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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버닝>과 <노답>신드롬
글쓴이 쳇거바라      조회 291   평점 400    수정일 2018-06-14 오후 3:17:00


영화 ‘버닝’을 보고난 반응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눠진다.

“이게 뭐야”라며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반응과 “역시 좋다.

 이창동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 모호한 열린 결말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반응, 또 하나는 전자처럼 느껴놓고 후자처럼

말하는 속물적 반응 등이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은 설명하지말고

느끼기를 바라고 만든 영화라고 했다.

영화에는 상징적인 장면이 너무 많아 모호하다.

진행도 영화적이라기 보다는 소설적 구성이다. 




“관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서사대로 보고, 그렇게 안되면 비판한다.

하지만 그 어떤 서사도 완벽하지 않다.

모호함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게 다가 아니다’는

미스터리를 다루는 영화다.

대중이 받아먹기 쉬운 영화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새롭고 낯선 걸

해야 한다.“


이창동 감독의 이 말은 관객의 “이게 뭐지”라는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음을 알 수 있다.




‘버닝’은 대사에도 나오지만 ‘메타포’(은유)가 많아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종수가 벤에게 느끼는

무력감은 이해되지만, 종수의 분노가 감정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이 그런 모호함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사실 화가 나는데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공직자가 뇌물 혐의로 구속되면 국민들은 분노한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대법원에 가면 상당수가 무죄가 된다.

그리고 원래의 자리로 컴백한다.

국민들은 어디에다 화를 내야 할까?




이창동 감독은



“우리 세대는 뭔가 세상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없어졌다. 그럼에도 세상은

깔끔, 편리, 세련돼지고, 개인은 점점 왜소해진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지고 있다”면서
 

“분노하라고 말하는 책도 있었지만, 변한 건 별로 없다.

대상이 없다는 게 더 큰 분노일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제 어떤 대안도 남아 있지


않다라는  <노답> 신드롬이 


지배하는   냉소적인 


신자유주의 사회





타자의 추방이  만연된     피로사회에서 

집단속  주체로서의  나는    '괴물'로서  존재한다.


거대한 정글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의지가 결여된 채 

괴물이  되버린  나.


어떠한 대안도 없다는   노답신드롬 안에서

냉소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마치

배타적 진리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꼈던 적도 없었다.’ 라고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했다.

                                            


 
 30대로 접어들며 신자유주의사회로 내몰리듯  편입됐던 주변의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몇 가지 기억난다.


 
“어쩔 수 없지”,  “이러고 살다 죽지 뭐” 등

숙명론적 사유에서 기인하는    무기력한 한숨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쫓던 노력의 시간은

능력주의의  신자유시스템에 편입됨으로서

줄어드는 자율과 늘어나는 종속   그리고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규칙 등에 따라 
 
노력의 가치는     평가절하 일로다.









그리고,  노동은 점점 더 시스템화 되어 결국은

성과위주의 단순화로 인한 ‘노동의 유아화’로서 대변되고 만다.


 바우만의 ‘자유로움 속 무기력’이란 역설은

이러한  신자유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사회의

역설이지 않을까싶다.




신자유주의는 이름부터   새로운新  자유로 내세우지만
 
이 자유는    공허한 광고일 뿐이다.    자유를 억압하던 

舊시대의 논리를 배격하는 척    간판으로   내세운다.



현실은  반대로  신자유의 착취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 시켜낸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비열한 기본 원리이자 논리이다.




우울증과 무기력함은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굴리는 

기본원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또한 이러한  무기력한 우울은

자아 리비도의 

나르시시즘적 누적으로 인해 형성된다.



전 세계적으로   불특정 대상의  테러와   교내총기난사 같은

불안하고 불편한 사태가  곳곳에서  발생되는 이유도  

과도한 나르시시즘의 발현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Burn Out(소진)에 바치는  광기의 노래로서
 
우리는  죽음에 이르도록   나를  최적화한다.



신자유주의의 지배는

망상적인 자유 뒤에   숨어있었다.

 

 

지금껏 우리는 철저히 격리된 사회시스템에 최적화시키며

자신도 모른 채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실현시켜왔다.



그로인한 우리의 소통은  오로지 

디지털매체를 통한 소통이었으며

나와 같은 사람

나와 같은 생각이

창궐하는

공허 그 자체의 소통이었다.

 


이제 어떤 대안도 남아있지않다

<노답>신드롬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타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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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소로운 | 2018-06-11 오후 6:21  [동감 0]    
타자 (打者)는 야구장과 연습장에서만 배트를 휘들러야....
이곳에서는 운영자가...^^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쳇거바라
06-11 오후 11:22
그러게요^*^ ~ 삼소로운님
고맙습니다.
쳇거바라 | 2018-06-11 오후 6:24  [동감 0]    
냉소주의자 쳇~ 거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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