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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의 풀코스데이트
글쓴이 hrytufd      조회 759   평점 800    수정일 2019-05-21 오후 11:09:00

부산역을 걸어나오면서 그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것을 보았다. 그보다 한참 연상인 그녀. 페미니스트에다 비혼주의자라고 선언하면서도 뭔가 뉴앙스를 남기고 싶어하는 제스처를 취하던 그녀. 그 뉴앙스때문에 퇴근후 저녁을 같이 하게되었는데 그녀의 뉴앙스는 과다섭취한 음식과 술로 지워져 버렸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떠나던 그녀의 퍼진 몸매를 보며 괜히 어울렸다는 후회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40이 넘은지 제법 되는데도 항상 39세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부산에서 출장온 "한라 메디칼"의 김부장이다. 의료기기 수입대행을 하는 회사의 대리직을 맡고 있는 그는 일종의 고객회사의 사원인 그녀를 접대하는 책무를 띄게되었다. 그녀는 서울을 떠나면서, 부산에 오면 풀코스로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풀코스라? 뭔가 푸짐한 기대가 되게 만드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여자가 제공하는 풀코스이니... 그래서 한달여가 지난 이날, 토요일 하루를 비우고 내려 온것이다. 


"경훈씨~~" 그녀가 치약거품처럼 하얀 이를 보이며, 야단스레 손을 흔들어 그를 불렀다. 그녀의 짙은 화장은 모종의 퇴폐적인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바가 있었다. 택시를 잡으려 역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자, 그녀는 어떤 풀코스를 준비해 놓았을까? 약간 설레기도 했다. 


"어디 가요?" 그가 물었다. "뭐 할래?" 그녀가 대답했다. "글쎄요" 그가 망설이며 대답했다. 그의 눈길은 미세먼지로 부연 하늘을 향했다. "돼지 국밥좋아해?" 그녀가 물었다. 풀코스의 시작이 매우 서민적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래, 놀아도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하는 생각이 들어, "네" 하고 대답했다. 


그들은 지하도를 건너 역전앞의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들은 돼지국밥 뚝배기를 하나씩 끼고 훌쩍거렸다. 그가 사는 홍은동의 돼지국밥집의 국밥과 같은 맛이었다. 


"부산에 왔으니 바다를 봐야지"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그녀가 즐겁게 재잘거렸다. 그는 가슴이 확 트이는 걸 느꼈다. 택시는 광안리로 달렸다. 뒷좌석에서 그는 그녀의 손을 슬쩍 잡아보았다. "아이~" 그녀가 손을 빼내면서, "뭐 할래?"라고 물었다. 그녀의 눈길은 빠르게 지나치는 숱한 간판을 훑는것 같았다. 실망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대답을 해야할 의무감에서 "글쎄요, 김부장님이 원하시는 걸하죠" 딴은 외교적으로 응답을 했다. 


광안리 바닷가의 사장으로 갔다. 오후의 햇살은 따가왔지만 파도소리와 밟히는 모래의 감촉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 여자는 나에게서 뭘 원하는 걸까? 그녀의 초대에 응한 후 지금까지 마음속에 반복해서 울리는 질문이었다. 광안리 바닷가의 사장을 거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바닷가와 평행으로 달리는 아스팔트길에 많은 차들이 질주하고 그 길에 면한 많은 도시적인 건물들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걸으면서, 부산의 의료기 수입상들의 현황..같은, 직업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서울의 식당에서 그녀가 한 말과 대동소이했다. 부산의 'P 의료기'가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레이저 의료기의 성능에 하자가 있다는 둥...


횟집과 식당의 간판이 유난히 많았다. 간판의 거대한 글씨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거 지루하게 걷지 말고 여기와서 술 한잔해!" 그가 휴대폰을 켜서 시각을 보았다. 오후 3시 15분. 애매한 시간이었다. 뒤집어지는 바닷물은 그다지 청결한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길을 건너 까페에 들어갔다. 그녀는 스카치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주문했다. 술을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결국 그도 '같은 걸로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녀는 부산에서 두번째로 큰 의료기 수입상인 "S의료기"가 세브란스에 납품하게 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일도 쉬운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경험이었지만 덕분에 배는 출출해졌다. 


