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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삭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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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삭감(2)
2018-11-08     프린트스크랩

2. 반상의 변화에 맞추어 삭감 수법이 변한다

삭감의 역사는 포석의 역사와 밀접하다.

당연하다. 삭감은 포석에서 쓰임새가 많은 수법 아닌가. 그러니 삭감의 맛을 알고 싶다면 포석의 이해가 중요하다. 좁게 보면 삭감은 상대 집을 좁히는 수법이나 넓게 보면 삭감은 반상을 넓히는 수단이다.

간단히 말해 삭감의 수법은 신포석 이전과 이후로 크게 대별된다. 신포석 이후의 삭감은 특히 정방형 큰 모양의 이해와 밀접하다.

따라서 포석 따라 그에 맞는 삭감 수법이 있게 된다. 신포석 이전엔 마늘모가 주종을 이뤘으며 한칸이 가끔 두어졌다. 신포석 이후엔 한칸과 일자(日字)가 마늘모보다 애용되었다. 물론 마늘모는 큰 모양 삭감에도 좋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외목에 상대가 소목 걸치면 날일자 누르는 수법은 초기에 널리 쓰였다. 1582년 혼뇨지의 대국에서 나타난 이후 1670년 최초의 천원바둑에서도, 1820년 죠와의 바둑에서도 나타났다. 수법의 연원이 길고 또 오랫동안 사랑받았음을 알 수 있다.

▼ (12도) 최초의 천원 바둑 1670년 백 道策 흑 (2世) 安井算哲


우하 백26~흑31을 보자. 우린 이제 백이 좋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당시엔 도샤쿠를 제외하곤 아무도 백이 유리한 갈림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12도 누르는 수법은 반상에서 사라져갔다. 이유가 있다. 실전에서 자꾸 실험해보니, 눌러가는 쪽이 승률이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왔다. 마늘모.

19세기 중엽 슈사쿠의 마늘모로 알려진 수법이 18세기 초엔 이미 쓰여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에게 12도 백26을 당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늘모를 두니 외목의 누르는 수법은 아예 봉쇄되고 말았던 것이다.
13도를 보자. 흑7 백8 모두 어떤 수인가? 두 수 모두 상대에게 눌리지 않으려고 미리 방어하는 수법이다. 흑7을 안 두면 백7, 백8을 안 두면 흑8. 그렇게 눌린다.

▼ (13도) 1766년 백 本因坊 察元 흑 (6世) 井上因碩

14도는 1852년의 바둑. 모임에서 연기(連棋)로 둔 것이다. 초반 겨우 10여 수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구도와 수순이 대단히 아름답다. 백4 이하는 숫자로 나타냈다. 흑3을 4에 두면 당장 백3으로 눌려서 좋지 않다.

▼ (14도) 1852년 연기 백 8단 秀和 5단 鶴岡 흑 7단 秀策 7단 伊藤

마늘모 수법, 그것이 화점에 처음 나타난 것은 1687년. 흥미로운 것은, 화점의 마늘모는 아마추어가 처음 두었다는 점이다. 소목에서의 마늘모는 더 일찍 등장했다.

▼ (15도) 1687년 백 安井算知 흑 牧野成貞

15도를 보면 우상귀 백5 침입이 아주 빠르다. 지난 해 말 오로 김수광 기자가 알파고 바둑을 분석하면서 알파고끼리의 대국에서 나왔다고 소개한 것이 있었다. 아주 이른 시기에 3三 침입했다고. 여하튼 신선하다.

하나 더 볼까. 일본 최초의 여자기사가 둔 화점에서의 마늘모다. 15도와는 근 백 년 차이가 난다. 당시엔 4대 가문에 속하는 기사라도 접바둑은 있었다. 초단과 명인의 차이는 3점, 즉 두 점 치수였다.

▼ (16도) 1775년 백 安岡周平 흑 橫關伊保女


한 칸은 삭감의 좋은 수법. 하지만 삭감책으로서의 한칸을 18세기에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19세기 초에는 간간이 나왔고 19세기 중엽이 되면 수준 높게 사용되고 있다.

먼저 17도. 우변 백12와 흑13 교환. 저 교환 자체를 이득으로 본다. 삭감으로서도 매우 가볍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17도) 1861년 백 本因坊 秀和 흑 (13世) 井上因碩

가벼운 삭감. 역사적으로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마늘모 삭감도 가볍게 활용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18도는 17도 이후의 실전. 흑14 이후를 특히 눈여겨보시라. 대단히 경묘하다고 하겠다.

