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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죽을 사나이 | 오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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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죽을 사나이
글쓴이 소판돈이다      조회 1166   평점 1340    수정일 2018-12-17 오전 11:11:00

 

 

노인이 누워 있다.
 미동도 없다.
눈을 감고 있으니 잠이 든 것인지.... 
하지만 노인은 잠든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다.
그의 의식은 캄캄한 우주 저편을 향해 날라가고 있었다.
이 곳에서 안드로메다까진 256만광년, 빛보다 헐 빠른 마음대로의 속도로....
칠월칠석이면 만나는 견우와 직녀, 노인은 독수리자리와 거문고자리 두별의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번 만나니 얼마나 애타게 보고싶었을까....문득 손만 잡아 본 첫사랑 미자가 떠올랐지만 이젠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짝이는 큰별들 사이에서 평생 잊지않고 살아온 미자의 얼굴을 더듬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갑갑한 순간, 방문이 드르륵하고 열린다.
마누라년이겠지..’

  여자는 꼼짝도 않고 누워있는 영감의 태도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들어오면 누워 있다가도 고개라도 살짝 돌려보았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잠들었나....
오늘따라 얼굴이 창백하고 푸릇한 기운마저 든다.
여자는 겁먹은 얼굴로 머뭇거리더니 손바닥으로 노인의 감은 눈위를 더듬더니 가슴을 흔든다.
이봐요! 자는거에여? 어머 어머머.....”
새삼 여자의 경솔하고 경망스러움이 괘씸한 마음이 든다.
이년아 손목의 맥박이나 목의 경동맥을 짚어보면 될거아녀...’
여자는 노인의 손등을 슬쩍 만진다.
한참을 이불밖으로 내놓은 손등이 따스할리 없다. 손바닥도 아니고...
손이 차갑다.
갑자기 여자는 통곡을 한다.
아이고...아이고오......‘
잠시 곡인지 우는 시늉하더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황망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노인은 쯧쯧...’혀를 차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거실에선 여자의 전화거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미친년 어따 전활거는거여....뻔할뻔짜지머...’
이봐요 영감이 죽은거 같아여....어케야되지? 119에 걸어야되나....”

 

노인은 외출복을 주섬주섬 입는다.
준비해둔 검은가방을 목에 두른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다.
별안간 등장한 노인의 모습에 여자는 기절할 듯 소스라치게 놀란다.
? 죽은 줄 알았냐?”
당 당 당신 아니.....근데 왜 미미동도...”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노인은 밖으로 나와버린다.
모든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데리고 살아온 마누라이기에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을 대했다면 가방안에 들어있는 현금카드를 주려고 했었다.
현금카드엔 노인이 보름쯤전 집판 돈에서 1억을 떼어 농협에 넣어 두었다.


김영태노인은 일흔네살이다.
사실 그의 육체는 고치고 고친 개량 개조의 몸이다.
위염인가 했더니 다행히 위암초기에 발견 절반가까이 잘라내었고 길가다 가슴통증으로 쓰러져 행인의 도움으로 119에 실려 응급실로 직행, 심근경색수술로 가슴에 스턴트을 박아놓았고 무릎도 젊은 한때 축구에 미쳤던 덕분에 한쪽은 수술, 인공관절 인데 한쪽마저 걸을 때마다 시큰시큰한 상태이다.
치아마저 부실해 치과의사는 잇몸이 약해 임플란트불가여서 틀니로 가는 수 밖에 없다하여 치아도 틀딱이다.
죽으로 연명하지만 마누라는 그 것도 귀찮고 소홀해 집 근처 프렌차이즈죽집에 대놓고 먹다시피 하였다.


터미널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야....나 집에서 쫒겨났다. 나 거기 올라간다.”
대도시인 S시에 살고있는 불알친구이다.
어릴 때 가정형편 어려웠지만 친구는 샛길로 안빠지고 늘 성실하였다.
허긴 그 친구에게 술 담배 여자....게다가 바둑까지 나쁘다는 건 모두 가르친건 본인이었다.
바둑이 나쁘다 할 순 없지........자신이 잘 컨트롤하면 좋은 취미인데  까딱하면 도끼자루 썩어 문제이고....
그 고향친구는 부인과 옷가게를 하고 있다.
옛날엔 그런대로 장사가 재밋었지만 일이십년전 부턴 그냥 소일거리로 부인이 재봉틀한대 놓고 옷수선 겸해서 하고 있는 모양이다.
격의 없는 어릴 때 친구와 바둑도 두고 영화도 보고 산에도 가고 그렇게 도시에서 당분간 지낼 요량이다.

