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원 / 김기택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 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날이 밝아도 개와 말뚝 사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음

직선 :

등뼈와 말뚝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온몸으로 말뚝을 잡아당기는 발버둥과

대지처럼 미동도 않는 말뚝 사이에서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고요한 거리

원 :

말뚝과 등거리에 있는 무수한 등뼈들의 궤적

말뚝을 정점으로 좌우 위아래로 요동치는 등뼈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려도 오차 없는 등거리

격렬할수록 완벽한 원주의 곡선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 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등뼈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굽어진 채 뛰고 꺾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 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등뼈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굽어진 채 뛰고 꺾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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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좋아하는 김기택 시인의 시입니다.
무엇무엇 함, 이랬음 저랬음, 이런 명사형 종결어미를 쓰는 게
요즘 젊은 친구들의 화법인데 그런 것을 반영하려고 한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굉장히 독특하고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개와 말뚝 사이의 팽팽한 거리감을 표현하는 화법인 것 같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김기택 시인님 현재는 경희사이버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시를 잘 쓰는 것과 시 창작을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일인데도
시인님께서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하네요. 역시!
시에서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이라는 구절이 참 찡합니다.
나를 억누르는 것이 이제는 관성이 되어서 그것 없이는 불안한 현대인의 삶..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는 삶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가입 기념으로 좋아하는 김기택 시인의 시를 문학게시판에 처음 게재해 봅니다.
(- -) (_ _) (- -) 꾸벅