친구와 유쾌한 대화도 나누었다. 그 친구 왈, 장사나 할까 봐. 하하 장사? 누구 맘대로? 아, 뭐 어때서? 어떻기는 뭐가 어때. 네가 뭘 알아야 하지. 야, 이거 요즘 적자야. 말도 마. 그래? 왜? 하긴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안다. 방금 전 상담 온 처녀에게, 인상을 볼 때 수술해서 특별히 더 나아지지 않을 듯하다고, 이대로가 좋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그 참, 안 망하고 용케 버티는 재주는 있구나. 그래라. 오로에서 나중에 바둑이나 한 판 두자. 전화해라.

저녁도 오랜 만의 자리였다. 정치학자 몇몇을 만나 이것저것 즐거웠다. 밥도 맛있었고, 현실도 좀 보았다. 그래, 세상을 잘 모르고 있었구나. 정치학을 그만 둔 지 6년이 넘는다. 그 사이에 말빚을 갚느라고 딱 한 번 정치과정론을 강의했지만 말이다. 책 본 지도 오래고 사고에 녹 쓴 지도 오래다. 후배에게 말했다. 논문이나 좀 보내주라. 눈 좀 넓혀보자. 약간 답답하구나.

바쁜 낮에 즐거운 저녁이었다.

돌아오는 길의 버스 안. 자리에 앉는 순간. 아차! 돌아다니느라 잊었구나.

국수전 도전 3국이 있었는데! 18수밖에 못 봤는데 그 다음은 어찌 되었을까. 재미있던데….
인천대에서 바둑 학술대회가 열리던데! 다니오카 이치로 교수의 “바둑판은 왜 19줄인가?: 게임론에서 본 그 뿌리에 관한 가설.” 그거 흥미 있던데….

그러나 곧 의문이 일어났다. 응? 그런 제목이 성립될 수 있나? 일본어 논문도 그 제목인가? 그건 뭔가 이상한데….

제목으로 볼 때, 바둑판이 19줄이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듯한데. 그런 가설은 거의 불가능한 주문인 듯하다. 예전에 약간 밝혔듯이, 바둑판이 19줄로 그쳐야 하는 가설의 제기는 가능하다. 19줄이어야 하는 이유는 찾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두 개의 근거가 있다. 하나는 고대 중국의 포석이 보여주는 일관된 패턴. 다른 하나는 세간협공이 17세기에 와서야 발견되었다는 점.

불가능한 것을 찾는다? 그만 생각하자. 일단 논문을 봐야지. 내 생각은 잠깐의 추론이니 틀릴 가능성이 높다. 아니다! 그렇구나! “그 뿌리에 대한 가설”이구나! 그건 가능하겠다. 음, 역시 읽어도 보기 전에 단정하면 안 되지. 내가 잘못 이해했구나.

사실 책의 제목이나 책의 편집만 보아도 수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를 아는 것은, 어떤 글이 바람직한 글인가를 알면 알 수 있는 법.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는, 안다는 것의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면 약간은 알 수 있는 법.

칼럼을 몇 년간 쓰면서, 버릇이 하나 생겼다. 그건 주제를 평상시에 잡는 일이다. 꽤 성가시다. 뭔가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만만찮다. 다행히 요즘은 약간 넉넉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언젠가 왜 이런 칼럼이 나를 애먹이는가 하고 자문자답한 것을 주제로 삼았을 때가 있을 정도로 다룰 주제가 잘 안 떠올랐다. 그래서 요즘은 다르다. 끊기는 게 두려워서 미리 주제를 이것저것 잡아두는 편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둔 것의 일부를 볼까. 물론 답도 대충 찾았고 쓰기만 하면 된다.

1. 바둑판은 19줄이나 바둑은 19줄이 아니다. 반상은 1선으로 막혀있지 않다.
1. 순장바둑이 사라진 이유.
1. 돌이 먼저냐 여백이 먼저냐.
1. 오늘의 바둑책과 바둑의 괴리.

솔직히 시간 소비가 꽤 된다. 나에게 가치가 있는 일인가? 누군가가 충고했다. 지금 이 글도 쓰지 말라고. 머릿속 생각의 공간을 많이 잡아먹으니 기회비용이 적지 않다고.

공부 안한 탓이거니 한다. 그래서 후회되는 일이 적잖다. 수학 공부 안한 것과 한학을 안아보지 못한 것이 아쉬우며, 술을 많이 마셨던 것도 그렇다. 과다한 술은 돈과 시간, 몸의 낭비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정신을 황폐화시킨다. 아! 그 놈의 술!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그 동안 준비했던 설문조사 자료를 data-base 해 두어야지. 나의 이론이 증명되는지 통계처리를 해보아야지. 빨리 책(발견-2)을 끝내야겠다. 이거 정말 만만찮은 생각의 기회비용이 들어간다. 다른 것을 못하겠다.


그렇군. 국수전 3국을 잠깐 보자.

프로에게 어렵게 오는 건 <기보1>의 백3. 밀어올리는 그 자리가 좁지만 반상의 자리다. 참고로 흑2는 A보다 좋다. 흑A는 백B 또는 백C의 뒷맛이 남는다.


기보1

백의 주문은 <기보2>인데 <기보3>은 흑2가 백에게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모양도 무너지고 중앙도 흑이 장악한다. 물론 <기보4> 백1은 중앙 흑에게 압박감을 주지 않기에 흑2를 당한다. 백도 못 둘 건 아니지만, 어딘가 힘이 떨어진다. 심리적으로도 허술한 느낌을 준다. 대국자도 그렇지 않을까. 기백이 부족하면 전국을 이끌어가는 힘이 딸리는 법.













기보2



















기보3



















기보4



















기보5

아마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기보5> 실전의 진행인 흑2의 삭감이다. <기보6> 백2를 허용하면 백진의 폭이 넓고도 깊어진다. 물론 우변 흑의 3연성도 백2 때문에 엷어진다. 둘 수야 있겠지만, 실전인 <기보5>가 흑에겐 좋다.
















기보6

프로에게 어려운 것, 아마에게 필요한 것, 그 모두를 보여드리고 싶다. 가능할까? 참고로 <기보5> 흑2를 자연스럽게 두게 된 건 1930년대의 신포석 시대의 중앙 혁명 이후이다. 고마운 그 때.

8시구나. 오늘은 너무 일찍 잠이 깼다. 목이 마르다. 4시간밖에 못잤으니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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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s1234 |  2004-02-20 오전 12:3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신포석.소목.기백.유연 집요한노력.방하착.무심.구체적체험.사랑은 곧이해  
등용문9 |  2004-02-20 오전 7:5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사범님 글을 자주 보는데 느낌은 바둑계의 풍운아 같습니다 항상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것을 찾아 노력하고 연구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등용문9 |  2004-02-20 오전 7:5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 일과 시작하기전에 오로계시판은 아침에 커피한잔을 마시듯 꼭 들러야 하루가 편안하더라구요  
고운가락 |  2004-02-20 오후 8:4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술로 보낸 한세월.....바둑으로 보낸 두세월.....체험적 글이 아름답게 보이는건 내 모자람도 있을것입니다...허나 나에겐 왜 바둑이 어려워 보일까? ...해설도 이해가 안되니~  
오분굳 |  2004-02-21 오후 2:4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 그 놈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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