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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의 변명
글쓴이 윤실수      조회 351   평점 400    수정일 2017-04-05 오후 8:28:00
나의 기력은 기원3급이 강하기에 종3의 기원이나 복지관 같은 곳엔 적수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왜 스스로를 만년 하수라 칭할까?
나는 60대 중반인 세대로선 비교적 어린 나이인 중1떄 바둑을 배웠다. 따라서 오로 아이디도 실전적인 수라는 뜻의 실수實手 이다. 
그렇다면 이미 50년의 기력歷이니 결코 높은 기력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바둑을 배운 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바둑이 아직도 만년 하수에 머물고 있는가?
지난 겨울 거의 매일 한판씩은 두던 바둑을 야구 씨즌이 되니 휴기를 하였다.
아직도 바둑이 늘고는 싶은데 내가 바둑광은 못되는 것이다.
 중학시절 바둑을 배우자마자 밤새 바둑을 둘 정도로 몰입을 했었는데 비틀즈 CCR등의 팝송에 매료된후 바둑의 열기는 금방 식었다.
대학시절엔 "청운의 대학생이 고작 바둑이나 두는가?"라는 생각에 그리 많이 두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나는 유신시절의 대학생이었기에 남들은 시위에 참가하는데 바둑실에 앉아 있기가 좀 거시기 하였다.
그러다 대졸후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갖는데 80년대 중반의 미국 유학생들은  농구에 매료되어 있었다.
매직 존슨과 마이클 조던 두 걸출한 NBA 스타 때문이었다.
내가 유학하던 IOWA 대학도 HAWKEYE  농구팀이 남녀 모두 강했다.
당시의 유학생들은 농구의 관람뿐 아니라 직접 농구를 즐겼다.
미국의 대학 농구장은 여름엔 냉방 겨울엔 난방시설이 잘 갗추어져 있어 운동을 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그후 뉴욕 시카고 LA 등지에서 이민생활을 하였는데 이 세 도시에는 한국계 기원이 있었기에 다행히  바둑을 즐길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이민자들 사이에선 바둑보다는 골프가 대 유행이었다.
당시 한국에선 엄두도 못내던 골프를 미국에선 염가로 즐길수가 있으니 한풀이 삼아 너도 나도 골프를 배웠던 것이다.
게다가 90년대 중후반 골프 퀸 박세리의 등장으로 한인 골프 인구는 더욱 증가하였다. 
하지만 골프는 주로 주말에 치기에 주중엔 일이 끝난 다음 바둑을 둘수 있었다.
박찬호가 LA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의 바둑 실력이 좀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저스 구장에서 야구를 보며 맥주를 즐기는 맛에  기원보다는 야구장을 더 자주 찾았다.
미국에서 살만큼 살았다고 여겨진 2000년 역이민을 하였는데 그때 한국엔 대형 금연기원이 생겨나 만족스러웠다.
따라서 내가 본격적으로 바둑을 두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인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노인층에서는 비교적 바둑이 강한것은 중학시절 바둑을 배웠기 때문이다.
은퇴후 뒤늦게 바둑을 시작한 사람들은 아무리 두어도 기원  5급에 도달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바둑이 늘고자 하는 사람은 가급적 젊을때 술보다 바둑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바둑이나 골프나 젊어서 한 시간이 은퇴후 세시간보다 효과적임을 은퇴한 노인들을 통해
 절감하였다. 
교수 출신이 노가다 출신보다 하수인 경우를 복지관에서 종종 보고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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