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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위로 흐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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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 위로 흐르는 시간
2016-07-08     프린트스크랩
▲ 필자는 간혹 이 산사를 찾는다.


18세기 조선의 여항에는 최고로 인기가 있었던 노래가 있었다. 한양 운종가로부터 저 남쪽 강진의 옥거리까지 밤이면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와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했다.

규중에 초생달 뜨니

어린 계집애들 몰려 나와

하늘 보고 별을 헤니

별 입곱 나 일곱.

이 여리고 맑은 노래는 현대의 그 어떤 노래보다 찰지고 알싸하다. 우리의 귀에 익은 어떤 유명인의 시는 바로 이 노래를 모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18세기 위항의 서정성이 결코 오늘날에 뒤지지 않는다. 당시의 위항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있었으니 문학사는 이들을 '左湖시단' ' 안산 14인' ' 낙하시단' 등으로 이름 지었다.

신광수 김도수 홍석모 이학규 이용휘 등 대단한 시인들이 있었고, 홍세태 이규경 조희룡은 김성기 김종귀 최북 등 여항의 기인 협객들의 행적을 기록하며 당대의 문화적 층위를 두텁게 한다.

당대의 문학사에 기록된 이들 태반이 바둑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기에 반갑다. 바둑은 당대에도 유희사를 떠나 특별한 무엇으로 대접을 받았다.

여항 문화사의 가장 빛나는 자리에 있었다 할 추사 김정희는 바둑을 이렇게 노래한다.

한판 바둑에 여름이 가고

성근 바위로 비구름 닥쳤구나.

늙은 소나무 바람과 햇빛 받을 때

그늘 아래 보루 깔고

사반 바둑판 내어 놓고

바둑알 솥처럼 대치하니.

아서 강철도 녹이네.

스스로 바둑을 잘 두지 못한다던 추사가 바둑을 신선의 류로 이해했던 것도 재미있다. 추사가 바둑을 잘 모르면서도 바둑알과 바둑판 등을 시제 삼아 여러 편의 시를 짓고 있는 것을 보면 당대 바둑이 지식인들의 화두의 하나였음이 인정 된다.

추사는 중국 사행길에서 당대 중국의 대학자였던 옹방강의 인정을 받는다. 박제가 홍양호 서유중 등 내노라하는 조선의 문인들은 중국의 학자들과 소통을 하려 무진 애를 쓴다. 옹방강, 기윤(紀胤) 등이 그들이다.

당대 조중의 문인들 사이에는 신리기미격률성색(神理氣味格律聲色)이 관심사다. 신리기미는 글의 알맹이고 격률성색은 그것을 담을 그릇이라는 것이다. 당시 중국을 장악한 청은 이민족이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결코 당송에 뒤지지 않았다. 당송의 문화를 이론적으로 분석화하고 체계화한 고증학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것이기에 충분했다.

아시아의 문화는 북경의 留璃窓으로 모아져 유리창 밖으로 퍼져 나갔다. 조선의 문인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유리창을 가고 싶어 했다. 그들은 사신단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자청하여 사신단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청의 엘리트들도 조선의 문인들과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섭(1698-1765) 같은 사람도 있다.

흐르는 눈물 언제 그치나

청명절 바람은 찬데

요양땅 죽어 버려진 부모님

언제나 백골을 모셔 오려나.

정섭은 청의 관원이자 시문으로 당당한 문인이다. 그러나 관원의 신분으로 부모의 해골을 모셔 오지 못하는 한탄을 하고 있다. 정섭은 변방의 관원 생활을 한가롭게 바둑으로 소일 한다. 그리고 세상 중심을 한없이 동경하기도 한다. 조선 문인들의 그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18세기는 동양사 전반에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조가 생겨 나던 때이다.

위항은 동양사의 구질 구질한 뒷골목이 아니라 동양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튼실한 묘토였다.

-이서구 김창업 정내교 남유용 조희룡 홍세태 정박 이장찬 이옥 신익 조수삼 이영우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이경선 김도수 박세당 이학규 성대중 체제공 김정희 신광수 이가환 이익 서유중 홍길주...

오늘의  바둑글은 이들의 찬이다. 모두 까마득하고 아스라한 사람들... 바둑이 있기에 잠깐 왔다 가는 삶이 행복했던 사람들에게 드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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