 

  김노인이 집나간 한달쯤후, 여자가 건물 1층 부동산 문을 밀고 들어온다.
입금이 안되길래 무슨 일인지 들렀어여....”
...월세가게 임대료요...그 건 사장님계좌로 바꾼지 한달도 넘었잖아요. 그리고 저어기...”
김영감의 후배인 부동산사장은 캐비넷에서 두툼한 쇼핑백을 꺼내어 여자에게 준다.
이게 뭡니까?”
부동산사장은 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린다.
그 것이....저어...사장님에게 듣기론 심부름센터직원이 보내 온 사모님의 행적이 들어있다 합디다만...”
행적요?”
그 쇼핑백엔 여자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던 면소재지의 외간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던 사진등의 복사본이 잔뜩 들어 있었다.
당부대로 원본은 다른 곳에 보관해 두었다.
노인보다 거의 스무살정도 나이 젊은 여자는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저기 그 살고계신 집도 팔렸습니다. 아마 달포내로 비워주셔야 될겁니다. 저로 선 시키신 일이라 그대로 말씀 드릴 뿐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그 영감탱이가 노망했나...실성을 했나........어이가 없네...”
실정법상 사실혼관계도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으면 판례가 사실혼인정 불가하다는 것도 사장님이 말씀드리라 하더라고요.”
머머 머에요....그 그럼 이건물은요?”
이 건물은 이미 십년전 쯤에 명의는 본가 아들로 옮겼고요....두분양주님 생활비 때문에 임대료만 그동안사모님계좌로 입금 되었고요....”
여자는 우락부락 혈압오른 얼굴표정으로 부동산문을 밀치고 나오더니 휴대폰을 누른다.
자자자 자기야.....사실혼성립이 안된대...어쩌지 나모올랑....”

부동산 박사장은 혀를 끌끌찬다.
'에휴 조강지처 버리고 젊은여자 데리고 살 땐 좋았지...늙으니 본처생각 나겠지만 받아주나 멀....'

차창밖 풍경은 영화필름처럼 변화무쌍하게 지나간다.
...그 년참....날 우습게봐도 분수가 있지..이래뵈도 사람들이 날 고수라 불렀었다는 걸 넌 몰랐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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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手談 | 2018-12-10 오후 11:26  [동감 0]    

모처럼 만나는
멋진 글입니다
(^&^)
소판돈이다 | 2018-12-11 오전 00:57  [동감 0]    
전번의 7광구는 정치성의 문제가 걸려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소석대산님의 너그러운 이해 부탁드립니다.
가버린청춘 | 2018-12-11 오전 9:35  [동감 0]    
리얼하고 재미도 있고 굿 입니다!
참나이런 | 2018-12-11 오후 2:13  [동감 0]    
단편소설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 감사!
참나이런 | 2018-12-11 오후 2:15  [동감 0]    
마누라 년이겠지 ㅎㅎㅎ
삼나무길 | 2018-12-11 오후 9:16  [동감 0]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군요.
한별 | 2018-12-11 오후 9:23  [동감 0]    
엽편소설의 분량쯤은 되려나요?
어쩜...소판돈이다님이 쓰신 글
참 맛이 있네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__)
100점이 아니라 100만점이라도 드리고 싶을만큼요^^
주식이 | 2018-12-15 오후 9:28  [동감 0]    
재미 있네요!!

얼빠진 여자
, 바둑두는 고수를 홀딱벗겨먹을려구,꼬시다.
즐벳 | 2018-12-19 오후 3:01  [동감 0]    
여자들은 바둑고수를 모린다...어떤종류인지조차도..짧은글이지만 참 재밋네요..
오토 | 2018-12-21 오후 9:13  [동감 0]    
제밌게 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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