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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힘
글쓴이 소판돈이다      조회 1247   평점 1800    수정일 2018-12-20 오후 5:07:00

 

지금은 인터넷바둑과 기원 양쪽을 이용하지만 과거엔 주로 기원에서 주로 바둑을 많이 두었다.

바둑으로 만난 인연으로 심각한 우울을 극복한 한사람의 이야기반추는 나름 의미 있으리라 여겨진다.

김영태씨의 심한 우울의 원인은 사업의 부도 때문이다.

극단의 변화는 주변에 대한 관심의 저조, 부정적사고의 전개, 수면의 롤러코스터등등 전반적으로 나타나며 꾸준한 식욕부진을 동반한다.

 

20년전, 1998년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달포가까이 집에만 있던 그는 집을 나선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식욕도 그만그만이고 모두와 모든 것이 원망스럽기만한 하루하루가 그 자신이 보아도 위태롭다.

위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부로 눈길 향하기 마련이다.

모처럼 나들이행색에 부인도 반색이다.

그녀는 청소하다말고 신발을 신는 그에게 만원짜리 다섯장 오만원을 쥐어준다.

너무 다운이 되니까 나까지 가라 앉는 것 같어....그래요 사람들도 만나고 해요.”

 

삼개월 가까이 그는 집에서 10분거리의 기원에 다녔다.

그렇게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일이천원에 소주 한두병이 주는 즐거움은 희피는 될지언정 망각까진 이를 순 없기에....

차라리 바둑이라도 두면 시간도 죽이고 대상들에 대한 원망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바둑이 끝나고 박원장이란 분이 술한잔 하자 하였다.

박원장은 퇴직후 기원운영을 했었고 칠십고령이니 그저 바둑으로 소일하는 분 이었다.

자네 나이 사십이면 참 좋은 때이지....근데 그게 금방 가더라고....엊그제 같은데 내가 올해 칠십이여....”

박원장의 소회는 무심한 시간의 흐름과 지나고 나면 총알처럼 빨랐던 시간들의 궤적과 무늬들이 가진 흔적의 나열이지만 허스키한 저음은 설득력 있었다.

진정성은 아버지와 아들같은 서른살 나이차이마저 잊어버리고 쉼 없이 술잔을 채우게 한다.

김영태씨는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 질 것만 같았다.

오래간만에 내심을 토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노인은 사십젊은이에게 애둘러 당부까지 한다.

언뜻 스치는 자네 눈빛이 간직한 필름을 꺼내 영사기에 돌리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상황들 말일세...”

이제 기원에 매일 오진 말게나....일주일 한번정도....”

 

그 날밤 늦게 그는 옥상에 올라갔다.

밤바람이 뺨을 때린다.

두툼한 오리털파카를 걸쳣어도 춥다.

몸은 오한이 들 정도지만 정신은 명정해진다.

우선 창고를 비워줘야 한다.

안면 때문에 싫은 말 안하지만 영등포 안사장의 말소리 너머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지경이다.

그래 이제 변해야 돼! 지난 것은 잊어버리고.....’

세상엔 변하지 않는 건 없다.

오랫동안의 믿음에 대한 배신을 가름할 겨를도 없이 그의 아파트와 사업장이 사라져갔다.

사춘기 접어드는 큰놈에게 영향 안주려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더 민감하기 마련이다.

 

댜행히도 원판을 잘 보관해주어 을지로에서 종이값만 주고 카탈로그를 부탁한 다음날, 김영태씨는 중고자동차매징에 들러 따블캡 트럭을 사서 짐칸엔 천막까지 씌웠다.
업자들은 덤핑으로 여기곤 재료값도 안되는 금액으로 후려쳤다.
제품에 들인 공을 생각해
서라도 그럴 순 없어 직접 뛰기로 하였다.

어느 듯 겨울이가고 봄이다
.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인천 희망백화점.

지금은 이름도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다.

그는 희망이란 단어 때문에 그 곳부터 들렀는지도 모른다.

한때 오너의 수십억골프도박으로 메스컴에 회자되고 결국 미국으로 사장이 도피했다는 그 곳이지만 99년 그 때만해도 백화점은 잘돌아가고 있을 때 였다.

알바가 아닌 정식직원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사무실의 실세를 물어보았다.

사장사위 홍부장은 첫눈에도 날카로운 인상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인상이지만 그는 밝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협조를 부탁하였다.

음 아가씨들이 좋아할 만한 거네요. 어쨌든 대단합니다. 물건파는 백화점직원들에게 세일즈하시겠다니....후후후

홍부장은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해준다.

그럼 식당에서 하세요

그의 결정은 대단히 신속하였다.

역시 실세는 실세이다.

직원들은 교대로 식사를 한다.

식당입구에 스텐드를 놓았다.

중심에 해설책자 들어있는 클레식테프전집을 펼치고 옆으로는 선물로 줄 우리나라 가곡 셋트와 영화음악셋트를 쌓아 놓았다.

클레식엔 베토벤이 인상을 쓰고 있고 우리나라가곡엔 엄정행이 치아를 드러낸 웃는 사진, 영화음악엔 반토막시거를 입에 문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모자를 삐딱하게 쓴 멋있는 포즈....