▼ (18도) 1861년 백 本因坊 秀和 흑 (13世) 井上因碩



14도와 17도를 보면 포석의 수준이 정점이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세기 후반 우리가 책에서 배웠던 포석 감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수법은 한편으로는 기사 개인의 취향에 달린 것이기도 하다. 물론 기사가 시대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뛰어난 몇 몇 기사들은 시대를 넘나드는 행마를 선보일 때가 없지 않다. 죠와나 도샤쿠는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한칸의 경쾌함도 가끔 두었다. 상대가 약할 때나 연회를 수반한 모임에서 여흥의 승부를 할 때 두곤 했다. 밀어붙이는 것이다.

한칸 삭감은 언제부터 자유롭고도 적절하게 쓰였을까?

한칸은 마늘모에 비해서 행마의 간격이 넓다.
넓으니 만큼 보다 활달한 삭감에 어울린다 할 수 있다.

바로 그것에 주의하면 이렇다. 작은 모양의 삭감에는 마늘모가 적절하게 쓰인다. 물론 큰 모양에서도 마늘모 삭감은 쓰인다.

다시 대비해서 보도록 하자.
먼저 구(舊)포석에서의 삭감을 한둘. 1930년대 신포석이 등장한 이후, 사람들은 그 이전의 포석을 구포석이라 불렀다.

▼ (19도) 1783년 백 河野元虎 흑 安井仙知

19도에서 볼 것은 흑11 마늘모. 그리고 백26.
백11은 눌리는 것을 피한 것. 두지 않으면 백이 11에 두어 흑을 우변에 치우치게 한다.

주의를 기울일 것은 백26이 두어진 시기. 흑이 집 모양을 거의 다 완성했을 때 삭감을 기했다. 백26을 두지 않으면 흑이 29나 30에 뛰어 집을 완성할 것이다.

흑을 잡은 야스이 센치는 뒷날 기타니가 세력을 연구할 때 영감을 주었던 기사다. 곧 다이센치(大仙知)로 불리는 기사로, 아들도 세력을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포석에서의 삭감을 보자.
신포석 이후에 한 칸 삭감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은 반상을 짜나가는 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포석의 시대엔 상대의 구도를 무너뜨리는 수법을 중시했다. 큰 모양 바둑에서는 상대의 큰 구도를 깨뜨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신포석의 기념비적 바둑으로 2002년 오청원이 회고를 겸해 꼽은 바둑(20도) 하나 보자. 상대의 구도를 깨뜨리는 노력을 실감할 수 있는 진행이다.

▼ (20도) 1933년 너무나 상징적인 백 5단 吳淸源 흑 4단 小衫 丁

백6~백12까지 주의하자. 백은 왜 저 자리를 두는가?
백6은 흑진의 중심점. 백8, 백10, 백12는 흑5 천원점과 변의 흑이 연결되는 것을 방지하자는 의도. 집의 중요성은 뒤로 물러나고 발전성을 중심으로 평균점과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 (21도) 1933년『最近の新布石(최근의 신포석)』

21도는 기타니와 오청원이 함께 펴낸『최근의 신포석』책에서 두 기사가 신포석과 구포석을 대비한 것이다. 구포석인 흑은 집과 견실, 신포석의 관념으로 둔 백은 세력과 발전성이 포석의 초점이다.

신포석의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20세기 후반의 바둑 보겠다.

▼ (22도) 1969년 흑 5단 武宮正樹 백 9단 橋本昌二 (1)

다케미야 5단 때의 바둑이다. 큰 모양 바둑이다.
백1 실착. 흑2 흑4가 아주 좋은 급소. 흑 집이 정방형을 향해서 크게 부풀어 올랐다. 이래서는 백이 실패.

▼ (23도) 1969년 흑 5단 武宮正樹 백 9단 橋本昌二 (2)

23도 백1 삭감이 첫 눈의 급소다. 이리 두어야 했다. 흑▲에 대한 모자의 자리로 급소이며, 또 흑▲와 흑●가 연결되는 자리이다. 소위 꼭지점의 급소다. 정방형과 꼭지점에 대해서는 뒤에 설명하겠다.

여기서 초점은, 우주류 큰 모양의 운용에서는 한 칸이 아주 적절한 수법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렇다. 상대 급소가 나의 급소이니, 당연히 한 칸은 상대 큰 모양을 무너뜨리는 좋은 삭감책이다.

날일자는 1933년 신포석의 시대부터 많이 연구되었던 수법이다.
24도는 1933년 최초의 3연성 포석. 대표적인 예라 할 만하다.