카페 문을 나서자 말자 그가 "어디 가요"라고 묻자, "뭐 할래?" 그녀가 반문했다. 손님인 그가 다시 행선지를 정해야하는 책임을 떠맡았다. "회나 먹을까요?"그가 대답했다. 대낮에 술을 마시러 들어간다는게 꺼림칙했고 그래서 그녀가 반대의사를 표할것을 기대했지만,  "그럴까? 회 좋아해?" 여자는 표정에 화색이 돌며 대답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는게 아닐까 잠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횟집에 손님은 그들 밖에 없었다. 주문을 하기 전에 부산사람인 그녀더러 "무슨 생선이 좋아요?"라고 묻자, "나 회 별로 안좋아해. 생선이름도 잘몰라." 라고 대답했다. 그는 생선모듬회 작은 것을 한 접시 주문했다. 밑반찬을 시작으로 많은 크고 작은 접시가 날라져 오다가 마침내 메인 회접시가 놓여졌다. 꽤 푸짐해보였다. "부산 왔으면 시원소주 한잔 해야지" 그녀가 익숙하게 술을 주문했다. 그녀는 깻잎에 회며 장이며 풋고추같은 것을 크게 싸서 입에 넣은 후, 자신의 잔을 들어 그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위하여!" 그들은 의미없는 이 구호를 외친후 술을 털어넣었다. 


술이 들어가니 그녀가 부드럽게 보였다. 어색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신입사원에게 마침내 확고한 할일이 주어진 때처럼, 이들도 확고히 할일을 하게 되어 기뻤다. 먹고 마셨다. "여기 시원 한병 더 주세요" 그녀가 말하면 시원한 술은 항상 매우 빨리 대령되어졌다. 테이블위에 빈 소줏병이 4개가 되었다. 매운탕이 왔다. 어디나 똑 같은 매운탕 맛에 신기해 하며 밥을 먹었다.그녀가 입가심한다며 카스 맥주를 한병 시켰다. 


계산서가 테이블위에 놓였을때 그녀가 갑자기 일어섰다. "나 화장실 좀..." 


횟집을 나왔다. 저녁해가 수평선 아래로 장렬히 지려하고 있었다. 광안대교의 불빛이 희뿌연 황혼의 하늘을 배경으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풀코스 언제 보여주실거죠?" 마침내 그가 술김에 물었다. "우리 핫한데 갈까? 서면으로 가, 그럼" 


아하, 서면이 풀코스의 대미를 장식할 엘도라도이구나! 그는 기대에 부풀었다. 택시는 구불부불한 부산의 거리를, 질주하다 섰다를 반복한 끝에 롯데백화점 입구부근에 섰다. 먼저 택시를 내린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우리 어디 가요?" 그가 묻자, "뭐 할래?" 그녀가 다시 반문했다. 불빛에 비치는 그녀의 땀배인 얼굴의 짙은 화장이 약간 번들거렸다. 그녀 머리 위에 '무진장 호프집'이라는 간판이 보였다.그가 맥없이 말했다. "여기 들어가지요, 뭐" 


그들이 들어가니 예닐곱의 사람들이, 야구시합이 방영되고 있는 네모난 TV를 흘낏거리며 맥주잔을 앞에 놓고 있었다. 사람들의 응원과 환호속에 그녀도 이젠 의료기 현황같은 걸 말할 필요가 없다는듯이 맥주만 마시고 있었다. "오!" "아!" "아깝다!" 사람들의 탄식속에 그들은 뻥튀기만 세번 리필해먹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서울행 KTX를 급히 예약했다. 그리고는 약속이 있어서 올라가야한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왜, 술도 아직 남았는데 갈려고 해?" 그녀가 주정을 핑계로 짜증스런채 하며 말했다. 그는 방금 새 술잔을 받은 터였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술이 취해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남겨두고 떠났다. 


KTX에 자리를 잡고 잠시 피곤한 눈을 감으며 고속질주 속에 잠을 청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동생,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오면 진짜 제대로 놀자!" 그녀의 문자메시지에  "그래요. 잘 지내요"라고 응답해주었다. 그가 휴대폰을 닫으려할 때 다시 카톡이 왔다. 


"밀면 안 먹었네" 


그가 휴대폰을 탁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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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 2019-05-22 오전 7:17  [동감 0]    
문학게시판 강추
리버리어1 | 2019-05-22 오전 10:53  [동감 0]    
<경훈씨>가 상상하던 풀코스는 40대 페미니스트가 준비한 먹빵 풀코스가 아니였음을....
하지만 그 여인의 연속된
<뭐할래?>
라는 질문에 좀더 적극적인 대답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엉큼한 구석이 있어서 일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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