하나를 구입하면 두가진 덤으로....6만원에 삼개월 할부. 시세의 절반값도 안된다.

그날 스물두셋트 백만원약간 넘게 팔았다.

홍부장은 월급공제약정서에도 순순히 사인해 주었다.

그는 경리에게 월급일에 송금 해주라고 지시까지 하였다.

 

스타트를 멋있게 끊은 셈이다.

어차피 쌓여 있는 것, 어서어서 현금확보가 우선이다.

다음 날 그는 몇군데에서 완곡한 거절을 당하였지만 언젠가 읽은 책의 한구절이 떠 올랐다.

다이아몬드한개 채취하려면 트럭 수십수백대의 흙을 파내야 한다

일이 잘 안될 때면 의외로 따스하게 대해 준 냉정한 인상의 희망백화점 홍부장을 떠 올렸다.

 

대림통상 부평공장.

이 곳의 실세는 전무이다.

지금은 공장은 철거되고 대림아파트이다.

아파트이름이 영어로 바뀐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무는 면담신청에 응해 주었다.

두툼하게 살집 좋은 그는 미소 띤 얼굴이었다.

그래....무슨 일로....”

김영태씨는 전무의 눈을 쳐다보며 역시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전무님의 안목이시라면 익히 잘아시리라 압니다만 이 테프들의 유익함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

잠시 ..’하고 생각하던 전무는 과장을 부른다.

식당입구에서 하세요.”
전무는 대림통상 검단공장까지 연결해 주었다.

 

영등포 주택은행 박차장, 강남사거리 대우증권과 제일화재, 주택공사...등등

지금은 토지공사와 합쳐 LH인 그 곳의 김과장은 직접 커피한잔까지 뽑아와서 앉게 한다.

큰 곳에서 하면 매상이 더오를꺼 아닙니까? 제가 수원 담배인삼공사 다리 놓아 드릴까요?”

 

김영태씨는 수원담배인삼공사에서 대박을 쳤다.

인천노동부의 과장은 여기저기 다릴 놓아주었다.
경기도 모 노동부는 아예 외환은행 국고수표로 선결제 해 주었다.

노동부는 기업으로선 이다.
세상은 사람과 조직의 위치가 가진 영향력을 세삼 알게 해 주었다.

거절과 무안함도 많았지만 세상은 자신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99년 년말전에 김영태씨는 영등포창고의 가득 쌓여있던 재고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 자금으로 파주 출판단지에서 어린이 클레식위주로 출판사업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올해나이 60, 며칠지나 새해가 되면 환갑이 된다.
그는 현업을 업무에 충실했던 직원에게 물려주고 제2의 인생을 모색하고 있는 싯점이다.

박원장 말마따나 세월은 지나고나면 총알이다.

김영태씨는 다른사람들에게 도움 줄 일이 무엇인가 늘 생각하면서 노년의 초입에 들어섰다.

모든 것들이 바둑의 힘이고 덕이다.

지금은 이 곳으로 이사하였지만 그는 늘 박원장의 당부를 마음에 세기며 산다.

오래 전 돌아가셨지만 박원장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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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석대산 | 2018-12-20 오전 10:42  [동감 1]    
바둑의 인연이 참 뭉클하네요.
정말 잔인했던 시절이었지요.
안정적인 직장에 적을 두고서 피눈물나는 구조조정과 도산, 무자비한 퇴출 한파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던 내가 새삼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의 도화선에 불이 당겨진 요즘, 문재인정부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습니다.
멍하니 정신줄 놓고 있다가 또 어떤 쓰나미를 맞이하게 될런지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소판돈이다
12-20 오후 5:51
소석님 안녕하세요?
이 이야기는 실화 입니다.
실제의 사람과 성씨는 동일 합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야오위 | 2018-12-21 오전 7:45  [동감 0]    
희망..지금은 올리브
인생은 총알에 극 공감함니다
맘은 청춘이요 몸은 늘근이
글에 열정이 있어보여 부럽부럽
소판돈이다
01-02 오후 1:17
사과님 감사!
새해엔 더욱 건강하세요.
도라온맹호 | 2018-12-25 오후 1:28  [동감 0]    

오랫만에 광장을 지나다가 좋은 글을 만났네요.
진정성이 깔린 글은 읽으면 감동이 큽니다.
부도후에 타개성공은 큰 감동으로 어필합니다.
저도 부도와 타개의 과정을 거치며 인생을 헤쳐왔기에 님의 진실이 더더욱 감동적으로 가슴을 파고듭니다.
단 하나는 님이 아직 환갑 전 이신대 노년의 초입이라고 자평하신 것은 반대 입니다.
아직도 인생길이 멀고 할 일이 많이 남은 삶이십니다.
멋진 인생의 금자탑을 쌓 올리십시요.
저는 80이 넘어 유통기한이 다 된 영감이지만 감동을 주는 글을 읽으면 아직도 청춘인양 가슴이 뜁니다.
잘 읽엇습니다.
소판돈이다
01-02 오후 1:18
어르신의 방문만으로도 고마운데 칭찬까지.....고맙습니다.
새해에도 왕성한 광장나들이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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