▼ (24도) 1933년 중앙과 세력 백 木谷 實 흑 長谷川 章

백6이 멋진 수법. 흑7로 받지 않는다면 바로 백7에 두어 우변 흑을 납작하게 만들 것이다. 앞서 보았던 일본 바둑 초기부터의 수법이 백6. 하지만 이제 세력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수법으로 재탄생했다.

1976년 중일슈퍼대항전에서의 네웨이핑 바둑을 보자. 백은 이시다 당시 명인.

▼ (25도) 1976년 흑 聶衛平 백 石田芳夫 (1)


▼ (26도) 1976년 흑 聶衛平 백 石田芳夫 (2)

초점은 25도의 우변 날일자다. 상변을 크게 일으키는 수법.

26도를 보자. 우변 흑의 수법이 어디서 본 듯하지 않으신지? 기억하실 것이다. 일본 중세에서 많이 쓰였던 눌러가는 수법. 상대는 납작해진다. 흑돌(▲)은 외목, 백돌(△)은 소목으로 생각하면, 25도 흑5와 26도 흑7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수법이 아님을 알겠다. 그래도 창의적인 착상.

1930년대 신포석 이후엔 한칸과 날일자, 이 두 수법이 활발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데, 신포석의 착상에 아주 걸맞다고 하겠다.
 
마늘모에 비해서 돌이 행마법으로 봤을 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넓은 삭감은 21세기 우리에게도 아직 쉽지는 않다. 신포석 이후 이미 백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는데도 말이다. ‘삭감!’ 하면 하나의 전형(典型)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 있기 때문인가 싶다. 적어도 필자에겐 그렇다. ‘어느 정도 완성된 변의 집’을 깎아내는 수법. 그 정도다.

아마도 우리가 책에서 변에서의 삭감만을 보게 된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책은 대개 변의 삭감만을 주제로 삼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신포석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삭감이 변의 한계를 넘어서서 중앙으로 크게 비약했다. 초반 요처를 점거해가는 와중에 상대의 큰 모양 요처를 무너뜨리는 것을 중시했다. 요즘 알파고의 바둑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아래 27도 파천황의 바둑을 보자. 당시는 1930년대. 신포석과 구포석이 막 각축을 벌이려고 하던 참이었다. 우상귀 흑1 3三을 깎아가는 백6이 삭감의 수법이다. 흑1과 흑5 연관성을 미연에 잘라버리겠다는 뜻이다. 변을 삭감하지 않았다 뿐이지, 상대 돌의 연관성을 꺾어버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삭감의 의도와 다를 바 없다.

▼ (27도) 1933년 파천황의 대국 백 名人 本因坊 秀哉 흑 5단 吳淸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슈사이 명인은 대단한 바둑이었다.

▼ (28도) 1930년 슈사이 명인의 3점 바둑

슈사이 명인이 오청원 3단을 3점 접고 둔 바둑을 보면, 참으로 뛰어난 기사였음을 알 수 있다. 1930년에 두어진 이 바둑. 신포석의 감각 수준이다. 반상의 구도를 참으로 시원하게 자른다. 우상 백21은 큰 삭감. 우상, 우변, 하변 흑진을 하늘 높은 곳에서 제한하고 있다. 백19도 훌륭한 태도. 좌변을 넓힐 뿐만 아니라 하변 흑의 발전성을 제어하고 있다.

적당한 수준에서 정돈하고 넘어가자.

구포석의 삭감: 부분적으로 완성된, 네모 형성 직전의 집을 제한하는 수법
신포석의 삭감: 전국적(全局的)인 요처를 주지 않으려는 수법

구포석에서는 집 모양을 깨뜨리는 것.
신포석에서는 반상의 틀을 깨뜨리는 것.

요약하면, 삭감의 수법 결정은 포석의 형식에 달린 것이다.

오늘은 이만 하고 다음 글의 준비를 약간 하겠다.

상대의 집 모양을 줄이고 제한하는 데 쓰는 것이 삭감. 어떤 것이 있는가? 마늘모, 날일자, 눈목자, 한 칸, … 그런 것이 있다. 그런데 수법은 다양해도 포석의 형식에 따라 선택이 결정된다면, 포석의 형식을 지배하는 원칙이랄까, 이치랄까, 그런 것을 먼저 알면 삭감은 자연스레 나오지 않나?

그렇겠다. 이 글은, 포석과 삭감의 이치를 다음 두 개의 기준에서 이해하면 좋다고 본다.

정방형(正方形).
꼭지점.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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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정신 |  2018-11-12 오후 9:54: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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